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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다리도 모자라 이젠 잔도까지

입력
2021.11.10 04:30
수정
2021.11.14 11:4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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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철원군 한탄강 주상절리 잔도. 왕태석 선임기자

강원 철원군 한탄강 주상절리 잔도. 왕태석 선임기자

대단한 토목공화국이다. 길을 닦는 타고난 재주가 있나 보다. 상상 이상의 긴 터널과 높은 다리로 거침없이 길을 잇는다. 하도 새 길이 생기다 보니 내비게이션 업데이트가 조금 늦으면 손해 보기 십상이다. 길닦이 본능은 애먼 산속으로도 이어진다. 웬만한 산들엔 죄다 둘레길이 조성됐는데 계단과 덱을 얼마나 잘 깔아 놓았는지 산에 왔음에도 정작 흙길을 밟기가 쉽지 않다.

길닦이 경쟁은 허공에서도 벌어진다.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지자체들의 신청이 줄을 잇는다. 짚라인이 잘된다는 소문이 나자 너도나도 산과 강에 쇠줄을 걸어 댄다. 최근엔 출렁다리 경쟁이 요란하다. 울산 대왕암 출렁다리, 예산 예당호 출렁다리, 논산 탑정호 출렁다리 등이 ‘최장’을 내세우며 잇달아 만들어졌다. 전국에 우후죽순 들어선 출렁다리가 어느덧 200개 가까이 이른다고 한다. 자고 나면 생기는 게 최고 긴 출렁다리다 보니 ‘최장’의 후광은 금세 휘발하고 만다. 더 이상 관광객이 찾지 않는 휑한 출렁다리의 풍경은 스산하기만 하다.

출렁다리도 모자랐는지 이번엔 잔도(棧道)까지 등장했다. 강원 철원군은 한탄강 협곡의 수직 절벽에 잔도를 놓아 이달 말 일반에 개방하기로 했다. 잔도는 깎아지른 절벽에 낸 벼랑길이다. 절벽 암반에 깊은 철심을 박고 쇠줄로 난간을 지탱하도록 만든 아슬아슬한 보행길이다. 잔도는 암벽에 붙어 가로지르기에 경관 훼손의 정도가 출렁다리보다 심각하다.

한탄강 일대는 2020년 7월 국내 4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받았다. 그만큼 보존의 가치가 높은 곳이다. 잔도 설치에 따른 경관 훼손의 책임이 따르지 않을까 싶다. 유네스코는 4년마다 실시하는 재검증 절차에서 기준이 충족되지 않으면 세계지질공원의 지위를 박탈할 수 있다. 세계지질공원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나, 생물권보전지역과 달리 관광자원으로 적극 활용하는 목적도 크다지만 보존해야 할 대상에 거대한 철심을 박고 풍경을 해치는 것까지 용인할지는 의문이다.

강원 원주시도 소금산 출렁다리가 있는 간현관광지의 바위벼랑에 거대한 잔도를 설치하고 있다. 원주시는 중국의 장자제(張家界)를 본떠 간현관광지를 ‘작은 장자제’로 꾸미겠다는 계획이다. 전북 순창 용궐산 거대암벽에도 잔도가 놓였다. 담당 공무원이 10여 년 전 중국의 산을 견학하고 와서 만든 것이라 한다. 최근 용궐산 잔도 주변 암석 곳곳에 큼지막한 한자가 새겨져 논란이 일고 있다. 고사성어 길을 만들겠다고 잔도 인근 멀쩡한 바위를 깎아 석봉과 추사의 서체를 새겨 넣은 것. 금강산에 새겨진 김일성 일가를 찬양하는 글귀만큼이나 흉물스럽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관광에서 새롭고 아찔한 체험은 분명 매력적이다. 케이블카와 출렁다리, 잔도가 계속 들어서는 이유다. 그곳에 선 관광객이야 좋겠지만 그 길로 훼손된 경관은 회복이 힘들다. 멀리서 바라보면 될걸, 굳이 풍경의 안으로 들어가려는 욕심이 부르는 화다. 관광객 좀 불러 모으자고 겨우 중국 장자제 등을 다녀온 그 알량한 견문으로 나선 섣부른 개발에 우리의 소중한 풍경들이 찢기고 있다.

저 잔도들에 사람이 몰리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베끼기 시작할 텐데, 또 전국의 아름다운 절벽에 온통 잔도 공사가 벌어질 텐데.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이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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