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피임법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피임률은 오히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콘돔 사용률이 10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최근 박주현 서울대보라매병원 비뇨기과 교수팀이 발표한 ‘한국여성의 성생활과 태도에 관한 10년간의 간격연구: 한국 인터넷 성별 설문조사 2014’에 따르면 20,30대 한국 여성들은 10년 전보다 성 관계 횟수가 줄었다. 또 성 관계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덜 갖고 있으며 피임법도 예전보다 효과가 덜한 방법을 사용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인터넷 설문업체에 패널로 등록한 여성 5만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이 가운데 신뢰도 검증을 거친 총 516명의 답변을 2004년 조사 대상자 460명과 비교했다.
이번 연구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는 신뢰할 수 없는 피임법의 증가다. 2014년에는 여성들이 주로 사용한 피임법은 질외사정(61.2%), 생리주기 조절(20%), 남성 콘돔 착용(11%), 피임약 복용(10.1%) 순으로 질외사정 비중이 60% 이상이었다. 반면 2004년 조사에서는 질외사정(42.7%), 남성 콘돔 착용(35.2%), 생리주기 조절(26.7%), 피임약 복용(9.1%) 순으로 질외사정 비중이 50% 미만이었다.
더불어 콘돔 사용 비중도 크게 줄었다. 2004년 35.2%였던 콘돔 착용이 2014년 11%로 감소했다. 2015년 질병관리본부 보고서에도 18~69세 남성 중 성관계 때 콘돔을 항상 사용하는 비율이 11.5%, 자주 사용 비율은 9.8%에 불과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연구진은 가부장제 가족문화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진은 “한국 사회가 급속히 서구화되고 성평등 문화가 대중화됐음에도 유교에 기반한 가부장제 가족문화가 깊은 뿌리를 형성하고 있다”며 “임신과 출산, 피임은 여성의 책임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연구진은 질외사정이 급증하고 콘돔 사용이 줄어든 것에 대해 “피임에서 남성에게 책임을 덜 맡기는 방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여성에게는 임신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질외사정 급증, 콘돔 사용 급락…
남성 책임 ‘덜’ 어내는 2014년의 피임
문제는 피임의 신뢰성도 그만큼 떨어졌다는 점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피임생리연구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배란일을 추정해 배란일 주변기간 동안 성관계를 피하는 자연주기법(생리주기 조절법), 먹는 피임약, 콘돔 등을 피임법으로 소개했지만 질외사정법은 아예 피임법으로 다루지 않는다. 심지어 자연주기법에 대해서도 ‘실패율이 매우 높아 임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밝혔고 콘돔 역시 ‘사용법에 따른 실수와 자체 불량으로 피임실패율이 10%’라며 ‘뜻하지 않은 사고와 불량으로 인한 임신을 방지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보조적으로 함께 사용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외국에선 “상대방 동의 없는 성관계 중 콘돔 제거는 성폭력” 움직임
해외에서는 ‘스텔싱’ (Stealthing) 행위가 민감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스텔싱은 레이더 등에 탐지되지 않기 위한 군사용 은폐기술인 스텔스에 빗대어 남성들이 ‘콘돔없이 성관계 할 때 느낌이 더 좋다’는 이유로 상대방 몰래 콘돔을 제거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일부에서는 이를 성폭력으로 규정해 처벌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1월 스위스 법원은 데이트 앱에서 만난 여성과 성관계 도중 여성 허락 없이 콘돔을 제거한 남성에게 성폭행 혐의로 유죄판결을 내렸다. 상대 여성은 성관계 도중 콘돔을 빼겠다는 남성의 요청을 거절했지만 성관계 후 남성이 콘돔을 제거한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여성은 남성이 후천성면역결핍증(HIV) 바이러스 감염 검사를 거부하자 남성을 고소했다. 미국에서도 지난 5월 캘리포니아와 위스콘신주 의회에 스텔싱을 ‘상대방은 인식도 못하는 상태에서 성병 감염과 임신 가능성에 노출되는’ 성폭력 범죄로 규정한 법안이 제출됐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인터넷에서 거론되고 있다. 대학생들이 익명으로 고민을 털어놓는 페이스북의 ‘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를 보면 ‘남자친구가 콘돔을 끼우는 척 하면서 동의를 구하지 않고 성관계를 했다’는 고민들이 등장한다.
“피임없는 성관계 거부할 수 있도록 여성 지원해야”
전문가들은 불안정한 피임법 사용을 줄이려면 남성들의 가부장적 태도 변화 등 성 역할에 대한 인식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박주현 교수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미혼 남녀의 피임법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요소는 성역할에 대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누군가 남성과 여성의 역할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피임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연구팀은 “정부에서 피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피임을 거부하는 상대와) 성관계를 거부하고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여성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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