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에서 9월 10일까지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 그에게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라는 설명이 따라다닌다. 최근에는 ‘한국 미술품 가운데 역대 최고가로 팔린 작품을 그린 작가’라는 영예로운 수식어가 추가됐다. 밤하늘처럼 푸른 화면으로 유명한 ‘우주’가 지난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8,800만 홍콩달러(당시 약 131억 원)에 판매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환기가 명명한 ‘우주’의 본래 제목 ‘5-Ⅳ-71 #200’을 외우고 다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경매 신기록을 쓴 작가로 알려지기 이전의 김환기, 단색화 열풍으로 명성이 더욱 높아지기 이전의 김환기는 아직도 연구가 필요한 화가다. 그가 일본에서 추상미술을 접한 1930년대부터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전면 점화'(화폭을 점으로 가득 채운 그림) 작풍을 완성한 말년의 1970년대 초까지 작품 120점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 ‘한 점 하늘_김환기’가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18일부터 열린다. 전면 점화 15점을 비롯한 유화 88점과 드로잉, 조각이 관람객을 만난다. 전시실 층고를 높이는 등 1년 6개월간의 리모델링을 마치고 최근 다시 개관한 호암미술관의 첫 전시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김환기의 예술 세계를 시대적 단절 없이 소개한다는 점이다. 김환기의 작품 세계는 흔히 △도쿄·서울 시대(1930년대~) △파리·서울 시대(1950년대) △뉴욕 시대(1960년대~)로 구분되는데 이번 전시는 이러한 구분을 의식적으로 피했다. 예컨대 ‘꽃가게’(1948년)는 꽃가게 풍경을 그린 소품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이미 추상화의 흔적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전시 작품으로 선정됐다. 동양의 문인화처럼 보이는 ‘정물’(1953년) 역시 화면을 네 가지 색으로 분할한 색면분할이 나타나는 등 추상적 조형 의지가 일찍부터 드러난 작품이다. ‘노란 과일이 있는 정물’(1954년) 역시 과일이 놓인 바닥을 위에서 내려다보듯이 그렸다는 점에서 새롭다. 실제 과일을 그린 그림이지만 추상화처럼 보이는 것이다.
전면 점화의 대표작들도 한자리에 모였다. ‘5-Ⅳ-71 #200’(1971년)은 물론이고 이 작품 이후 등장한 구도가 한층 유려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김환기의 전면 점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주된다.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 #166’ 등 1970년도의 전면 점화 작품들은 점이 수평적으로 배열된 평면적인 형태다. 전면 점화 작품들은 1971년부터 구도에 곡선이 등장하고 1973년도에는 굉장한 활기를 띠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면 점화 안에 흰색 선으로 구획을 만들어 ‘점화 안의 점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흰 선을 사이에 두고 하늘과 땅을 표현한 ‘하늘과 땅 24-IX-73 #320’(1973년)이 대표적이다.
전시장 곳곳에 붙어 있는 김환기 일기들은 특기할 만하다. 발췌돼 있는 일기의 내용은 전시 작품과 관련이 있는 일종의 작가 노트다. 예컨대 그가 전면 점화를 완성해 가던 1968년 1월 23일, 그는 ‘날으는 점, 점들이 모여 형태를 상징하는 그런 것들을 시도하다. 이런 걸 계속해보자’고 쓴다.
한편 ‘창’(1940년)과 전면 점화 ’26-V-71 #204’ 등 그동안 도판 등으로만 존재가 알려졌던 작품들이 처음으로 전시장에 나왔다. 산 능선을 주황색 점의 집합으로 표현한 ‘산’(1940년대 후반~1950년대 초)의 경우, 컬러(유색) 도판으로만 존재가 알려져 있었다. 김환기가 전면 점화를 완성한 1970년대 이전에도 점묘에 익숙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그림이다. ‘산’과 함께 전시된 또 다른 ‘산’(연도미상)은 과거 김환기 화집에만 포함됐던 그림인데 이번에 소장가와 미술관 측이 연락이 닿아서 전시됐다. 전시를 기획한 태현선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은 “연구자들이 새롭게 연구해야 하는 토대들이 나온 것”이라면서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회고전이지만 사실 미래를 위한 전시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료 관람(1만4,000원)으로 9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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