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단축 근로자에 수시로 연락
"화장실 갈 때 전화하라" 지시도
노동부 "괴롭힘 인정돼" 개선지도
해수부 항로표지원 '이의신청' 제기
해양수산부 산하 항로표지기술원이 운영하는 국립등대박물관에서 직원 10명 중 5명이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휴직하거나 관두고, 4명은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내부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고를 받고 조사에 나선 고용노동부 포항지청(포항노동청)은 직장 내 괴롭힘을 확인하고 개선지도를 통보했으나, 항로표지기술원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의신청을 내고 반발해, 정부와 공공기관 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18일 포항노동청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 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국립등대박물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린다'는 신고가 들어와 조사한 결과,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에 해당하는 직장 내 괴롭힘을 확인했다. 포항노동청은 이에 항로표지기술원에 개선지도를 통보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해선 아니된다’고 돼 있다. 포항노동청 조사 결과를 보면, 가해자로 지목된 한 간부는 육아로 주3일 단축 근무를 하는 직원 A씨에게 휴일과 휴무일, 저녁, 심지어 새벽 시간에도 업무를 지시했다. A씨가 업무과다를 호소하자, 해당 간부는 “집에서 (일을) 하든가 출근하는 3일간 능력껏 하라”고 말했다. 다른 직원이 해외에서 주문한 전시물품이 일부 분실됐는데 A씨에게 모두 변상하도록 했다.
다른 간부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A씨를 상대로 2차례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특별감사는 징계를 주기 전 절차로, A씨는 이 일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장기간 정신과 치료에 들어갔다.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한 직원은 A씨뿐만 아니다. 국립등대박물관 내 괴롭힘 논란은 노동부 포항지청이 조사에 들어가기 훨씬 전인 2019년 말부터 불거졌다. 포항노동청과 해수부 감사실에는 부당한 업무 지시와 상사의 갑질 등 괴롭힘 신고가 잇따랐다. 심각한 문제임을 드러내듯 지난해 1월부터 직원 5명이 줄줄이 퇴사하거나 병가를 내고 휴직에 들어갔다. 당시 박물관 전체 직원은 관장 1명과 환경미화원 4명을 제외하고 10명이었다. 직원 절반이 자리를 비우거나 떠난 셈이다. 또 10명 중 4명은 우울증 등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이 중 한 명은 업무상 질병인 산재로 인정받았다.
박물관의 한 직원은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전시 해설사에게 '화장실을 갈 때 미리 전화하고 관람객이 휴대폰을 충전하는 횟수와 시간을 기록하라'는 말도 안 되는 지시도 있었다"며 "직원들을 괴롭히는 간부들은 늘 직원들 말을 녹음했고, 사사로운 것까지 트집 잡아 스트레스가 상당했다"고 말했다.
포항노동청 조사에서도 항로표지기술원장은 직원 간 녹음 때문에 고통을 토로하는 직원에게 "녹음은 시대의 흐름이니 당연하다. 다른 공공기관도 녹취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항로표지기술원 측은 노동부 개선지도에 반발하며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기술원 관계자는 "물품이 없어져 조사 차원에서 특별감사를 한 것이지 직원을 괴롭히려고 한 게 절대 아니다"며 "직원들 간 녹음 문제도 노동부의 여러 질문 가운데 응답한 내용이 잘못 나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직원들이 외진 곳에서 일하다 보니 고충이 많았고, 직원들 간 소통 부재로 생긴 일"이라며 "지금은 근무 환경이 많이 개선됐는데, 이런 일이 터져 당혹스럽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포항노동청은 항로표지기술원의 이의신청에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포항노동청 관계자는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위원으로 구성해 조사를 했는데도 이의신청을 내고 반발하는 건 이례적"이라며 "해수부에 조사 결과를 알렸고, 노동부 본청과도 어떻게 조치할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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