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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한국 알렸던 최초의 한국학 기관, 역사의 뒤안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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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한국 알렸던 최초의 한국학 기관, 역사의 뒤안길로

입력
2024.12.11 17: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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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이사진 해산
한국 연구 기록 등 보유 장서 3700여 권 위기

1890년대 조선에 온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 윗줄 가운데 모자를 쓰고 서 있는 남자가 영국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의 설립자 중 한 명인 호러스 알렌이다. 유진벨재단 제공

1890년대 조선에 온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 윗줄 가운데 모자를 쓰고 서 있는 남자가 영국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의 설립자 중 한 명인 호러스 알렌이다. 유진벨재단 제공

1900년 세계 최초로 세워진 한국학 기관인 영국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학회가 보유하고 있는 장서 3,700여 권도 갈 곳이 없어 소실 위기에 놓였다.

11일 영국왕립아시아학회에 따르면 학회 이사회는 지난달 18일 회의를 열고 이사진 해산을 의결했다.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 위치한 학회 사무실 임대 계약이 끝나는 내년 2월 5일 이후면 사실상 120여 년 역사가 끊긴다.

학회 한국지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의료기관인 제중원을 설립한 미국인 선교사 호러스 알렌,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를 세운 호러스 언더우드, 대한제국의 국권 회복을 위해 항일운동을 벌였던 호머 헐버트 박사 등 서양 선교사들이 주축이 돼 세워졌다. 한국학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한국 관련 서적을 영문으로 직접 발간해 전 세계에 우리나라를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곳이다. 최근까지 국내 거주 외국인을 상대로 한 달에 두 번 여는 강의와 문화 답사 프로그램, 한국 관련 영문 서적 출판 등을 주로 해오며 K문화 전파에 앞장섰다.

영국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홈페이지 캡처

영국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홈페이지 캡처

2011년부터 10년간 왕립아시아학회 회장을 지냈던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는 "2000년까지만 해도 (외국인 대상으로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왕립아시아학회 같은 기관이 전무했다"며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더 이상 유지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안 명예교수는 영국 출신의 가톨릭 수사(修士)로 귀화한 한국인이다.

한때는 1,500명에 달했던 회원 수는 2000년대 초반 이후 급감했다. 현재는 100명대로, 이들 대부분이 고령이다. 당장 재정상 타격이 커졌다. 학회 관계자는 "주로 회비로 운영돼 왔는데 이제는 충당이 안되는 데다 안정적인 기업 후원도 이어지지 않는 탓에 올해 중순부터 단체 존립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고 했다. 학회는 인건비는커녕 사무실 임대료도 못 내는 상황이다.

학회가 운영 중인 한국학 도서관이 보유한 장서 약 3,700권은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됐다. 대학 도서관 등으로의 기증도 여의치 않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자는 "구한말부터 100년 넘게 한국 연구를 한 곳이어서 아주 희귀한 자료가 많고, 지금도 인용되는 책도 있다"며 "대부분 절판된 책들인데 갈 곳을 찾지 못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다만 기관의 명맥을 잇고자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안 명예교수는 "관심 있는 회원 몇몇이 자원봉사단체 등 새로운 모습으로 시작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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