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헌법소원 원고 참여 김서경씨 인터뷰
5년 전 10대들 기후 위기감에 첫 모임 열어
청소년기후행동, 회원 1000명 단체로 성장
한국 탄소감축 정책, “평가할 만한 게 없다”
“성취감 얻기 힘들지만 할 수 있는 것 해야”
2018년 8월 어느 토요일, 서울혁신파크의 공유 공간에 청소년 30~40명이 모였다. 기후위기에 대해 비슷한 고민을 하던 10대들이 알음알음 만든 자리였다. 딱히 주도자도 없었다. 다음 날인 일요일에도 모였는데 그때는 20명 정도가 다시 나왔다. 이후 빠지고 들어오며, 10명 남짓이 모임을 이어갔다.
이 모임은 국제기후운동인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forfuture)’과 연계해 2019년 처음으로 한국에서 결석시위를 열었다. 이제 회원 1,000명가량을 둔 기후단체 청소년기후행동(청기행)이 탄생한 과정이다. 고교 1학년 때 혁신파크의 첫 모임부터 참여했던 김서경(21)씨가 대학생이 된 지금, 기후위기는 더욱 심각하다.
청기행 상임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를 지난 5일 서울 종로의 청기행 사무실에서 만났다. 서경씨는 첫 모임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때는 기후위기라는 말도 없었어요. 기후변화라고 했죠. ‘북극곰이 죽는다, 지구가 아프다, 해수면이 상승한다’ 이런 이야기밖에 못 듣는데, 이 정도로 일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으냐.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면서 해볼 수 있는 걸 찾아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이야기를 하게 됐죠.”
뭘 해야 할지 몰라 헤매던 시기를 거쳐, 2019년 기후시위에 나서고, 2020년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줄곧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청기행은 ‘기후변화’ 대신 ‘기후위기’라는 말을 일상화시켰다.
서경씨는 강조했다. “단체가 만들어진 것에 잘됐다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아요. 2019년 시위를 한 후에도, 시위가 잘 진행됐고 언론기사도 많이 나갔는데, 그럼 해결이 된 건가? 그건 아닌 거죠. 이렇게 해서는 해결을 못한다는 결론이었고, 자연스럽게 그러면 우리는 단체가 되네, 길게 가야 되겠네, 이렇게 된 거죠.”
툰베리가 알려지기 전에 시작된 모임
한국 청소년들의 기후대응 움직임은 스웨덴의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에 비견되곤 한다. 서경씨는 첫 모임이 툰베리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땐 툰베리 건이 기사로 다뤄지기 전이었어요. 우리가 모이고 그 다음 주에 툰베리 기사가 처음 나왔으니까요.”
처음엔 단체를 만들 생각도 전혀 없었다. “뭔가를 하자고만 했었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까, 활동을 시작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죠. 그래서 공식적으로 뭔가 해보자고 한 게 2019년도였어요.”
2019년 3월, 5월, 9월 3차례 기후파업 시위가 있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과 연대해서 했어요. 3월에 100명이 넘었고, 9월에는 700명 정도가 왔어요. 청소년들도 있었고 비청소년도 있었고, 단체도 아니었고 뭐 하는지도 모르는 애들이 시위를 한다는데 거기에 그만큼의 사람들이 와 준 거잖아요. 처음에는 박스를 주워서 피켓을 만들고 물품은 빌려오고, 공간을 지원해줄 수 있는 분들을 찾아서 지원받고 하는 식으로 했죠.”
이들이 기후시위의 문을 연 후, 지난해 9월 24일 열린 기후정의행진에는 전국 360여 개 단체가 참여해 수만 명이 모였다.
헌법소원에 모든 소망을 담아
청기행이라는 이름은 2019년 5월이 지나서 쓰기 시작했다. 일시적인 시위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헌법소원도 최선의 방식을 찾아가는 일환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헌법소원은) 오래전부터 이야기를 계속했었어요. 2018년에도 이야기가 나왔었고 2019년에도 꾸준히 이야기를 했었어요. 헌법소원이라는 방식을 사용할지 안 할지, 청구를 한다면 어떤 형태로 할지, 무엇을 주장하고 무엇에 대한 이야기를 할지를 정하는 과정이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2019년에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기후위기’라는 언어를 일상화시키고, 정부의 기후위기 언급을 끌어올렸고, 정부가 기후위기 선언(2020년 문재인 대통령의 ‘2050년 탄소중립선언’)을 하게 된 그런 사건들이 있었잖아요. 그런 활동들이 쌓여서 저희가 헌법소원을 제기할 만한 근거들이 만들어진 거죠.”
2020년 3월 13일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제기한 헌법소원은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 대해 ‘미흡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생존권, 평등권, 인간답게 살 권리,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서경씨를 비롯해 19명의 청소년이 원고이다. 활동을 하면서 연대하게 된 변호사들이 헌법소원 사건 대리인을 맡아주었다. 지난해 2월에는 새로 제정된 ‘탄소중립기본법’(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35% 이상 감축)의 위헌성 부분을 더해 헌법소원 청구취지 및 이유를 추가했다. 올해 3월에도 기자회견을 열고, 의견서를 제출했다.
3년이 넘었건만 헌재는 묵묵부답이다. 공개변론 신청도 두 차례 했으나 답이 없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를 포함해, 지금까지 17개의 서류를 제출했다. 최근 6차 의견서도 냈다. 서경씨는 “다음 분기까지 집중적으로 판결을 촉구하는 활동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헌재가 기각하면 어떨 것 같은지 물었더니, “문제가 복잡해지는데 그러면···”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길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위헌성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명확한 상황이고, 이미 예정된 위기인 거잖아요. 2020년 청구 이후 이 짧은 3년 사이에도 상황이 굉장히 많이 변했어요. 기후위기라는 게 가시화되기 시작했어요.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변화할 거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여기에서 대처해 줄 수 있는 건 정부 말고는 없어요.”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나
기성세대가 청소년·청년층에 비해 기후위기에 관심이 덜 하다고 느끼는지 물었더니 “관심이 없거나 몰라서가 아니라 우선순위가 아닐 뿐이고,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는 게 더 크다”고 말했다.
“기후위기라는 걸 모르진 안잖아요. 그런데 왜 실천을 안 할까 보면, 이해관계가 너무 많이 얽혀 있어요.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실천을 안 하는 이유는 기후위기가 일어난 이유와 같아요. 기후위기라는 게 현대에 들어서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난 문제가 아니고 예전부터 아주 심각하게 이야기되어 왔지만 수면 위로 드러난 게 얼마 되지 않았을 뿐이죠. 사람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특히 정책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나 이해관계자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이해관계자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피해가 가니까 해결을 안 하는 것이고, 평범한 사람들은 탄소감축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직접적인 행동이라는 게 딱히 없어요. 평범한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외면을 하고 싶은 거죠.”
정부의 탄소감축목표에 대한 평가를 물어봤다. “평가할 만한 게 있을까요?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계획이 일단 내 정권에서 해결하지 않겠다는 게 보이잖아요. 그리고 2030년 이후의 감축과 로드맵이 아예 없어요.”
실제 올해 대통령 직속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발표한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보면,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를 감축해야 하는데도 윤석열 대통령 임기인 2027년까지 연평균 감축률은 1.9%만 제시했다. 2028~2030년 연평균 9.3%씩 감축하겠다고 되어 있다.
애초 위원회에는 청기행 소속 오연재씨가 민간위원으로 참여했으나, 중도 사퇴했다. 서경씨는 “탄소중립위원회라는 그 자리 자체가 기후위기를 해결하자는 느낌보다는 합리화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로 보였고, 유의미하지 않다는 판단이 있었던 거죠”라고 설명했다.
되는 것이 없다고 느낄 때
한국의 탄소배출량은 세계 10위인데, 감축 노력은 세계 최하위이다. 국제 평가기관에 따르면, 세계 탄소배출량의 90%를 차지하는 60개국 중 한국의 기후대응 순위는 57위이다. 이런 기후대응 후진국에서 기후 운동가로 활동하는 건, 성취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경씨는 말했다. “사실 되는 게 별로 없어요. 성취감을 얻기 힘든 분야죠. 직접적으로 바로바로 문제가 해결되고 뭔가 성과가 눈에 나타나고 그런 것들이 아니다 보니까요.”
무엇이 잘 안 되는지 물었더니, 줄줄이 답이 나왔다. “(탄소) 감축이 안 되죠. (석탄화력) 발전소 짓는 것도 못 막고요. 감축 목표도 제대로 못 잡고, 적응계획도 사회안전망도 하나도 못 만들고··· 되는 게 없어요.”
석탄화력 발전소 건설을 막으려고 해도 방법은 마땅치 않다. “현장을 가서 시위도 하고 기자회견도 하는데, 사실 현장에 간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지는 않아요. 지역 주민들과 연대를 한다고 해도 발전소 짓는 입장에서는 지역 주민들 의견이 크게 중요하지 않거든요. 한계가 존재해요.”
이미 배출한 탄소만으로도 점점 재난은 심각해지고 있으니 탄소감축 노력과 별도로, 기후 피해를 최소화할 적응계획과 사회안전망도 필요하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분명 한계가 있어요. 결국 집단이 모여서 해결할 수 있고 대표적으로 정부에서 나서서 계획을 세워주고 안전망을 만들어 내고 해야 하는데, 거기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되고 있지 않죠.”
주거래은행이 전북은행인 이유
서경씨가 답변에 가장 오래 고민한 질문은 “기후위기 활동가로서 꼭 지키는 생활원칙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한동안 답이 없는 그에게 “커피 테이크아웃을 안 한다던가”하는 가벼운 원칙도 포함된다는 말을 했더니, “아 저는 금융권 불매 이런 거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로웨이스트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기후활동가로서 하는 활동은 아니잖아요. 제로웨이스트만으로 기후위기 해결은 못 하는 거 알고 있으니까요. 기후활동가로서 제로웨이스트하고 있다고 하면 욕먹죠”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금융권 불매는 무엇일까. “청기행에서 주거래은행으로 전북은행을 사용해 왔거든요. 석탄산업 투자를 안 하는 곳을 찾다 보니까 그 은행과 거래를 한 거죠. 그런데 이제는 은행들이 직간접적으로 석탄투자를 안 하는 곳이 없다고 알고 있어요. ”
기후위기를 위해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소비자를 위해, 금융권의 투자내역 공시가 중요한 이유이다. 탄소산업에 투자하는 금융기관들과 탄소감축 분야에 투자하는 금융기관을 손쉽게 구분해서 거래할 수 있는 정보를 알기 쉽게 공개하도록 하는 것, 이 또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기후위기 외면하는 정치는 누구 탓인가
가속화하는 기후위기 현실에서도 한국의 정치권은 이 문제를 뒷전에 두고 있다. 그저 정치인들을 비판만 하면 될까. 서경씨는 “우리가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가장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는 관심이 많은데 ‘정치인은 왜 이런 거 안 해 줘?’라는 부분을 생각해보면요.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했나, 어떻게 표현했나, 한 번이라도 유세 현장에 가서 이런 걸 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나, 그 사람들의 의견을 읽어보고 평가한 과정이 있었나를 돌아봐야 해요. 사실 거의 없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요.”
정치인들에게 실망하고 비난하기에 앞서, 얼마나 의견을 전달하고 압박했느냐를 짚어봐야 한다는 말이다. 청기행은 선거 때면 후보들에게 기후위기와 관련한 정책을 제안하고, 공약 질의 및 평가를 진행했다.
이런 청기행의 활동에 적대적인 사람들도 있다. “적대적인 사람이 많아요. 기후위기는 정치의 문제고 정책의 문제인데, ‘기후위기라는 게 정치적 문제다’라는 말을 꺼낸 순간부터 사람들이 적대적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어요. ‘청소년들이 환경문제를 다룬다’면서 마음 편히 지지하다가, 우리가 막 정치인과 정책을 비판하면 ‘쟤네 뭐냐’ 이런 소리를 하는 거죠. ‘청소년들이 좌파에 물들었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기후위기 대응을 ‘좌파’라고 규정짓는 데 대해 서경씨는 “사회상이 변해야 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변화를 추구한다는 면에서는 진보의 의미가 맞긴 하죠. 하지만 정치적 용어로 사용될 때는 다른 의미로 이해가 되는 게 많죠”하고 아쉬워했다.
성과가 있다면 그건 모두의 것
서경씨는 청기행의 첫 태동부터 지금까지 동행해온 몇 안 되는 활동가이다. 청기행에는 그를 포함해 3명의 상임활동가가 있다. 두 명은 상근직이고, 대학생인 서경씨는 반상근으로 일한다. “상임활동가 주축으로 해야 할 일을 설계하고, 실행을 할 때는 회원분들 중에 가능하신 분들과 함께해서 연대하고 있어요.”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을 때의 좌절감은 크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수는 없다. “좌절감은 사람을 좀 먹죠. 하지만 저희는 이 활동을 시작한 게 성취감으로서 시작한 건 아니다 보니까, 당연히 절망과 좌절에서 시작을 했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고자 이런 느낌은 아니었어요.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는 거죠.”
‘되는 것 없는 기후운동’ 속에서 지치지 않는 법을 물었다. “사람마다 문제를 받아들이는 게 다를 것 같은데, 엄청 불타오르고 절박한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그런 적은 없어요. 중요하다는 걸 아는 정도의 사람이었고, 뭔가 할 수 있는 건 해보자였죠. 그게 또 제 일상의 전부가 되지는 않아요.”
그는 인터뷰 말미에, 청기행의 활동을 누구 한 명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았으면 한다는 뜻을 전했다. “청기행이라는 게 모임이나 단체로서 존재하는 게 가장 좋아요. 그래야 누구나 들어오고 접근할 수 있으니까요. 그게 한 명 개인으로 포커스가 맞춰지면, 그냥 ‘저 사람이 대단한 거지’하고 받아들이게 되잖아요. 성과가 있더라도 모두가 한 거라는 거죠.”
그 때문인지 서경씨는 인터뷰 내내 개인적인 면이 두드러지지 않도록 답변에 신경을 썼다. 기후위기가 주는 좌절과 절망은 한 명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고, 거의 모두가 참여하고 압박할 때 겨우 바뀐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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