얼마 전 EBS에서 '당신의 문해력'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였다. 학교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의 문해력을 진단하는 몇 가지 사례가 소개되었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사회 불평등 현상을 잘 보여주는 영화로 ‘기생충’을 소개하며 “이 영화의 구성 초기 가제는 데칼코마니였대요. 가제가 뭐야? 아는 사람?” 하고 물으니 “랍스터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문서를 읽고 소화해야 하는 성인들도 글이나 문자를 통한 소통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지난해 국립국어원에서 시행한 ‘2020년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에서 조사 대상자의 89%가 신문·방송에서 나오는 말 중 의미를 몰라 곤란했던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문해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영상 매체의 발달, 그로 인한 독서량 감소가 문해력 저하로 이어지는 연관성이 분명 있겠지만 이와 더불어 난해한 용어와 복잡한 문장으로 가득한 우리의 글쓰기 습관은 어떤지 돌아보게 된다. “언택트 채용 온택트로 준비”, “코호트 격리, 팬데믹 현실화, DB손보-KISA 오픈이노베이션, 인슈어테크 스타트업 모집”처럼 신문 기사의 낯선 외래어, ‘차임액, 묵시의 갱신, 밀전, 식체,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의약품 설명서나 법률의 전문용어들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다.
국문과 한문을 혼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문을 알아야 글을 이해할 수 있으니 한문이 곧 권력이 된다. 지금은 국어기본법에 따라 모든 공문서는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pandemic을 팬데믹으로 적는다고 한글 전용이 이루어진 것일까. 형식만 한글로 바뀌었을 뿐 내용을 알 수 없는 건 매한가지다. 여전히 일상의 언어생활에서도 언어 권력이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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