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뺨 맞고 입술 터지고 토끼뜀·오리걸음 등 다반사
일부 교사들 폭언까지 교육청은 경고·주의만
학생들에 대한 체벌은 비단 서울 강서구의 한 고교(본보 25일자 12면, 26일자 12면)만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체벌이 문제라는 인식은 있지만 교실에선 뿌리뽑히지 않고 있다. 체벌을 금지하는 제도를 만들었지만 교육당국이 실행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학생 인권은 표류하고 체벌에 대한 대안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체벌은 소위 명문이거나 사립학교에서 더 극심했다. 26일 서울 관악구 A고교 앞에서 만난 3학년 B(18)군은 "오늘 몸이 안 좋아 학교에 늦게 왔는데 한 선생님으로부터 체벌을 당했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예전에도 교실 문을 세게 닫았다는 이유로 국어 선생님한테 뺨을 맞았다”고 토로했다. 같은 학년 C군도 “발로 걷어차거나 하키채로 학생의 엉덩이를 때리는 선생님이 있다”고 했다.
3학년 D양은 “숙제를 안 해와서 운동장에 나가 20분 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학년 E군은 “‘슈퍼맨 전갈’이라는 벌이 있는데 한 손과 한 다리를 들고 30초를 버티는 것이다. 버티지 못하면 1분씩 늘어난다. 덩치 큰 학생들은 균형을 잘 잡지 못해 계속하게 된다”고도 했다.
사립인 이 학교는 관악구 안에서 대학 진학률로 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명문고로 꼽힌다. 하지만 ‘공부 좀 시키는 학교’일수록 학부모들은 체벌을 용인하는 경향이 있고, 학교의 징계는 감시 밖이다. 이 학교 교사는 “교사들이 오래 근무하는 사립학교다 보니 징계를 세게 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체벌 교사 징계는) 학교에서 알아서 하지 않겠나. 사립학교 징계는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며 관리감독에 손을 놓았다.
비단 사립학교가 아니라도 교육당국은 체벌 근절에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학생인권교육센터에는 ▦야간자율학습 지각 고교생에 대걸레로 25대 체벌 ▦지각 고교생에 각목으로 엉덩이 체벌과 머리박기 기합 등 약 20건의 체벌 관련 민원이 접수됐는데 대체로 학교가 해당 교사에게 주의, 서면경고를 주는 것에 그쳤다.
체벌을 포괄적으로 금지한 서울학생인권조례가 2012년 공포됐지만 체벌이 여전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각에서 교권 추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높였고,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직접체벌만 금지하고 간접체벌을 허용하는 듯한 사인을 준 것이 교사들에게 악영향을 미쳤다. 수원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F(15)양은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교복을 줄여 입은 학생을 불러 뺨을 때렸다”며 “국어 선생님은 ‘나는 체벌 금지법이니 학생인권조례니 신경 안 쓰니 신고할 테면 신고하라’고 소리질렀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이 체벌을 당연시하는 학교도 있다. 올해 4월 서울 서대문구의 한 중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했던 G씨는 “지각했다는 이유로 여학생은 치마를 입은 채 오리걸음을 하고 남학생들은 당구채로 맞았다”며 “얼마나 체벌이 만연하면 학생들은 잘못하면 맞는다는 걸 당연시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희정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사무처장은 “체벌을 당하더라도 교사들에게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학생도, 학부모도 문제삼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과 교수는 “체벌에 항의했다가 교사에게 찍히거나 벌점을 맞아 내신성적이 깎이는 것보다 그냥 체벌을 받고 넘어가려 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한 중학교 교사는 “지난 수십년 동안 체벌이 하나의 훈육수단으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조례를 만든 것만으로 체벌이 없어지긴 어렵다”며 “문화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데 교육감이 (진보에서 보수로) 바뀌면서 자극이 사라졌고 학교는 관성대로 되돌아갔다”고 진단했다. 김인식 전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위원회 위원은 “근본적으로 학생 스스로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성찰이 필요하다”며 “학교 현장에서 교육적인 체벌의 대안을 고민하고 교육청과 교육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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