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광주비엔날레 개막
절이나 성당에서 볼 법한 불상과 성모마리아상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부처님과 성모마리아가 한데 모인, 이 ‘종교 대통합’의 현장은 다름 아닌 돌로 만든 조각상을 파는 가게의 입구다.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진작가 조현택은 ‘스톤 마켓’에 주목했다. 그래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스톤 마켓을 촬영했다. 시장에서 물건으로 팔리는 조각상이, 공간 이동에 따라 성스러운 존재가 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석조상 앞에 음료수와 과일을 놓았고, 손을 모으고 절을 했다. 조각상을 상품이 아닌, 신성한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조 작가의 스톤 마켓 시리즈는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1전시실에서 2전시실로 이동하는 통로에 전시돼 있다.
제13회 광주비엔날레가 1일 개막했다. 5월 9일까지 39일간 개최되는 광주비엔날레는, 2년마다 열리는 국제현대미술 전시회다. 이번 전시 주제는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이다. 한국의 샤머니즘 등 비서구권에 자리한 삶의 양상을 집중 조명, 사고의 확장을 돕는다. 40여 개국 69명 작가의 작품 여 450여점을 볼 수 있다.
4전시실에 설치된 인도네시아 작가 티모테우스 앙가완 쿠스노의 설치 작품에서도 주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란 제목의 이 설치작은 천으로 뒤덮인 호랑이의 사체를 형상화했다.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호랑이 사체 위로 까마귀가 난다. 인도네시아 주민들은 우리에게 길한 동물로 익숙한 호랑이를 칼로 찔러 죽였다. 부정을 쫓기 위한 대상으로 호랑이를 생각했던 까닭이다. 변영선 광주비엔날레재단 관계자는 “작가는 교과서 등을 통해 배우는 공식적인 역사가 아닌, 지역에서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역사에 주목해왔다”며 “지역적 맥락에서 인도네시아 주민이 호랑이를 어떻게 인식해 왔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비엔날레 전시는 광주 북구에 위치한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밖에서도 이어진다. 광주극장은 눈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것들을 탐구해볼 수 있는 자리다. 주디 라둘 작가는 이곳에서 거문고, 장구, 징을 연주하는 이들을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선보였다. 전시 설명에 나선 광주비엔날레재단 관계자는 “연주가 나오는 헤드셋을 쓰면 음악이 나오는데, 눈으로 연주 영상을 보아서 소리가 들리는 것인지, 진짜 소리가 나서 들리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광주극장은 1930년대 개관해 8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곳으로, 장소 자체만으로도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는 냄새가 불러일으키는 생각에 대해 고찰해볼 수 있다. 특정 냄새는 어떤 기억이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김 기사(송강호 역)의 냄새가 가난을 묘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전시장은 제주 4·3사태 유족인 양신하씨의 수기 일기를 읽고, 그 날짜에 해당하는 돌을 찾아 냄새를 맡아 볼 수 있게 꾸며졌다. 후각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는 화학자 시셀 톨라스의 작품이다. 작가는 양씨 일기를 바탕으로 돌에 각기 다른 냄새를 입혔다.
옛 국군광주병원에서는 5ㆍ18민주화운동 특별전인 ‘메이투데이’를 볼 수 있다. 광주 출생 또는 광주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12명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그중에서도 문선희 작가는 중환자실이 위치한 병원 2층으로 올라가는 보행로에 데이지 꽃밭을 설치했다. 무수한 이들이 생과 사를 오갔던 곳이 치유와 재생의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문 작가는 “꽃길은 굽게 설계했는데, 생명(식물)이 다치지 않게끔 조심해서 걷게 할 의도가 들어가 있다”고 덧붙였다.
1964년 개원한 국군광주병원은 1980년 5월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에 연행돼 고문당한 학생과 시민들을 치료하던 곳이다. 병원이 2007년 함평으로 이전하면서 이곳은 최근까지 도심 속 폐허처럼 남았지만, 2018년부터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으로 사용되면서 일시적으로 전시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들어온 개나리가 노랗게 꽃을 피운 가운데, 봄날의 햇살이 어두컴컴한 공간을 감싸고 도는 묘한 느낌의 전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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