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작가 다니엘 아샴 개인전
'서울 3024-발굴된 미래' 20년 세계관 회고
색맹 고백..."백색 사용해 질감과 형태 부각"
31세기 서울 콘셉트 대형 설치·회화 작품 소개
지금으로부터 1,000년 뒤 폐허가 된 서울, 온통 백색인 거대한 지하 공간에 신발, 모자, 카메라, 컴퓨터 등 일상의 물건이 막 출토된 유물처럼 부식된 모습으로 가득 차 있다. 석고와 화산재 같은 광물로 주조하고 인위적으로 부식시킨 사물들의 공통점은 모노톤이라는 점이다. 투명한 흰색에서부터 거칠고 투박한 회색까지 다양한 무채색의 향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벽면에 걸린 대형 그림에는 서울 북한산을 배경으로 헬멧 쓴 아테나상이 보인다. 수묵화 같은 배경에 서서히 풍화된 듯한 백색 석고상이 서 있다. 이 역시 흑백과 명암이 조화를 이루는 작품. 전시장을 지키는 안내인들도 연구원처럼 흰색 유니폼을 입었다. 색채가 없어진 31세기에 고고학 박물관을 찾는다면 이런 풍경이 아닐까.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10월 13일까지 열리는 미국 작가 다니엘 아샴의 개인전 '서울 3024-발굴된 미래'의 한 장면이다.
아샴은 '상상의 고고학'이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조각, 회화, 건축, 영화 등을 아우르는 현대 미술 작가로 파리, 런던, 뉴욕 등 주요 도시에서 전시를 개최하며 전 세계적으로 활동한다. 이번 전시는 20년간 축적한 아샴의 작품 세계를 집대성한 자리. 31세기 서울을 주제로 유물 발굴 현장을 재현한 설치 작품과 신작 회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을 활용해 만든 고전 조각 시리즈, 애니메이션 포켓몬과 협업 작품 등 250여 점이 소개됐다.
색맹 예술가가 세상을 창조하는 법
'서울의 천년 후 미래'를 배경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 이번 전시에 색채 결핍이 도드라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10일 방한한 작가는 선천적 '색맹'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저의 초기작을 보면 색상과 색감이 배제돼 있고, 컬러 프린트 색깔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흑색에서 하얀색으로 이동하는 단조로운 톤에 어떤 느낌을 낼 수 있는지를 주의 깊게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아샴의 작품 주제는 '지금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물건이 어느 시점엔 과거의 유물이 된다'로 요약된다. 2010년 남태평양 이스터섬을 방문해 유물 발굴 현장을 목격한 후 착안한 개념이다. 작업 콘셉트도 현재의 물건을 미래에 발굴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식이다. 주로 휴대폰, 컴퓨터,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 미술관에서 볼 법한 조각상 등 시대의 문화적, 기술적 요소를 담은 물건들이 대상이다. 허구의 고고학적 유물을 제작하기 위해 석고, 모래, 화산재, 건축용 재료 등 지질학적 재료를 사용하는데, 색채가 배제된 재료의 질감으로 화석화된 상태를 연출하기 위함이다. 대다수 작품에 스며든 백색은 부식된 질감을 연출하고, 미래 화석의 비현실적 이미지를 극대화시키는 효과적 수단이 된다.
아샴은 색맹이라는 신체적 약점에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 온 비결에 대해 "제가 보는 것과 남들이 보는 것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처음에는 색을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질감과 형태를 부각했다"며 "여전히 제한적이긴 하지만 색감을 교정하는 안경을 착용하면서 더 많은 색감을 볼 수 있게 됐고, 색상 12개에 숫자를 붙여 작업에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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