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 광복절 앞두고 최초 공개
한일관계사료집·한말 의병 관련 문서
"자주 독립 의지 보여주는 귀한 유산"
"독립운동가의 인장이 찍힌 역사서를 기증하고 싶다."
올해 초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전화가 걸려왔다. 지긋한 목소리로 말문을 연 건 미국에 거주하는 홍영자(83)씨였다. 지난해 8월 별세한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한일관계사료집(韓日關係史料集)'을 어떤 조건도 없이 한국에 보내고 싶다고 홍씨는 말했다. "남편이 1970년대 초에 중국 동포들에게서 선물로 받았고, 귀한 책으로 여겨 평생 고이 간직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중국 동포들이 선물한 '귀한 책', 희귀 역사서였다
홍씨의 남편은 미국 켄터키주 뮬런버그대에서 동아시아 정치학과 역사를 가르친 고(故) 이순원 교수.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기 이전인 1970년대 초에 미국 시민권자여서 중국 왕래가 가능했던 고인은 지인의 부탁을 받아 성경책을 중국 옌볜의 동포들에게 전달했다. 동포들은 "드릴 건 없지만 이 책은 꼭 드리고 싶다"며 4권짜리 사료집 한 질을 건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조선의 독립 명분을 국제사회에 설명하기 위해 1919년 발간한 유일한 역사서인 한일관계사료집이었다.
재단은 올해 5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한인 교회에서 기증식을 열고 홍씨로부터 사료집을 기증받아 환수했다. 독립에의 열망을 담아 쓴 사료집이 중국, 미국을 거쳐 약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제79회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한일관계사료집을 최초로 공개했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일제에 저항한 선조들의 정신적 실체가 담긴 유산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사료집은 삼국시대부터 연대별로 한일 관계사를 기술하고, 3·1 운동을 포함한 항일 독립운동사를 총정리해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재단은 설명했다. 한국 최초 장편소설 '무정'을 쓴 춘원 이광수가 임시정부 사료편찬위원회 주임으로서 쓴 글도 실렸다. 사료집은 100질이 제작됐으나 총 739쪽 분량의 4권 완질로 전하는 것은 독립기념관 소장본과 미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도서관 소장본, 이번에 환수한 기증본뿐이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이번 기증본은 각 권 첫머리에 집필자 중 한 명이자 민족대표 33명 중 한 명인 김병조(1877~1948)의 인장이 찍혀 있어 그의 수택본(手澤本·소장자가 가까이 두고 자주 읽어 손때가 묻은 책)으로 추정된다"며 "독립운동사 연구에도 도움이 될 희귀 자료"라고 설명했다.
항일 의병 문건도 공개...일제의 독립운동 탄압 증거
구한말 의병들의 항일 투쟁 일지가 담긴 '한말 의병 관련 문서'도 공개됐다. 1851년부터 1909년까지 작성된 문서 13건으로, 복권기금으로 일본에서 구입했다. 국가유산청은 구입가는 공개하지 않았다.
1907년 조직된 연합 의병부대(13도 창의군)에서 활동한 허위(1855~1908) 등이 쓴 글과 의병장 최익현(1833~1907)의 서신 등이 포함됐다. 문서들은 비단과 종이로 만든 두루마리 두 개에 나뉘어 수록됐다. 두루마리 첫머리엔 제목은 "한말 일본을 배척한 우두머리의 편지"와 "한말 일본을 배척한 폭도 장수의 격문"으로, 의병 지도자를 부정적으로 표현했다. 일제 헌병 간부인 아쿠다카와 나가하루(芥川長治)가 수집해 보존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의병 활동을 탄압하고 조직적으로 감시했던 일제의 시각을 보여주고, 입수 경위까지 기록돼 있어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독립운동가 송진우(1890~1945)의 아버지이자 전남 담양학교 설립자인 송훈(1862~1926)의 한시를 나무판에 새긴 '조현묘각운'도 공개됐다. 재일동포 고미술사업가 김강원씨가 지난 6월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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