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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우주개발 조건… 남의 쓰레기는 감시하고 내 쓰레기는 책임수거

입력
2023.12.08 04: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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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협을 기회로
"1년 전 추락 위성 비껴간 건 행운"
내년 9월 미국 FCC 5년 규칙 발효
우주쓰레기 비즈니스 활성화 전망
"우리 기업들엔 위기이자 기회"

편집자주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가는 발사체, 위성들로 지구 궤도가 포화 상태다. 한국일보는 지속가능한 우주산업을 위해 떠오르고 있는 우주쓰레기 기술을 조명하는 기획기사를 총 2회에 걸쳐 보도한다.

대전 유성구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에서 연구원들이 우주물체를 탐지, 추적하는 데이터를 분석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천문연 제공

대전 유성구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에서 연구원들이 우주물체를 탐지, 추적하는 데이터를 분석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천문연 제공

대전 유성구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 상황실. 미국 위성 하나가 지구로 떨어지는 중이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우주에서 떨어지는 위성은 대기권을 지나며 고열과 공기저항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작은 파편들로 흩뿌려지곤 한다. 그중 일부가 도심에 떨어진다면 중요한 시설이 파손되거나 인명 피해가 생길 수 있다. 더구나 추락 중인 위성은 2,450㎏이나 됐다.

연구원들은 지난 1월 8일부터 밤을 새우며 떨어지는 위성을 추적하고 있었다. 이날까지 예상됐던 추락 범위는 남위 56.98도부터 북위 56.98도 사이. 러시아 남쪽부터 아르헨티나 최남단까지를 아우르는 드넓은 범위라서, 위성이 정확히 어디에 떨어질지 파악하기 어려운 답답한 상황이 이어졌다.

새벽 4시쯤, 추락 예상 시간과 범위가 수정됐다. 낮 12시 20분부터 오후 1시 20분 사이 떨어지는데, 12시 50분부터 3분간은 대전을 중심으로 반경 500㎞ 상공을 통과할 거라는 예측이었다. 지도상에서 서울과 부산의 직선거리가 300㎞가 넘는 걸 감안하면 우리나라 거의 전역이 추락 가능 범위란 얘기였다.

정부는 경계경보를 발령했고, 추락이 예상됐던 1시간 동안 전국 공항의 비행기 이륙을 금지했다. 연구원들이 손에 땀을 쥐던 사이 위성은 다행히 알래스카 바다에 떨어졌고, 대참사는 한반도를 비껴갔다. 데이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마음 졸였던 최은정 천문연 우주위험연구실장은 생각했다. '앞으로도 이런 행운이 계속될까.'

전자광학 감시 한계 넘을 수 있나

대전 유성구 한국천문연구원 내 우주위험감시센터의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지구 주변을 도는 수많은 우주물체를 나타내는 데이터가 떠 있다. 천문연 제공

대전 유성구 한국천문연구원 내 우주위험감시센터의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지구 주변을 도는 수많은 우주물체를 나타내는 데이터가 떠 있다. 천문연 제공

1월 9일 천문연에서 있었던 실제 상황이다. 알래스카로 떨어진 건 미국의 지구관측위성 ERBS였다. 천문연은 ERBS를 비롯해 지구에 위협이 되는 우주물체를 감시하는 데 미국이 제공하는 레이다 데이터를 활용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연합우주작전센터가 특정 시점의 우주물체 위치와 속도, 고도, 경사각 등의 정보를 담아 웹사이트에 공개하는 데이터다.

문제는 보안을 이유로 여러 변수가 제외된 채 공개되기 때문에 정확도가 높지 않다는 점이다. 최 실장은 "어떤 우주물체가 대전 상공에 있다면 미국이 제공하는 데이터는 한국에 있다고 알려주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데이터가 향후 유료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당장 우주물체 감시용 레이다 시스템을 갖추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미국처럼 10㎝ 이하의 우주물체까지 감시 가능한 장비를 구축하는 데는 1조 원이 훌쩍 넘게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레이다 장비 부재가 아쉽긴 하지만, 확보 가능한 공개 데이터와 현재 보유한 감시 자원을 우선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는 시각이 많다.

한국천문연구원이 운영하는 '우주물체 전자광학감시 네트워크'(OWL-NET)에서 가동 중인 모로코의 전자광학 장비. 천문연 제공

한국천문연구원이 운영하는 '우주물체 전자광학감시 네트워크'(OWL-NET)에서 가동 중인 모로코의 전자광학 장비. 천문연 제공

천문연은 우리나라와 몽골, 모로코, 미국, 이스라엘에 전자광학 장비를 설치하고 네트워크로 연결한 '우주물체 전자광학감시 네트워크(OWL-NET)'를 운영 중이다. 전자파를 쏘아 반사되는 값을 측정하는 레이다 장비와 달리 광학 장비는 연속으로 사진을 찍어 우주물체를 탐지, 추적한다. 먼 정지궤도까지 관측 가능한데, 맑은 날 밤에만 보인다는 한계가 있다.

감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천문연은 미국에서 받은 데이터를 정밀하게 보정하는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해 쓰고 있다. 기존 전자광학 장비에서 수집한 자료로 수차례 계산을 반복하며 오차를 줄여나가는 식이다. 천문연은 이 방법으로 2018년 중국 우주정거장 톈궁 1호의 추락 지점과 시간을 예측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위성 올리면 반드시 제거 보장돼야"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최근 5년간 발사된 인공위성 수는 해마다 큰 폭으로 늘었다. 천문연에 따르면 2019년엔 415기, 2020년 1,232기, 2021년 1,725기, 지난해 2,269기, 올해 2,413기가 우주로 올라갔다. 지구를 도는 위성이 늘어남에 따라 수명을 다한 뒤 추락하는 우주물체도 증가했다. 위성들이 충돌해 생긴 파편을 비롯한 각종 잔해물까지 합치면 2019년 지구로 떨어진 인공우주물체(우주쓰레기)는 365개나 됐다. 2020년에는 422개, 2021년 534개였던 이 수치는 지난해 2,463개, 올해 1,856개로 크게 늘었다. 우주쓰레기 충돌이나 추락에 따른 피해 가능성이 존재하는 만큼, 촘촘한 감시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지구 표면으로부터 2,000㎞ 이내 저궤도에 우주잔해물(흰색 점들)이 몰려 있는 상황을 나타낸 그림.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지구 표면으로부터 2,000㎞ 이내 저궤도에 우주잔해물(흰색 점들)이 몰려 있는 상황을 나타낸 그림.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우주개발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앞으론 감시하고 피하는 정도로 우주쓰레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거란 우려가 크다. 이에 위성을 발사한 주체가 스스로 쓰레기 처리까지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국내외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금까진 위성을 올린 다음 쓸모를 다한 후의 처리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책임질 의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창진 건국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위성이 몰려 있는 지구 저궤도는 어느 나라나 기관에 속해 있지 않은 인류 공동의 공간이기 때문에 우주쓰레기로 뒤덮여 사용이 제한돼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위성이 제일 많은 미국이 먼저 나섰다. 지난해 9월 미 연방통신위원회(FCC)가 고도 2,000㎞ 미만의 저궤도에 발사된 위성은 임무를 완료하면 늦어도 5년 안에 궤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내용의 '5년 규칙(5 years rule)'을 예고했다. 내년 9월 29일 발효되는 이 규칙은 미국 위성뿐 아니라 미국 시장에 수출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외 위성에까지 적용된다. 이 교수는 "우주개발을 주도하는 나라의 규제 움직임은 우주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유럽도 움직이고 있다. 요제프 아슈바허 유럽우주국(ESA) 사무총장은 올 4월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위성을 궤도에 올리면 반드시 제거를 보장해야 한다. 이는 ESA뿐 아니라 모든 글로벌 파트너들의 일"이라고 밝혔다.

비용 늘겠지만 국제 흐름 동참 준비를

임무를 완료한 위성은 5년 내에 궤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5년 규칙'이 내년 9월 발효를 앞두고 있다. AP·연합뉴스

임무를 완료한 위성은 5년 내에 궤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5년 규칙'이 내년 9월 발효를 앞두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런 흐름에 따라 세계 시장에서 우주쓰레기 처리 비즈니스가 활성화하는 건 시간문제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우주물체를 누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탐지하고 추적하느냐, 누가 더 저렴하게 효율적으로 수거하고 처리하느냐를 두고 선진국들의 물밑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세계적으로 '뉴 스페이스'(민간 주도 우주개발) 시대에 본격 진입한 만큼 기업들 역시 이를 염두에 두고 미래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한재흥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우주쓰레기 규제 움직임이 "우리 기업들에는 위기이자 기회"라고 진단했다. 기업으로선 일정 기간 지난 위성을 쓰레기로 처리하는 것보다 작동이 가능할 때까지 계속 운용하는 게 더 이득이다. 또 위성을 개발할 때 처음부터 처리까지 염두에 두려면 비용이 더 드는 만큼 달가울 리 없다. 대학이나 스타트업 등에는 우주쓰레기 처리 의무화가 연구개발에 제약이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장기적으로 우주산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우주쓰레기 처리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는 인식이 국내 업계에서도 강해지는 추세다. 우주 스타트업 우주로테크의 이성문 대표는 "국내 기업들도 우주쓰레기 제거 임무를 개발하고 추력기를 도입하는 등 움직임이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인공위성 기업 루미르의 곽임수 팀장도 "지금은 별도 로드맵이 없지만, 위성 폐기는 장기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선 미국과 유럽 등의 정책 방향이 일관되게 이어진다면 우주쓰레기 처리 관련 강제력 있는 국제 규범도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영진 국방대 안전보장대학원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우주개발 후발주자라는 인식 때문에 국제사회의 우주쓰레기 규정 논의에 적극 동참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면서 "우주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면 국내 기준을 만드는 등 우주 환경을 보호하려는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소형 과학전문기자 precare@hankookilbo.com
문예찬 인턴 기자 moonpraise@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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