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권리관계 서류 송부 안 하면 중개사 책임 명백
다만 임차인들 취약한 시세 정보는 고지 의무 없어
법원, 시세를 과하게 부풀려 설명했을 땐 책임 인정
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가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숨진 '빌라왕' 사건을 계기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법적 분쟁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 보증금을 날린 임차인이 "미리 위험성을 알려주지 않았다"며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중개사 고지 의무도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개사 책임이 강화되는 추세지만, 건물 권리관계를 넘어선 정보에 대해선 고지 의무가 없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권리관계 설명은 의무... "채권최고액 전액 위험하다 봐야"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87단독 반정우 부장판사는 최근 A씨가 공인중개사와 서울보증보험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중개사와 보증보험이 공동으로 4,000만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A씨는 임대인의 대출금과 전세보증금 합계가 건물 매매 가격을 웃도는 ‘깡통전세’를 소개받았고, 건물이 경매에 넘어간 뒤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A씨는 이에 건물 근저당권 정보 등을 알려주지 않은 중개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중개업자는 중개 건물의 소유권, 전세권, 저당권 등 권리관계를 의뢰인에게 설명해야 한다. 법원은 "중개사가 건물 선순위 임차인과 근저당권 채권최고액 등을 알려주지 않아 신의성실 원칙을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임차인 A씨를 대리한 법무법인 굿플랜 김가람 변호사는 "중개사 측에선 구두로 10억 원대 건물 채무액을 설명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실제 채무액뿐만 아니라 그보다 20~30% 높게 설정되는 채권최고액을 특정해 알려야 했다고 판단했다"며 "위험 금액을 어디까지로 봐야 하는지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례"라고 말했다.
시세 등은 고지 의무 없지만 과하게 부풀리면 책임
중개사 책임이 비교적 명확하게 가려진 A씨 사례와 달리, 분쟁이 복잡해 한쪽 손을 들어주기 애매한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건물 근저당권 등 권리관계 이외의 정보는 공인중개사가 먼저 조사해 알려줄 의무가 없어, 임차인이 이를 문제 삼을 경우 패소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2021년 "건물 부채와 임대차 보증금을 합한 금액이 시가를 상회하는지 중개사가 확인해 설명할 의무까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임차인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 경우가 있었다. "집주인에게 빚이 있는데 중개사가 재력을 과장했다"는 임차인 주장을 두고도, 2016년 법원은 "임대인의 체납세액이나 채무를 (중개사가 알렸어야 할) 건물 권리관계에 관한 사항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임차인이 시세 등을 먼저 문의했다면 소송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2016년엔 의뢰인의 시세 질문에 실제 수준보다 3억 원을 높게 알려준 중개사 행위를 두고 "중개인이 감정평가인 수준으로 시세조사를 할 필요는 없지만, 의뢰인이 요구할 경우 성실하게 답할 의무가 있다"며 7,500만 원 배상 책임을 물은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우리나라 임대차 현실에서 보증금 회수가능성은 주로 목적물의 가액 등에 따라 결정된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임차인들이 시세 정보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판사 출신인 법무법인 율촌 박해식 변호사는 "시세는 변동성이 커서 정확한 액수를 특정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계약 시점에서 중개인이 임차인 요구에 따라 합리적 수준에서 설명했는지 따지는 것은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가람 변호사는 "임차인 입장에선 최대한 다양한 정보를 중개인에게 질의하고 이를 증거로 남겨두는 게 안전하다"며 "다만 임차인들은 시세 정보에 가장 취약한 만큼, 이를 중개사 설명 의무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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