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한글 변화상 직관적으로 재해석
한국어 열풍 뜨거운 베트남, 전시 관심
15일 베트남 하노이 국립도서관. 로비에 들어서자 흰색, 빨간색, 검은색 등 여러 색깔의 조화가 어우러진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투명한 창문처럼 생긴 조형물에는 두 눈 이미지와 ‘하늘’ ‘땅’ ‘휴먼(Human)’ 등 한글·영어 단어가 적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16년 전인 1908년, 외국어 교재로 쓰였던 ‘아학편’을 모티브로 창작한 이화영 작가의 ‘한HAN글文’이다. 근대 시기 한글이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는 창이자, 전통과 미래를 여는 다리 역할을 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프리랜서 비디오 아티스트 호앙쑤언텅(22)은 조형물을 한참 살펴본 뒤 “펼쳐진 책 위에 입체적으로 새겨진 글을 읽는 느낌”이라며 “한글이 아름답고 배우기 쉬운 글자라고 들었다. 문자를 예술과 조화롭게 표현한 점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근대 한글 주제 전시물 148점 선보여
이 자리는 한글을 예술·산업과 접목한 국립한글박물관의 국외 순회전 ‘한글 실험프로젝트-근대 한글연구소’였다. 베트남에서 ‘한글’이 주제인 전시회는 이번이 처음으로, 이날부터 다음 달 9일까지 베트남국립도서관에서 열린다.
전시는 1876년 개항 이후 근대 문물과 제도 도입과 함께 큰 변화가 일었던 시기의 한글 변화상을 쉽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재해석했다. 디자인·예술 현장에서 활약하는 작가들이 국립한글박물관 소장품을 바탕으로 창작했다.
베트남 순회전 전시 작품은 다양했다. 최초의 우리말 사전 '말모이' 원고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한글 조형을 패션에 접목한 '무제(박춘무)', 1880년 서양인이 낯선 문자인 한글을 바라본 뒤 적은 한글 반절표(反切表)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조형물 '5개의 기역/아야어여오(유정민)', 근대 출판물 한글 서체의 특색을 칠기에 담아낸 '지태칠기(한글시리즈·유남권)' 등 총 148점이 선보였다. 훈민정음 해례본 등 한글의 원형과 특징을 소개하는 복제 유물 3건도 포함됐다.
대학교 한국어 수업에서 전시회 개최를 알게 돼 방문했다는 학생 응우옌바오치(20)는 “기역(ㄱ) 5개가 겹쳐진 독특한 의자 모양 전시물을 보고 한글을 배운 지 얼마 안 됐을 때 마치 그림을 그리듯 삐뚤삐뚤하게 썼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한글 아름다움 보여주는 계기”
이번 행사는 2022년 서울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린 전시회를 재구성했다. 당시 한글을 다양한 디자인 분야와 접목해 실험하고 확장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호평받았다. 지난해에는 중국 베이징과 일본 도쿄, 홍콩에서 진행됐다.
특히 베트남 전시 의미는 남다르다.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국외 한국어·한국문화교육 공공기관인 세종학당이 가장 많이 설치된 나라다. 2021년부터는 초·중·고교 교육과정에 한국어를 제1 외국어로 채택할 만큼 애정도 크다. 한국어 전공을 설치한 대학도 전국 60곳에 달한다.
한글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이날 행사에는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 정부 인사뿐만 아니라 현지 주요 대학 한국학과 학과장과 학생들도 대거 참석했다. 국영 VTC방송 등 현지 매체들도 앞다퉈 관련 행사 소식을 보도했다. 최영삼 주베트남 한국대사는 “이번 전시가 베트남인에게 한글의 아름다움과 과학성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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