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자존감을 위한 미술 수업
편집자주
아무리 유명한 예술작품도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텅 빈 감상에 그칩니다. 한 장의 그림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맛있게 그림보기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림 이야기입니다. 미술교육자 송주영이 안내합니다.
나의 딸은 3.0kg으로 태어났다. 평균적인 평범한 체중이었으나 신생아 황달로 몇 번의 태변을 보더니 2.5kg까지 빠지면서 병원에서 가장 가볍고 작은 아기가 되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무렵에도 눈에 띄게 작았다. 혹여 눈에 보이지 않는 질환이 있나 싶어 여러 검사를 했고 아이는 ‘특발성저신장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말 그대로 건강에 별다른 문제는 없으나 “특별한 이유 없이 매우 작다”는 뜻이다. 초등학교 1학년 어느 날, “엄마, 친구들이 나보고 비정상이래. 너무 작대”라고 울먹이던 딸을 안아주었다. 앞으로도 반복될 위축감에 아이가 자존감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말을 했던 아이들이 잘못한 것이라고 대응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의 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그림 놀이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했던 미술 수업은 이후 5년 동안 이어졌다. 아이들과 함께 여러 미술 활동을 했다. 그중에서도 ‘자존감을 위한 미술 수업’이라 이름 붙였던 것이 있었으니, 검은 사포지(모래종이) 위에 크레파스로 박수근 그림 따라 그리기다.
사포지 크레파스 그림 그리기
필요한 재료는 검은 사포지와 크레파스다. 화가 박수근과 고흐에 대한 짧은 소개와 대표작 그림이 담긴 문서도 준비했다. 막 글을 읽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박수근이 대한민국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서민의 화가였다”는 문장은 어차피 어렵다. 고흐의 인생 이야기도 낯설고 먼 이야기다. 화가의 자세한 이력이나 작품의 미술사적 가치에 대한 정보는 아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온갖 시각자극, 촉각자극으로 전두엽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체험’이다. 아이들은 모래알이 박힌 듯 까끌까끌한 사포지를 만지며 신기해한다. 노란색 크레파스를 들고 빼뚤빼뚤 나무를 그리면서 아이들은 “와, 내가 그린 것이 원래 그림하고 똑같아요!” 하고 외친다. 어린 아이들이 돌아다니지 않고 앉아서 그림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0~40분 남짓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른의 도움 없이 혼자 사포지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그만큼 사포지 크레파스 그림은 쉽고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미술 활동이다.
나무 모양이 다르고, 밤하늘의 소용돌이 무늬가 달라도 상관없다. 누가 보더라도 마티에르(질감) 표현이 풍부한 유화 작품 같은 것이 완성되면 아이들은 함박웃음을 짓는다. “선생님! 엄마가 제 그림 너무 멋있다고 액자에 넣어줬어요”라며 다음 시간에도 흥분은 가라앉지 않는다. 나이 불문, 재능 불문, 그 누가 도전해도 “작품 같은 느낌”이 완성되는 것이 사포지 위 크레파스 그림의 마법이다. 무엇인가를 (어렵지 않게) 완성해본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물이 그 누구의 눈에도 편견 없이 “우와, 멋지다!”라는 칭찬을 듣기에 부족함 없는 일이 되면, 우리는 잠시 잊었던 힘을 기억하게 된다. 바로 자신감이다. 여기서 잠시, 자신감과 자존감을 구별할 필요가 있겠다.
자존감 회복을 위한 자기연민
인문학과 심리학의 대중화에 힘입어 자신감과 자존감이라는 말을 흔하게 접한다. 대부분 자존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특히 자녀 양육에서 자존감이라는 용어는 빠짐없이 등장한다. 너무 익숙하여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자신감과 자존감을 혼동하여 잘못 이해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 박사는 자존감을 잘못 이해하면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네프 박사가 지적한 “자존감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존감을 획득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위해서 우리는 “나는 평균 이상이다”고 자각하려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평균 이상일 수는 없는 논리 모순이 있음에도 우리는 반복하여 자신의 특별함을 찾는다. 이것이 반복되면 나르시시즘이 된다. 미국 심리학회에서 25년 동안 추적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 대학생들의 나르시시즘이 갈수록 최고 수치를 경신한다고 한다. 자신의 종교, 민족, 신뢰하는 정치 정당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면서 상대편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은 도취적인 자신감으로 자존감을 획득하는 과정 중에 생기는 가장 큰 부작용이다.
둘째, 성공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성공을 원하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자기 자신을 다그친다. 전 세계 여성들이 자존감 획득을 위해 가장 많이 투자하는 영역이 매력적인 외모다. 슈퍼모델과 같은 외모를 갖기 위해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소녀들이 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즈음에는 남녀 아이들 모두 자기 외모가 매력이 있다고 평가하지만, 6학년만 되어도 여학생들의 자존감 수치는 급격히 떨어진다. 평균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성공으로 여기는 한, 비교우위에 의한 자기 비하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크리스틴 네프 박사는 이와 같은 자존감 형성의 모순과 자기혐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자기연민’을 제시한다. 여기서 자기연민은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 자기연민은 또 다른 말로 ‘마음챙김’이다. 자기연민, 즉 셀프 컴패션(Self-compassion)은 최근 심리학의 자존감 연구에서 거의 함께 다루어지고 있는 주제다. 일견 불교 철학의 ‘자비’와 유사한 개념이기도 한 자기연민은 자신에 대해 만족하는 ‘감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는 ‘태도’가 핵심이다. 위축감이 들고 자신감이 고갈되는 날에 자신과 마주하는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나의 집에 방문한 손님의 겉옷을 받아주고, 음료를 나눠주며, 웃으며 불편한 것은 없는지 물어보는 사소한 매너, 그것을 내가 나에게 하자는 뜻이다. “우리는 항상성의 온도를 유지해야 생명이 유지되는 포유류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연민을 가질 때 생리적, 생화학적으로 몸안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이 정신적 치유에 도움이 됩니다. 자존감 회복에서 자신감이라는 감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연민의 태도가 먼저입니다. 자기연민이 없는 자존감 회복은 자기도취나 타인혐오를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네프 박사의 말이다.
이처럼 자신감은 감정일 때가 아니라 태도일 때 건강하게 작동된다. 사포지에 크레파스로 작품을 따라 그리는 간단한 활동을 통해 얻은 자신감은 칭찬받았다는 만족감을 넘어서는 것일 때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 “나도 이런 멋진 그림을 만들 수 있어!”라는 성취적 감정에서 출발하더라도 “끝까지 해 보니까 완성할 수 있었어!”라는 태도를 체험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박수근과 박완서
1914년 출생한 박수근은 어린 시절 만났던 밀레의 '만종' 그림 때문에 화가가 되었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 어린 박수근은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였고, 보통학교(초등학교)가 학력의 전부인 그는 일본 유학파 화가들을 제치고 18세에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했다. 한국전쟁이 나고 우여곡절 끝에 피란하여 미군부대에서 초상화가로 생계를 유지했던 박수근의 삶은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거칠고 험했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남긴 그림은 어느 작품을 보더라도 따뜻하고 다정하다. 박수근과 함께 미군부대에서 일했던 박완서는 당시 박수근을 만났던 사연을 훗날 첫 소설 '나목'에 담았다. 박완서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현대문학) 에세이집에서 박수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 어느 날, 박수근이 두툼한 화집을 한 권 옆구리에 끼고 출근을 했다. 나는 속으로 ‘꼴값하고 있네. 옆구리에 화집 낀다고 간판장이가 화가 될 줄 아남’ 하고 비웃었다. 그때 그가 화집을 펴들고 나에게로 왔다. 망설이는 듯 수줍은 미소를 띠고, 마치 선생님에게 칭찬받기를 갈망하는 초등학교 학생처럼 천진무구한 얼굴이었다. 그는 ‘일하는 촌부’ 그림 하나를 가리키더니 일제시대의 관전인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자기의 그림이라고 했다. 그것은 사건이요 충격이었다. 그동안 함부로 대한 간판장이 중에 진짜 화가가 섞여 있었다는 사실은 내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나의 수모를 말없이 감내하던 그의 선량함이 비로소 의연함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나에게 화집을 잠깐 보여준 후에도 그는 여전히 잘난 척이라곤 모르는 간판장이들 중에서 가장 존재 없는 간판장이로 일관했다. 나는 내 불행에만 몰입했던 눈을 들어 남의 불행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부터 PX 걸 생활이 한결 견디기가 쉬워졌다. 그에 대한 연민이 그 불우한 시대를 함께 어렵게 사는 간판장이와 동료 점원들에게까지 번지면서 메마를 대로 메말라 균열을 일으킨 내 심정을 축여오는 듯했다. 내가 막돼가는 모습을 그가 얼마나 연민에 찬 시선으로 지켜봐 주었는지도 알 것 같았다. (…)”
박완서는 박수근에 대해 마치 잎이 다 떨어진 벌거벗은 겨울 나무 같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당당한 자신감과 건강한 자존감이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박수근 그림 속 여인들은 얼굴이 없다. 그의 나무에는 잎도 없다. 그러나 가진 것 없는 자기 자신 그대로 안고 보듬는 자기연민이 녹아든 그림들이다. 그래서 그의 나목과 여인들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의 그림 그리기, 훗날의 위로가 되기를
어린 시절 나의 미술 수업을 함께했던 내 딸과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아이들이 웃으며 검은 사포지에 크레파스로 박수근의 벌거벗은 나무를 그렸던 모습을 기억한다. 아이들의 측두엽 하부 기억저장소에 박수근의 이 그림은 보험처럼 저장되었을 것이다. 이제 그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었다. 고등학생이 된 나의 딸은 여전히 매우 작다. 그러나 자신이 평균 이하라며 슬퍼하거나 성공적인 외모가 될 수 없다고 우울해하지 않는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아이가 앞으로 살면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위축감을 느끼는 때가 또 올 것이다. 마음이 추운 어느 겨울날 길을 걷다가 벌거벗은 나무를 바라본 순간에, 비록 박수근의 이름도 '나무와 두 여인'이라는 제목도 기억나지는 않더라도, 기억저장소의 파편이 작동하여 왠지 모를 따뜻함이 소환되기를, 그렇게 아이에게 ‘위로’라는 보상금이 지급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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