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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우승할 거예요" "나쁜 놈 잡는 경찰 될래요" 아픔 보듬고 꿈 불어넣는 '특별한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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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우승할 거예요" "나쁜 놈 잡는 경찰 될래요" 아픔 보듬고 꿈 불어넣는 '특별한 학교'

입력
2024.06.13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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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초 의료기반 예술형 대안학교 '레인보우 예술학교']
학교 부적응 아동 적응 돕고, 예술 치유도
정신과 전문의, 전문 치료진 상주
"괴롭히는 친구 없어 행복하게 학교생활"

서울 서초구 서울시 어린이병원 레인보우 예술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시 어린이병원 제공

서울 서초구 서울시 어린이병원 레인보우 예술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시 어린이병원 제공

"예전에는 학교 가면 마음이 마구 깨졌는데, 이제는 등교 시간이 설레요."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시 어린이병원 레인보우 예술학교. 복도에서부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교실에 들어서니 교사의 질문에 10명의 학생이 "제가 발표할래요"라며 앞다퉈 손을 든다. 정희림(가명·11)군은 "선생님도 친절하고 괴롭히는 친구가 없어서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정군은 지적장애까지는 아니지만 의사소통이나 감정 인지와 표현, 사회적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기능 자폐아동이다. 같은 반 친구 4명의 상습적 폭언과 폭행을 당한 정군은 한동안 학교 다니기를 거부하다 이 학교에 입학했다.

지난 4월 국내 최초의 '의료기반 예술형 대안학교'로 문을 연 레인보우 예술학교는 특수학교에 갈 정도는 아니지만 지능이나 사회성이 낮아 일반학교에 적응하기 힘든 '학교 부적응 아동'이 다니는 학교다. 다니던 학교에 학적을 그대로 두되 학교생활은 이곳에서 하는 게 특징으로, 학력도 인정받는다. 4학년 한 학급(10명)을 운영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비롯한 전문가 32명이 상주해 문제행동을 하는 학생을 돕고, 필요하면 약물치료도 진행한다.

서울 서초구 서울시 어린이병원 레인보우 예술학교에서 학생들이 예술실기 시간 수업을 듣고 있다. 서울시 어린이병원 제공

서울 서초구 서울시 어린이병원 레인보우 예술학교에서 학생들이 예술실기 시간 수업을 듣고 있다. 서울시 어린이병원 제공

이곳 아이들 대부분이 또래와 다르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한 트라우마가 있지만 교사와 치료진의 독려에 웃음을 되찾는 중이다. 정군은 "예전 학교 친구들은 일부러 축구공을 맞히고, 나를 장애인이라고 놀렸다"며 "이 학교 친구들은 모두 나를 좋아해 줘서 아픈 기억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며칠 전 축구 수업에서 역전 골을 넣었다는 정군은 "축구 국가대표가 돼서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게 꿈"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다니던 학교에서 학교 폭력을 당했던 김민우(가명·11)군은 "경찰이 돼서 나쁜 사람, 남 괴롭히는 사람을 잡고 싶다"고 말했다.

정군의 어머니(53)는 정군이 세 살일 때부터 병원을 전전하다 치료비를 대느라 집까지 팔았다. 그는 "학교가 끝나고 아이를 데리러 가면 아이가 항상 울고 있어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이 학교에서는 아이가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교육부의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학교 부적응'을 이유로 학교를 떠나는 초·중·고교생은 연간 5만여 명에 달한다. 전체 초·중·고교생의 1%에 달하는 만큼 결코 무시할 만한 숫자가 아니다.

어린이병원 예술센터에서 아이들을 치료하던 김명신(47) 교감이 레인보우 예술학교의 산파 역이다. 김 교감은 치료 중 대안학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지난해 내내 교육청을 드나들며 이 학교 개교에 매달렸다. "의료진과 치료진이 아이를 함께 돌보면 아이의 심리와 행동을 더 잘 파악하고 이끌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교육청을 설득했다고 한다. 실제로 개학 초기 한 학생은 일부러 교실에 소변을 보는 등 반항 행동을 보였지만, 의료진의 행동 중재와 상담으로 현재는 안정적으로 수업을 따라가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울시 어린이병원 레인보우 예술학교에서 한 학생이 첼로를 배우고 있다. 서울시 어린이병원 제공

서울 서초구 서울시 어린이병원 레인보우 예술학교에서 한 학생이 첼로를 배우고 있다. 서울시 어린이병원 제공

오전 1, 2교시는 일반 교과, 이후 3~5교시는 '정서 치유' '사회성 함양' 등의 요소를 포함한 악기연주, 춤추고 노래하기 같은 예술 치료 수업이 이뤄진다. 한 치료진은 "발달 지연 아동은 학원에서 잘 받아주지 않아 재능이 있어도 키울 기회가 없다"며 "다양한 예체능 수업을 통해 아이의 재능을 찾고 치료도 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합창 연습을 통해 사회성을 기르고 장기자랑 시간에 박수를 받으며 자존감을 높이는 식이다. 아직 한 학급만 운영 중이지만, 앞으로 정원과 학년을 늘릴 계획이다. 김 교감은 "한 학년만 운영 중이라 1년이 지나면 일반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모든 학년의 많은 학생이 다닐 수 있도록 학교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권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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