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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세’가 ‘밀레니얼 세대’ 투쟁가 된 이유

입력
2016.08.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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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소녀시대는 2007년 '다시 만난 세계'로 데뷔했다. 무대에서 발차기를 하며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라고 외쳤던 노래로 1980~2000년대 초반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의 투쟁가가 됐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걸그룹 소녀시대는 2007년 '다시 만난 세계'로 데뷔했다. 무대에서 발차기를 하며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라고 외쳤던 노래로 1980~2000년대 초반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의 투쟁가가 됐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2013년 방송돼 선풍적인 인기를 끈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는 삼천포(김성균)가 경찰 앞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삼천포와 사천시의 통합을 반대하는 삼천포 주민들이 시청 앞에서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는 현장에서다. 흐르는 노래는 민중가요 ‘바위처럼’이었다.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 온 삼천포 옆에서 나정(고아라)과 해태(손호준)가 ‘바위처럼’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며 시위대의 사기를 돋군다.

1980~90년대 집회 현장에서 빠짐 없이 불렸던 노래는 ‘바위처럼’이나 ‘아침 이슬’ 또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였다. 모두 민중가요라는 범주로 묶이는 노래들이다. 집회나 시위 분위기가 고조되면 비장하게 목청을 돋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결의를 다졌던 게 시위 현장의 평범한 모습이었다.

tvN '응답하라 1994'에서 주인공 삼천포가 민중가요 '바위처럼'에 맞춰 춤을 추는 있다(왼쪽). 이화여대생들(오른쪽)은 최근 본관 점거 시위에서 경찰에 맞서 민중가요가 대신, 걸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 tvN·유튜브 화면 캡처
tvN '응답하라 1994'에서 주인공 삼천포가 민중가요 '바위처럼'에 맞춰 춤을 추는 있다(왼쪽). 이화여대생들(오른쪽)은 최근 본관 점거 시위에서 경찰에 맞서 민중가요가 대신, 걸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 tvN·유튜브 화면 캡처

“민중가요는 싫어”…이대 본관에서 울려퍼진 ‘다시 만난 세계’

세월이 흘러 2016년 7월30일 낮12시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본관 1층. 학교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 단과대학인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을 추진하는 것에 반발해 본관 점거 농성을 벌이던 이화여대생들도 경찰에 맞서 노래를 불렀다. 민중가요가 아닌 걸그룹 노래였다.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소녀시대가 지난 2007년 낸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다. 학생들의 집단 농성으로 교수 등이 갇혀 있다는 학교 측의 요청으로 본관을 점거하고 있는 학생들을 끌어 내려 출동한 경찰 앞에서 이화여대생 200여명은 서로 팔짱을 끼고 ‘다시 만난 세계’ 1절을 합창했다. 흔한 걸그룹의 사랑 노래로 치부됐던 ‘다시 만난 세계’가 사회적으로 재발견된 순간이다.

깃발 아래 모여 민중가요로 민주화 역사의 아픔을 곱씹으며 연대감을 확인하는 건 옛 말이다. 이화여대 본관 시위에서 경찰과 대치했던 재학생 전모(23)양은 “민중가요는 부르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중가요가 내포하는 정치색 때문이다. 대학생들의 민중가요와의 이별은 “운동권과의 선 긋기”(이택광 경희대 교수)를 뜻한다. 이화여대생들은 시민단체 등 외부와의 연대를 거부하고, 학생증까지 확인하며 자신들만의 농성장을 꾸렸다.

여성학의 산실이라 불리는 여대에서, 그리고 투쟁의 현장에서 여대생들이 걸그룹의 노래를 불렀다는 점은 시대의 변화를 명확히 보여준다. 선정적이며 상업적이라고만 여겨졌던 걸그룹 노래가 1980~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걸그룹 음악의 노랫말이 아직까진 부족한 면이 없진 않지만, 여성을 다루는 담론의 깊이와 방식이 그간 다양해져 공감을 키운 결과”라고 봤다. 본관 시위에 참여한 또 다른 재학생 김모(23)양에 따르면 경찰과 대치 상황에서 ‘다시 만난 세계’ 외에 걸그룹 여자친구의 히트곡 ‘오늘부터 우리는’(2015)을 부르는 것 여부도 학생들 사이에서 논의됐다.

“세상 험난 해도 뛰어 들어 바꾸라” 작사가가 밝힌 숨겨진 뜻

이화여대생들은 본관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기 전 그룹 god의 ‘하늘색 풍선’(2000)도 짧게 불렀다. 이화여대생들이 부른 ‘다시 만난 세계’가 유독 화제가 되고 있는 건 노랫말 때문이다.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란 가사가 현실에 억눌린 청춘에 희망을 주면서, 학생들의 투쟁 현실을 묘하게 떠올려서다.

소녀시대는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무대 위에서 세상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고, 이화여대생들은 공권력 투입으로 가장 불안감이 높아졌을 때 ‘다시 만난 세계’를 불러 결속을 다졌다. 재학생 전모양은 “‘다시 만난 세계’는 우리 나이 때 여대생이 딱 공감할 수 있는 노래였다”며 “또 가사가 용기를 북돋아 본관 시위 현장에서 불렀다”고 말했다.

‘다시 만난 세계’는 달콤한 사랑 노래처럼 들리지만 소녀의 두려움 없는 모험에 대한 찬가이기도 하다. ‘다시 만난 세계’의 가사를 쓴 김정배 작사가는 “소녀시대 멤버들의 데뷔 곡이라 평범한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진 않았다”며 곡을 쓴 계기를 밝혔다. 그는 “이제 막 시작하는 그룹으로서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와도 피하지 말고 헤쳐나가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만든 노래”라고 덧붙였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때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굉장히 높은 시기라 생각해 청취자에게 공감과 용기를 주기 위해 만든 노래”라는 설명도 보탰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10일 오후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교내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화여대 학생들이 10일 오후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교내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시 만난 세계’는 소녀시대 데뷔 전 소녀시대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의 다른 가수가 부를 뻔 했다. 하지만 이수만 SM 대표 프로듀서가 곡을 듣고 마음에 들어 해 직접 소녀시대의 데뷔 곡으로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곡 제목과 노랫말에 들어 있는 세계라는 단어는 대중가요에선 흔히 쓰지 않는 표현이다. 김 작사가는 “새로운 생명을 낳듯, 여성에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본성이 있는 것 같아 ‘세계를 다시 만난다’는 표현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인 투 더 뉴 월드’란 부제를 단 이유에 대해서는 “새로운 세상이 비관적일지라도 뛰어들어 바꾸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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