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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이민자의 삶은 '콘크리트 건축'을 닮았다... 건축으로 보는 '브루탈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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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이민자의 삶은 '콘크리트 건축'을 닮았다... 건축으로 보는 '브루탈리스트'

입력
2025.02.17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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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개봉 화제의 영화 '브루탈리스트'
전후 美 이주한 헝가리 출신 건축가 삶
노출 콘크리트 쌓아 올린 '브루탈리즘'
"브루탈리즘과 이주민의 운명 연결돼"
마르셀 브로이어 등 건축계 재조명 붐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가이젤 도서관. 윌리엄 페레이아가 설계한 브루탈리즘 건축물이다. 위키피디아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가이젤 도서관. 윌리엄 페레이아가 설계한 브루탈리즘 건축물이다. 위키피디아

올해 미국 아카데미상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영화 '브루탈리스트'가 12일 국내 개봉하면서 건축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나치의 핍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유대계 헝가리 출신 유명 건축가의 삶을 다룬다. 전후 유럽 재건 프로젝트의 영향으로 생겨난 건축 사조 '브루탈리즘(brutalism·노출 콘크리트 기법 건축물)'에 빗대 이민자의 나라 미국의 자본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현대 고전이 될 작품' '올해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영화를 통해 건축적 의미를 짚어봤다.

'거친 싸구려 건축'과 이민자의 삶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브루탈리즘의 대표작이자 현대 건축의 이정표로 꼽히는 헝가리 출신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가 설계한 휘트니 미술관. 휘트니미술관 홈페이지 캡처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브루탈리즘의 대표작이자 현대 건축의 이정표로 꼽히는 헝가리 출신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가 설계한 휘트니 미술관. 휘트니미술관 홈페이지 캡처

영화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 미국 이민자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가 추구하는 브루탈리즘은 1950년대 영국에서 등장해 1970년대 중반까지 유행한 건축 양식이다. 전후 도시 재건을 위해 콘크리트, 철강, 유리 등 저렴한 재료의 거친 질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전쟁 이전에 유행했던 화려한 장식의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장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기하학적인 구조를 부각한다. 구 소련의 영향을 받은 동유럽에서 유행하면서 '공산주의 건축'으로 평가됐다. 거칠고 육중한 콘크리트 건축으로 '아름다운 흉물' '싸구려 건축'이라는 비웃음도 샀다.

브루탈리즘은 미국에서 이민자로 핍박받는 천재 건축가의 삶과도 연결된다. 송종열 건축평론가는 "브루탈리즘은 조형미는 뛰어나지만 위압적인 외관과 비효율적인 공간 활용 등 한계도 분명하다"며 "브루탈리즘에 녹아 있는 사회적 맥락이 영화 속 주인공의 이주민의 정체성과 가혹한 운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핵심 포인트"라고 말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건축의 역설

영화 '브루탈리스트'에서 유대계 헝가리 출신 건축가 라즐로 토스는 서재 인테리어로 백만장자 해리슨과 인연을 맺는다.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영화 '브루탈리스트'에서 유대계 헝가리 출신 건축가 라즐로 토스는 서재 인테리어로 백만장자 해리슨과 인연을 맺는다.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영화는 건축적 미(美)를 한껏 보여주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역설한다. 영화는 라즐로가 맡은 미국 갑부의 서재 인테리어 공사 현장이나 기념관 건립 공사 현장 등에서 빛과 구도를 활용해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김명식 신한대 건축학과 교수는 "단순하면서도 현대적인 서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며 "천창과 린넨 커튼으로 만든 빛, 대칭적이고 간결한 가구, 중앙에 놓은 의자 한 점은 건축적 미의식을 구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즐로는 유대인 강제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하부 구조물과 그 위로 두 개의 높은 직육면체 기둥을 올린 건축물을 선보인다. 두 개의 기둥은 자유를 상징한다. 라즐로는 기둥 왼쪽과 오른쪽에 십자가를 새겨 넣고 십자가 모양 절반에 흠을 내 음각을 만든다. 이를 통해 중앙 회당엔 시간대에 따라 빛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십자가는 구원을 말한다. 전쟁으로 인한 고난의 삶을 살아낸 라즐로의 삶이 건축을 통해 자유와 구원을 얻는 과정을 대변한다.

김 교수는 "해가 이동하면서 시간별로 빛의 십자가가 생긴다는 설명은 구조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며 "해당 장면은 건축 개념과 사유를 통해 탄생하는 건축 예술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롤로그, 1부, 2부, 에필로그, 인터미션으로 이뤄진 215분의 영화의 형식도 건축적이다. 건축계에서는 구조를 명확하게 나누고 대칭되는 에피소드를 배치한 서사가 정해진 틀에 따라 여러 자재를 집적해 나가는 건축 방식과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에서 헝가리 출신 미국 이민자인 라즐로는 브루탈리즘 건축에 천착하는 천재 건축가로 그려진다.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영화 '브루탈리스트'에서 헝가리 출신 미국 이민자인 라즐로는 브루탈리즘 건축에 천착하는 천재 건축가로 그려진다.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마르셀 브로이어·루이스 칸... 전후 건축 재조명

헝가리 출시 건축 거장 마르셀 브로이어. 위키피디아

헝가리 출시 건축 거장 마르셀 브로이어. 위키피디아

영화는 전후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한 건축가를 연상케 한다. 라즐로는 헝가리 출신 건축 거장 마르셀 브로이어(1902~1981)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됐다. 브로이어는 독일 예술학교 바우하우스에서 유학하고 1937년 미국으로 건너간 브루탈리즘 건축 거장. 미국 뉴욕 휘트니 미술관(1930)과 미네소타주 세인트 존스 수도원(1961) 등이 대표작이다. 다만 이민 초기 잡부로 일하는 등 고초를 겪는 라즐로와 달리 브로이어는 일찍 하버드대에 정착해 명성을 일궜다. 건축가 유현준 등은 에스토니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건축 거장 루이스 칸(1901~1974)이 떠올랐다고 감상평을 남겼다.

마르셀 브로이어가 1961년 완공한 브루탈리즘의 대표작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 존스 수도원 전경. 위키피디아

마르셀 브로이어가 1961년 완공한 브루탈리즘의 대표작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 존스 수도원 전경. 위키피디아

영화에서 라즐로의 회고전이 열린 것으로 묘사된 1980년 1회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도 사실 관계가 다르다. 당시 건축계는 브루탈리즘이 아닌 포스트모더니즘을 지배적인 건축 사조로 주목했으며, 브루탈리즘에 대한 조명은 훨씬 이후에 이뤄졌다. 정태종 단국대 건축학과 조교수는 "특정 사조를 내세웠기 때문에 특정인이나 역사적 사실이 연상되는 부분도 있지만 해석의 여지가 많다"며 "건축물에 대한 자세한 묘사나 극 전반에 녹아 있는 역사적 사실은 주제를 잘 드러내기 위한 연출적 장치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에서 헝가리 출신 건축가를 연기한 애드리언 브로디. AFP 연합뉴스

영화 '브루탈리스트'에서 헝가리 출신 건축가를 연기한 애드리언 브로디. AFP 연합뉴스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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