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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은 정녕 말뿐인 개혁론에 그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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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은 정녕 말뿐인 개혁론에 그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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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2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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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하면 떠올릴 연암 박지원. 조선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했으나 진심으로 양반중심사회를 혁파하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반론이 많다. 여전히 주자학적 인물이었다는 얘기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실학’하면 떠올릴 연암 박지원. 조선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했으나 진심으로 양반중심사회를 혁파하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반론이 많다. 여전히 주자학적 인물이었다는 얘기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근대적 맹아’ 논리 붕괴 상태

강명관 “실천 없는 말잔치”

김상준 “유학의 역동적 흐름”

학자마다 재정의 방법 다양

18세기 초 농업 중심 개혁을 주장하는 ‘경세치용학파’가 있었고, 18세기 후반에는 상공업 중심 개혁을 주장하는 ‘이용후생학파’가 등장했고, 19세기에는 ‘실사구시학파’가 등장한다. 지금도 배우고 가르치는 조선 후기 실학에 대한 얘기다. 그러나 정작 학계에서 이런 논리는 거의 다 무너졌다. 근대적 맹아를 품고 있는 실학이란 ‘20세기 후반, 근대에 대한 절실한 욕망이 만들어낸 유령’이라는 쪽으로 정리되고 있다.

그러면 17, 18세기 집중적으로 제기된 각종 개혁론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이 주제를 두고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한국실학학회는 23, 24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실학 담론의 출발과 심화’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김영식(서울대), 미야지마 히로시(성균관대) 등 원로를 비롯, 학계 중진인사들이 총출동한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건 강명관(부산대)의 ‘경화세족과 실학’, 김상준(경희대)의 ‘실학 재론-중층근대론의 관점’이다. 실학의 재정의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법이 돋보인다.

강 교수는 실학 개념 자체를 혹독하게 비판한다. ‘권력의 핵심에서 빗겨나 있는 양심적 지식인들의 진보적인 개혁론’이라기보다는 ‘벌열가문 일부의 어정쩡한 개혁론, 그마저도 말 뿐이었던 개혁론’ 정도로 본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중국은 명에서 청으로,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 체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조선은 변화가 없었다. “사족(士族)체제를 전복할 혹은 도전할 민중 세력이 전쟁으로 몰락”해버렸기에 그렇다.

물론 실학자들 이상의 강력한 개혁안을 부르짖은 도적떼들은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제거당했다. 도전자 제거 실력만큼은 확실한 덕에 양반들은 자리를 지켰으나 스스로 뭔가 좀 바뀌어야겠다 생각했다. 흔히 실학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을 두고 강 교수가 ‘유교적 경세론의 일부’ ‘사족체제의 자기조정프로그램’이라 부르는 이유다. 이렇게 보면 당대 글줄 깨나 읽었다는 유학자 치고 실학자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학자 vs 주자학자’라는 대립구도 자체가 무너진다.

이렇게 내 손으로 내 병을 고치겠다는 개혁론은 대체로 말 잔치로 끝난다. 강 교수는 “유형원이 ‘반계수록’을 완성한 1670년부터 1858년 최성환의 ‘고문비략’ 사이 200여년 간 무수한 자기조정프로그램이 존재했지만, 실천된 것은 없다”고 못 박았다. 사족체제 유지를 목표로 하는 사족들 스스로 사족체제를 건드릴 순 없는 노릇이다.

김 교수는 이런 실학 비판을 ‘실학 디플레’라 부르면서 “실학 개념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고 반박한다. 그는 실학 그 자체보다 유학의 역동성에 집중한다. 구체적으로 예송논쟁을 든다. 기존 실학의 관점에서 ‘상복 몇 년 입느냐’ 따위의 별 중요하지 않는 문제를 두고 치열하게 싸운 예송 논쟁은 비판 대상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예송 논쟁으로 인해 “전국정치가 개시되고 이후 100년 넘게 선진적 주권 논쟁이 전개”됐다고 평가한다. “왕권을 둘러싸고 도성과 조정만이 아니라 전국의 향촌사회까지 개입했던 당대 최고 수준의 정치 투쟁”을 ‘공리공담’으로 손쉽게 격하하지 말라는 얘기다. 김 교수는 “정체, 변동, 도약으로 점철된 다양한 유학 내 흐름을 실학”이라 부르자 제안한다. 그렇다면 실학의 관점에서 비판 대상인 예송 논쟁에도 오히려 실학적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유학의 자기갱생, 그게 실학이고 오늘날 우리의 근대로 이어졌다고 본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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