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조지 콘도 등 앞세워
'2차 투자계약증권' 공모 시작
법률 시장도 미술 전문인력 영입
직장인 이연희(38)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미술품 투자자'로 정평이 나 있다. 2019년 처음 투자한 데미안 허스트의 'A dream'을 시작으로 이우환, 박서보, 데이비드 호크니, 구사마 야요이, 우고 론디노네 등 '블루칩' 작품에 투자했다. 평범한 급여생활자가 어떻게 수십억~수백억 원짜리 작품에 투자할 수 있었을까. 그는 '미술품 조각투자'를 비법으로 꼽았다.
'미술품 조각투자'는 작품 한 점을 여러 명이 돈을 모아 구매하는 것이다. 소액을 내고 블루칩 작가 작품 일부의 지분을 가질 수 있다. 이씨는 작품 한 점당 약 100만 원을 12점에 투자했고, 그중 4점의 지분을 매각해 연간 10%대 수익률을 기록했다. "'타인의 취향에 투자해 내 경험을 수익화하자'는 게 제 모토입니다. '미술품 투자계약증권'도 눈여겨보고 있어서 곧 청약이 열리는 '조지 콘도(George Condo)' 작품을 보고 왔어요."
1차 공모 '흥행 실패' 딛고 2차 공모 재도전
미술품 수요를 흡수하는 '대체 투자 시장'이 될 것인가, 아는 사람만 아는 '그들만의 리그'가 될 것인가. 지난해 연말 야심차게 진행한 첫 청약에서 '미달' '실권주(청약 포기) 상실' 등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표를 받아 든 미술품 조각투자업체들이 이달 두 번째 청약 공모에 나선다.
'미술품 조각투자'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20년대 초. 미술시장이 뜨면서 목돈이 없고 작품 소장 경험이 적은 20·30대 투자자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탔다. 개별 업체 플랫폼으로 진행되던 미술품 조각투자는 2022년 금융위원회가 증권성을 인정하면서 지난해 투자계약증권 형태로 제도권 증권시장에 편입됐다. 지난해 연말 열매컴퍼니가 일본인 작가 구사마 야요이의 '호박'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투자계약증권이 국내 1호다.
미술품 경매업체 케이옥션의 자회사 '투게더아트'는 2호 증권으로 미국 현대 예술가 조지 콘도의 2001년작 '더 호라이즌 오브 인새너티(The Horizon of Insanity)'를 내놓았다. '제2의 피카소'라고 불리는 작가는 왜곡된 인물 초상과 조각으로 현대인 내면의 불안과 덧없음을 기괴하고 재치 있게 표현한다. 실물은 이달 19일까지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대중에 공개되며, 이달 26일 1만1,070주(주당 10만 원)에 대한 청약이 진행된다.
'열매컴퍼니'는 이우환의 300호(291×218cm) 대작인 '다이얼로그(Dialogue)'를 2차 공모 작품으로 들고 나왔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인 이우환은 '국내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 타이틀을 갖고 있다. 4월 22일부터 청약을 진행하는데, 투자자는 11억5,500만 원 상당의 작품 일부를 10만 원(1주당 가격·1만2,300주)에 공동 소유하게 된다. 첫 청약에서 앤디 워홀의 '달러사인'을 선보인 '서울옥션블루(서울옥션 자회사)' 역시 다음 달 공개를 목표로 작품을 선정 중이다.
미술 전문 변호사들이 말하는 '조각투자 전 알아야 할 점'
미술품 조각투자 시장이 확대되면서 법조계도 미술 전문인력을 갖추느라 바쁘다. 법제도가 미비해 법률 수요가 늘 것이라는 예측에서다.
최근 법무법인 율촌은 미술투자 전문가인 이규영 외국변호사(미국 뉴욕주)를 영입했다. 이 변호사는 "미술품 조각투자 증권은 만기 도래 전 작품 처분이 불가능해 증권 만기 시 작품이 어떤 가격에 매각될 수 있는지 면밀하게 따져보아야 한다"며 "조각투자 업체마다 만기가 3~5년으로 다르고 한 차례 만기 연장이 가능해 길게는 10년까지 투자금 회수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유지분권만 가질 뿐 작품 자체를 소유할 수 없는 만큼 투자 대상을 상실할 가능성도 감안해야 한다. 조각투자 업체가 도산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변호사는 "금융감독원은 조각투자 업체에 투자자보호기금으로 작품가액의 최소 5% 이상의 현금 보유를 요구하는데, 이외에 어떤 투자자 보호 장치가 있는지 증권 내용을 주의해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액으로 거장의 미술품에 투자할 수 있는 시대라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투자자의 안목이다. 박기태 변호사(법무법인 한중)는 "유명 작가의 작품이 수익을 보장하는 건 결코 아니다"라며 "보존 상태, 매각 당시 미술시장 상황, 시장 트렌드에 따라 인기가 떨어질 수 있는 만큼 무작정 투자를 하면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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