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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무대 뒤... ‘마음의 병’에 멍드는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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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무대 뒤... ‘마음의 병’에 멍드는 아이돌

입력
2017.12.20 04:4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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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세상을 떠난 아이돌그룹 샤이니 멤버 종현의 영정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8일 세상을 떠난 아이돌그룹 샤이니 멤버 종현의 영정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 없었다.’ 록밴드 디어클라우드 멤버인 나인은 이달 초 아이돌그룹 샤이니의 멤버인 종현(27ㆍ본명 김종현)에게서 이런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속부터 고장 났다’며 심적 고통을 토로하는 장문의 글이었다. 나인은 지난 9일과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종현의 콘서트에 직접 찾아가 그를 다독였다. 종현이 보낸 메시지를 그의 가족에게도 보여줬다.

보름도 채 안 돼 이 메시지는 유서가 됐다. 종현은 지난 18일 오후 6시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레지던스호텔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종현 지인들에 따르면 종현은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경찰은 종현이 발견된 레지던스에서 갈탄으로 보이는 물체가 타고 있는 프라이팬이 발견돼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것으로 보고 사건을 종결했다.

공황장애ㆍ거식증… 속 멍든 아이돌

아이돌은 어릴 때부터 심리적 압박을 받아 정신적 스트레스를 크게 겪는다. 상당수 아이돌은 이르면 초등학생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 10대 중반에 데뷔한다. 청소년 시기에 불특정 다수의 ‘악플’에 시달리다 보면 불면증의 늪에 깊이 빠지기도 한다.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사생팬’으로 인해 사생활을 포기하고 주변과 격리돼 살다 보면 우울의 깊이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아이돌의 심리적 불안을 부추긴다. 중ㆍ고등학교에서 또래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사회화 과정을 겪지 못해 외부 자극에 취약한 탓도 있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의원장은 “연예기획사에서 어려서부터 키워진 아이돌은 대인 관계 형성이 또래보다 서툴러 외부 스트레스에 더 취약하다”고 봤다. 다른 것을 포기하고 가수가 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아이돌에게 성공과 인기 유지에 대한 걱정은 심리적으로 큰 짐이기도 하다.

실제로 아이돌 중에선 정신 건강으로 연예 활동을 중단한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 6월 걸그룹 AOA 탈퇴를 선언한 초아를 비롯해 오마이걸 멤버였던 진이, 크레용팝의 소율 등이 우울증과 거식증, 공황장애 등을 이유로 팀 활동을 중단했다. 초아는 팀 탈퇴 당시 “불면증과 우울증을 치료하고자 약도 먹어보고 2년 전부터 일정을 점점 줄여왔지만, 피로에서 오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모든 활동을 중단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바쁜 스케줄과 유명세로 적극적 상담 어려움

아이돌이 우울증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데는 환경 탓도 크다. 아이돌은 얼굴이 알려져 치료에 선뜻 나설 수 없다. 정신과 치료나 상담을 받는다는 소문이 외부에 알려져 홍역을 치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배우와 달리 아이돌은 따라다니는 극성 팬들이 많아 정신과 상담이나 치료에 더 큰 부담을 느낀다.

바쁜 스케줄 등으로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지 않아 병을 키우기도 한다. 10년째 청소년 상담을 하는 A씨는 “아이돌은 바쁜 스케줄과 외부 노출에 대한 부담으로 상담에 소극적으로 참여해 치료 효과를 보기 어려운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대중이 아이돌에 기대하는 건 무대 위에서 항상 활기찬 모습”이라며 “자신의 심리적 상황과 정반대되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마음의 병이 더 커질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종현은 과거 한 케이블채널 음악 방송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로 나를 판단해 억울했다”며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결국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데뷔 후에도 ‘상담 안전망’ 필요

외부의 자극에 쉽게 멍드는 아이돌의 정신 건강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상당수의 가요 기획사에는 데뷔한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정기적 심리 상담 프로그램이 없다. 연습생에게는 스트레스 해소법과 우울증 예방 등을 위한 심리 치료를 위해 심리 상담사를 1대 1로 배치하며 관리하지만, 정작 데뷔한 아이돌의 흔들리는 정신 건강 수습엔 그만큼 대처를 못하고 있다. 한 대형 가요 기획사의 고위 관계자는 “성인이 된 데뷔 몇 년 차 아이돌에게 회사가 먼저 나서 정기적으로 심리 상담 등을 관리하는 건 (본인이 거부감을 느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고충을 전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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