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도시, 서울] ④온돌과 히트펌프
히트펌프, 탄소배출 적어 세계 확장
삼성·LG 히트펌프 등, 바닥난방 가능
국내선 가스보일러만 지원해서 단종
시장 닫고 정책 지원 뒷전 심각 상황
편집자주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지난 7, 8월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덴마크 코펜하겐을 방문해 세계 대도시들의 적극적인 탄소감축 성과(30~60%가량)를 확인했다. '탄소빌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서울의 현실(고작 3~8% 감축)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서울과 세계 대도시들의 차이점을 4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집 베란다에 에어컨 실외기처럼 생긴 장치가 돌아가고 있다. 실외기가 빨아들인 공기는 여름엔 차갑게, 겨울엔 따듯하게 데워져서 실내로 공급된다. 공기 일부는 스탠드 에어컨 크기의 ‘통합형 하이드로 유닛’으로 이동해 뜨거운 물을 만든다. 최대 섭씨 70℃로, 200ℓ 온수 탱크에 저장된다. 4인 가구가 하루에 쓰는 양이다. 이 온수로 바닥 난방(온돌 방식)도 가능하다.
삼성전자가 영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최고 등급 히트펌프(영국 기준 A+++)의 기능을 묘사한 것이다. 유럽, 중남미, 중국 등에서 히트펌프 10여 종을 판매하고 있으며, LG전자 역시 해외에서 최고 등급 히트펌프를 판매한다. 그런데 국내에선 두 회사 제품 모두 2020년 단종됐다. 한 해 전 세계에서 2억 대가량 팔리는 히트펌프를 국내에선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거의 '갈라파고스화'라고 할 만하다.
난방은 서울시 건물 에너지 소비의 43%를 차지한다. 수송과 함께, 도시 생활에서 직접 화석연료를 때는 유일한 부문이기도 하다.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전환하듯, 가스보일러를 전기 히트펌프로 바꾸는 게 도시 탄소중립의 핵심 축이다.
서울에 히트펌프 보급 논의가 거의 없는 것에 대해, 보일러 업계나 정부는 한국의 온돌 문화를 핑계 댄다. 히트펌프는 보일러만큼 물을 뜨겁게 데울 수 없어서 공기 난방만 가능하고, 바닥 난방이 보편적인 한국에서는 문화적, 기능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해외는 공기 난방을 하기 때문에 히트펌프를 쓸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히트펌프로도 바닥 난방 문화를 유지하는 기술 대안이 이미 마련돼 있다고 말한다. 기술은 있으나, 히트펌프에 적대적인 정책 환경 탓에 보편화되지 못할 뿐이다. 바닥 난방이 한국만의 고유 문화도 아니다.
히트펌프, 전 세계 한 해 1억9,000대 팔렸다
히트펌프는 공기나 땅, 물이 가진 열을 전기로 끌어오는 기계다. 전기 1kWh로 실외의 열 4~5kWh를 가져올 수 있다. 가스를 태우는 콘덴싱 보일러보다 탄소를 30% 이상 줄인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히트펌프는 난방 탈탄소를 위해 점차 필수적(critical)인 기술로 인식되고 있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따라서 국제 사회는 히트펌프에 대대적인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보일러보다 설치비가 비싸서 시장이 형성되기까진 정부 지원이 필요한 탓이다. 가스 보일러는 80만 원 정도면 설치하지만, 히트펌프는 750만 원이다. 670만 원이나 비싼데도 정부 예산을 들여 확대해야 할 만큼 중요한 탄소중립 수단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2019년 히트펌프를 매년 60만 개씩 늘리겠다고 발표한 영국은 히트펌프 1대당 보조금 5,000파운드(약 800만 원)를 지원한다. 예산 6,000만 파운드(959억 원)를 책정했다. 캐나다는 최대 5,000캐나다달러(약 478만 원)를 지원하고, 일본은 지난해 히트펌프 지원 예산 465억 엔(4,457억 원)을 편성했다. 지난해에만 전 세계에서 1억9,000대가 새로 설치됐다.
지난 7월 방문한 노팅엄의 개조 주택에서도 히트펌프가 쓰였다. 집집마다 실외기가 설치돼있고, 운영에 필요한 전기는 지붕의 태양광으로 거의 충당된다. 겨울철 실내 온도를 21℃로 유지한다.
리처드 로이스 유럽 규제지원프로젝트(RAP) 선임연구원은 “영국 정부는 2025년부터 신규 가스보일러 설치를 금지할 정도로 난방 부문 전력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많은 시민들이 일상에서 히트펌프를 사용하여 성능을 검증받았다”고 했다.
로이스 연구원 역시 2019년부터 자택에 공기열 히트펌프를 들여 사용하고 있다. 연면적 90㎡ 공간을 21℃로 데우고, 온수를 58℃까지 공급한다.
가스 보일러에 '친환경 보조금' 지원하는 서울시
이 같은 움직임은 국내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일부 지열·수열을 이용한 히트펌프는 서울에서 시범사업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그 수가 너무 적다. 공기열을 열원으로 한 주택용 히트펌프는 아예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서울시와 환경부는 '친환경 보일러 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가스 보일러에 지원금 10만 원을 지급한다. 일반 노후 가스 보일러를 콘덴싱 보일러로 교체해야 한다.
그러나 콘덴싱 보일러 역시 가스 보일러다. 일반 보일러보다 효율을 10%가량 개선했다지만, 히트펌프보단 탄소를 한 해 50% 가량 더 배출한다. 이미 유럽에서 2005년에 보급이 끝난 낡은 기술이며, 유럽연합(EU)이나 IEA는 가스 보일러가 2025년부터 퇴출되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럼에도 가스 보일러 업계에서는 서울에 히트펌프 보급이 어렵다며, 그 이유로 온돌문화를 끌어들인다. 바닥 난방을 위해 뜨거운 물을 데워야 하는데, 히트펌프로는 그 열을 전부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환경부도 "온돌방식 난방을 사용하고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다수인 국내 여건에 맞는 가정용 히트펌프 기술의 추가적인 개발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 적 있다.
바닥난방 가능한 히트펌프 이미 나와있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현재 히트펌프 동향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앞서 삼성전자·LG전자 사례처럼 바닥 난방이 가능한 히트펌프는 현재도 생산·유통되고 있다.
설명하자면, 국내에서 히트펌프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외부 기온에 영향을 받는 기기 특성에서 시작한다.
히트펌프가 가스 보일러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건 성능계수(COP)가 5에 달하는 높은 효율 덕분이다. 한국 전기는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7%밖에 안 되는 탓에 탄소배출량이 많다. 같은 1kWh 에너지를 내는 데 전기는 탄소를 0.424kg, 가스는 0.202kg 배출한다. 그러나 히트펌프는 전기 1kWh만으로 열을 5kWh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가스 보일러는 1kWh에 해당하는 가스 에너지로 열을 0.98kWh까지밖에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외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한랭기에는 히트펌프의 COP가 크게 떨어진다. 캐나다 천연자연부(NRCan)에 따르면, 영하 8℃에 최대 1.1까지도 떨어질 수 있다. 전기 1kWh로 열을 1.1kWh밖에 못 만든다.
COP가 이렇게 떨어지면 탄소 배출 측면에서 손해다. 따라서 1월 최저 기온이 영하 10℃로 떨어지는 국내에서는 히트펌프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게 보일러 업계와 정부 설명이다.
이 때문에 바닥난방이 보편화되지 않은 국가에서는 히트펌프로 공기 난방을 하고, 전기·가스 보일러로 온수만 공급하는 이중 체계를 갖기도 한다. 대표적인 국가가 노르웨이다. 1월 평균 최저 기온이 영하 7℃이지만, 히트펌프 보급률이 60.4%나 된다. 노르웨이 히트펌프 협회에 따르면, 2019년 판매된 히트펌프의 90% 이상이 공기난방만 하는 히트펌프(air to air heatpump)였다.
삼성도 "해외 기기 국내에 도입 가능"
최근 기술은 히트펌프의 이런 약점까지 극복했다. 기온이 영하 25℃까지 떨어져도 COP가 2.3 이상 유지된다. 영하 15℃까지는 큰 무리 없이 COP 성능을 낼 수 있다. 지난 1월 기준 서울시 최저 기온이 영하 15℃로 내려간 날은 단 하루도 없다.
최저 기온이 영하 10℃ 이하로 떨어진 날도 5일 있었으나, 이런 상황에 대처할 기술도 마련돼있다. '통합형 급수 기기'가 그것이다.
따듯한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온수 탱크와 비상용 전기 보일러를 일체화시킨 제품이다. 기온이 높은 낮 시간에 따듯한 물을 미리 만들어 저녁에 사용하고, 그래도 너무 추운 2, 3일은 전기 보일러로 열을 보탠다. 다만 이 기기들이 실내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문제점이 있어서, 히트펌프 제조사들은 냉장고나 스탠드 에어컨 크기(높이 180㎝×폭 60㎝×깊이 62㎝)로 일체화해 판매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해외에서는 나이브(Nibe), 미쓰비시, 파나소닉, 삼성전자, LG전자 등 히트펌프를 제조·판매하는 업체라면 모두 이런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일본냉동공조산업협회(JRAIA)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서는 공기로 따듯한 물을 만드는 히트펌프(air to water heatpump)가 약 58만,5989대 팔려, 2020년보다 11.6% 늘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국내 기준에 따른 인증을 추가로 받아야 한다"면서도 "해외 판매 중인 제품도 국내 도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한 해 온도 변화를 고려해서 연간 COP의 평균을 낸 SCOP(seasonal coefficient of performance)가 유럽 기준 최고 등급인 4.5~5.0이 나온다.
히트펌프 사장시키는 제도가 문제다
그러면 삼성과 LG는 왜 국내에서 히트펌프를 단종시켰을까. "누진세 제도로 인해 가스 보일러 대비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기술이 아니라, 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현행 누진세로는 1월에 85㎡ 아파트에서 히트펌프를 사용할 경우 전기요금이 16만6,000원 가량 나온다.
85㎡ 아파트는 보통 1월에 열을 800kWh 쓴다. COP가 2.5인 히트펌프로 이를 조달하려면 전기를 320kWh 써야 한다. 히트펌프 외 국내 4인 가구 1월 평균 전력 사용량은 350kWh다. 총 전기 670kWh를 쓰게 된다. 주택(고압) 누진세 최고구간인 600kWh를 넘긴다.
반면, 같은 열 에너지 800kWh를 콘덴싱 보일러(효율 98%)로 조달하면, 에너지 요금은 10만1,000원이 된다. 가스 에너지 816kWh에 대한 가스비 5만7,000원과 전기 350kWh에 대한 요금 4만4,000원을 합친 값이다. 히트펌프를 사용할 때보다 6만5,000원 싸다. 전기는 350kWh만 쓰기 때문에 누진세를 2단계까지만 적용받는다.
초기 설치 비용도 히트펌프가 훨씬 비싼데, 에너지요금도 비싸니 쓸 이유가 없다. 만일 히트펌프에 누진세가 적용되지 않는다면, 히트펌프를 사용한 가구의 전기요금은 6만7,000원이다.
난방을 위한 탄소 배출은 히트펌프가 135.6kg, 가스 보일러는 164.8로 17%가량 차이난다. 1년 단위(난방 부하 2,550kWh·SCOP 4.5)로 계산하면 차이는 히트펌프 240.2kg, 가스보일러 525.6kg으로 54%가량 차이난다. 전력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늘려서 전기 탄소배출량이 줄면 이 차이는 더 커진다.
이응신 명지대 제로에너지건축센터 교수는 "2050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공기 히트펌프로 개별 난방을 할 수 있도록 제도와 시장을 반드시 정비해야 한다"며 "공기 히트펌프 사용량을 재생에너지로 지정해 누진세에서 제외시키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탄소빌런, 서울
①서울만 뒤처졌다
②태양광 좌초시키기
③건물을 잡아라
④온돌과 히트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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