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조 개인전 내달 30일까지
기차 여행 중이었다. 눈을 감고 잠시 여러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얼핏 망막 속을 스쳐가는 게 있었다. 나는 퍼뜩 눈을 떴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었다. (중략) 그 미묘한 감동에 휩싸여 집에 돌아온 즉시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마음에 남은 이미지를 조작한 결과 오늘의 파이프적인 그림을 완성했다.
이승조(1941~1990년)
강렬한 색채가 폭발하듯 캔버스를 가로지른다. 물감은 곳곳에 덩어리져 굴곡을 그대로 드러낸다. 추상화의 인상이 이처럼 굳어진 배경에는 1940년대 유럽에서 나타나 10년 넘게 번성한 추상 미술의 경향 ‘앵포르멜(informel)’이 있다. 진중권은 앵포르멜에 형태(form)를 부정한다(in)는 뜻이 담겼다고 설명한 바 있다. 앵포르멜 작품에서는 즉흥적이고 격정적인 표현이 두드러진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한국에서도 1950년대부터 이러한 흐름이 나타났다. 기성 질서에 저항하는 전위적 예술이었다. 그리고 한국 추상 미술의 흐름은 1970년대에 다시 흔들린다. 파이프가 늘어선 듯 기계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기하추상을 이끌었던 이승조의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다음 달 30일까지 열린다.
이승조는 1968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수상한 후 1971년까지 매년 국전에서 상을 받는다. 추상화의 입상이 드물었던 시기였다. 파이프를 쌓아 올리거나 겹겹이 세운 그의 작품은 앵포르멜과도 결이 달랐다. 그는 치밀하게 화면을 구성해 기하학적 구상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만들어 냈다. 그는 밑작업에도 오랜 시간을 들였다. 캔버스에 흰색으로 밑색을 칠한 후 표면을 사포로 문질러 매끈하게 만들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납작한 붓의 가장자리에 짙은 물감을, 가운데는 밝은 물감을 적셔서 10번 이상 색을 칠했다. 파이프에 나타난 오묘한 그라데이션(색 변화)은 그렇게 완성됐다. 물성이 사라졌으면서도 입체적이고 따뜻한 느낌이 드러나는 독특한 ‘차가운 추상’이다.
이승조는 작품에 ‘핵’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회화의 본질, 물질의 기본을 향한 관심이 드러난다. 전시장 초입의 ‘핵 10’은 파이프 형상이 처음으로 나타난 작품이다. 국전 수상작 두 작품을 비롯해 말기의 모노크롬(단색조) 작품들도 이번 개인전에서 만날 수 있다. 작가는 파이프가 특정한 대상을 모사하거나 산업화를 상징하지는 않는다고 밝혔지만 그가 활동했던 시기에 벌어진 사건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고려하면 당대에 벌어졌던 시공간의 변화와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그는 1990년 작고했지만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면서 작품들이 다시 세상에 나왔다. 국제갤러리에 전시된 작품들은 유족들이 매각하지 않고 간직한 작품들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의 아내 고정자 여사는 “선생님은 캔버스라는 표면을 없애려고 했다. 그 작업이 거의 수도적이었다. 그래서 작품이 굉장히 단단하고 지금도 우리에게 주는 힘이 어마어마하다”면서 “이승조의 작품 세계와 발상, 예술의 힘을 이제는 후대에 남겨 주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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