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다녀와 복직하니 최저 평가를 줬습니다. 받아들였죠. 그런데 그다음 해에도 또 점수를 낮게 주더라고요. '육아휴직 다녀왔으니 네가 희생해야 한다'면서요."(삼성전자 직원)
"반제품을 옮기다가 부딪혀 발목 인대가 끊어졌습니다. 마음도 아픈데 병원 치료한 뒤 고과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관리자도 마찬가지로 같은 등급을 받았어요."(삼성 SDI 직원)
성과급 등 임금과 진급의 기준이 되는 고과 제도에 대한 삼성 계열사 직원들의 평가다. 공정하고 효율적인 임금체계로 인식되는 성과급제가 오히려 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직원들의 근로 의욕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부가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기업들의 직무·성과급제 확산을 유도하고 있는 가운데, 제도의 장점뿐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도 고려해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교수와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등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진행한 '삼성 고과제도의 현황과 폐해 실태연구' 결과를 6일 발표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의뢰로 진행된 이번 연구는 삼성전자와 삼성SDI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연구진은 두 회사 직원 445명에 대한 설문조사와 22명에 대한 면접조사를 실시했다.
삼성 계열사가 연구 대상으로 선택된 이유는 근로자들이 고과제도로 느끼는 압박감과 고통을 가장 많이 호소하는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성과급 제도를 도입했다.
연구자들이 주목한 삼성 고과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상급자의 자의적인 평가였다.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상급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평가가 이뤄져 근로자들이 관리자의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고과 평가에 대한 설문 응답자들은 신뢰 수준은 낮았다. '고과평가가 개인의 노력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고가평가는 신뢰할 만하다'에 대해 부정적인 응답을 한 비율은 각각 76.0%, 75.1%에 달했다. 정 교수는 "성과급제가 갖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점은 완벽하게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이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상위 고과를 받기 위해 관리자의 고향 집에 가서 농사나 김장을 돕거나, 대리운전을 하는 등 '줄서기 경쟁'을 하는 근로자들도 있었다고 연구진은 전했다.
사회적 차별이 평가에 적용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민 활동가는 "누군가는 낮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상대평가에서 타깃이 되는 건 군입대 예정자와 육아휴직자, 여성 등 약자"라고 말했다.
안전사고 발생 시 본인과 관리자에게 징계를 주는 규정이 있어 근로자들이 안전 문제에 침묵하게 되는 부작용도 지적됐다. 최 활동가는 "안전사고 이후 근로자를 징계하는 방식으로는 산재가 은폐될 뿐"이라며 "이후 더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평가에 따른 보상의 차이가 과도한 것도 문제로 언급됐다. 2년 연속 하위고과를 받으면 입사 동기들과 수천만 원의 연봉 차이가 나게 돼 과도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한 직원은 "스트레스로 경기도에서 서울 남산타워까지 정신없이 13시간을 내리 걸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고, 또 다른 직원은 "이가 다 빠졌다"고 토로했다. 고과제도 때문에 동료들 간 화합이 되지 않는다는 응답도 있었다. 정 교수는 "투명하지 않은 성과제도는 근로자들에게 공포감만 남긴다"고 지적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날 발표된 실태연구 보고서에 대해 "공식적으로 드릴 말씀은 없다"면서도 "설문 대상 직원들의 대표성이 크지 않은 걸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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