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왜곡 논란으로 베트남서 퇴출
드라마 '수리남'도 해당국 반발
제3세계 역사와 문화 이해 폭 넓혀야
K콘텐츠의 문화적 남용이 한류 확산을 막는 걸림돌로 떠올랐다. 남미의 수리남 정부가 드라마 '수리남'이 자국을 마약과 비리의 온상으로 그렸다며 공식 반발하고 나선 데 이어 '작은 아씨들'도 베트남 전쟁 역사를 왜곡했다는 논란에 휘말려 현지에서 서비스 도중 퇴출당했다. 세계의 관심을 먹고 자란 K콘텐츠 산업이 정작 다른 나라의 역사나 정체성을 배려하거나 존중하지 않고 비하하는 경향까지 드러내 스스로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이런 행태가 문화제국주의로 비쳐 반한 감정으로 이어지고 외교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어 K콘텐츠 산업이 타 문화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군 1명이 베트콩 100명 죽인 게 자랑?"
1일부터 5일까지 베트남 넷플릭스에서 줄곧 1위를 달리던 '작은 아씨들'은 6일 오후 3시(현지시간) 플랫폼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넷플릭스와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의 취재를 종합하면, 베트남 방송전자정보국(ABEI)의 서면 요청으로 '작은 아씨들'의 현지 방영이 중단됐다. 현지 매체인 VN 익스프레스 등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는 '작은 아씨들'이 한국군을 베트남 전쟁 영웅처럼 그려 국가를 모욕했고 베트남 전쟁 역사를 왜곡했다고 문제 삼았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용기(김정팔)가 "한국군 1인당 베트콩 스무 명을 죽인 거"라거나 "(베트남에서 비밀 작전을 수행한) 그 사람들은 100대 일"이라고 말한 장면 등이다. 베트남 누리꾼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국군 한 명이 베트콩 100명을 죽였다'는 드라마 장면에 빨간색으로 'X'자를 그린 캡처 사진을 공유하거나 베트남어와 영어로 '그게 자랑스럽냐' '역사를 왜곡해 베트남 국민을 비하한 제작진은 사과하라' 등의 항의글을 잇따라 올렸다. 스튜디오드래곤은 결국 "향후 콘텐츠 제작 시 사회 문화적 감수성을 고려해 더욱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사과했다.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힌 민감한 역사를 다룰 때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데 '작은 아씨들'이 간과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작은 아씨들'은 전쟁으로 돈과 권력을 쌓은 일가를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전쟁 당사자이자 그로 인해 피해를 본 베트남 시청자 입장에선 제작 의도와 달리 해석할 수 있고 대사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며 "가상 전쟁으로 풀어도 메시지를 줄 수 있는데 베트남 전쟁을 특정해 현지의 역린을 건드리고 논란을 빚은 건 성찰이 필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문화다양성 상징 K콘텐츠의 문화 일방성
K콘텐츠는 문화 다양성이란 시대적 바람을 타고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 그룹 방탄소년단을 앞세워 아시아를 넘어 북미와 유럽까지 세를 넓혀왔다. 하지만 K콘텐츠 내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등 제3세계 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려 수준은 극히 단편적이고 일방적이어서 논란에 휘말린 경우가 잦았다. 최근만 해도 드라마 제목으로 '수리남' 국가를 직접 사용하면서 나라 전체가 마약 산업과 결탁한 것처럼 그려 해당 국가 정부 차원의 반발을 불렀다. YG엔터테인먼트는 블랙핑크 '하우 유 라이크 댓' 뮤직비디오에 힌두교 신 중 하나인 가네샤 이미지를 함부로 사용했다가 인도에서 비판이 일자 뮤직비디오를 수정하는 일도 벌였다.
때로 타국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 대중의 증오심이나 편견에 편승하기도 한다. 6월 공개된 한국판 '종이의 집'에서 여주인공 도쿄(전종서)는 이름을 도쿄로 지은 것에 대해 "나쁜 짓을 할 거잖아?"라고 말한다. 원작엔 없는 설정으로 '일본은 나쁜 짓을 한다'는 반일 감정을 난데없이 드러내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난해 방송된 '라켓소년단'도 배드민턴 국제 경기를 주관하는 인도네시아를 자국의 승리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꼼수를 쓰는 나라처럼 그려 현지 시청자의 분노를 샀다.
이처럼 잡음이 잇따르자 이젠 K콘텐츠도 세계 주류 문화로서의 위상에 걸맞게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샐러드볼'이 돼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오만으로 비칠 수 있는 기존 K콘텐츠 제작 태도가 부메랑으로 돌아와 한류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상민 대중문화평론가는 "넷플릭스 예능 '솔로지옥'에서 출연자들이 '피부가 하얗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언급해 해외에선 이를 백인에 대한 선망으로 여겨 인종주의 논란이 불거졌다"며 "OTT란 직배망을 타고 K콘텐츠가 세계 곳곳에 배급되는 상황에서 단순히 시장으로서 세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인종, 종교 등을 아울러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생각하는 콘텐츠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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