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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임은정 검사가 옳았다

입력
2017.09.2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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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특히 민감한 성폭력 사건 재판이 있었다. 법정을 가득 채운 농아자들은 수화로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이들 대신 싸워 주는 것. 그리하여 이 세상은 살아 볼 만한 곳이라는 희망을 주는 것. 내가 할 일을 당연히 해야겠지.” 2007년 일명 ‘도가니사건’의 공판검사를 맡은 임은정 검사가 당시 심경을 적은 글이 공개되자 큰 반향이 일었다. 그에게는 검찰총장상이 수여됐고, 얼마 뒤에는 ‘우수여성검사’라는 영예까지 주어졌다. ‘유능한 검사’였던 그가 졸지에 퇴출대상으로 분류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2012년 9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른 박형규 목사의 긴급조치위반 사건 재심을 담당하면서 ‘백지 구형’이 아닌 ‘무죄 구형’을 한 것이 눈밖에 났다. 무죄가 뻔한 데도 검찰이 잘못을 인정하기 꺼려 판사에게 선고를 일임해 온 백지 구형의 관행을 깼다는 이유였다. 임 검사는 3개월 후 윤길중 진보당 간사의 재심 사건에서도 “무죄가 분명한 사안을 판사에게 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며 다시 무죄 구형을 했고, 검찰은 이번엔 4개월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소신을 굽히지 않은 임 검사는 징계처분 취소소송을 내 1ㆍ2심에서 승소했고 현재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 법무ㆍ검찰개혁위원회가 29일 임 검사에 대한 징계조치를 시정하고 실질적 피해회복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임 검사에 대한 상고 취하와 함께 지휘권 오ㆍ남용 여부도 확인하라고 주문했다. 잘못된 관행을 고치려 한 임 검사의 손을 들어주면서 백지 구형을 강요한 검찰 상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 임 검사는 검찰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날 때마다 비판의 목소리를 내 왔다. 진경준 검사장 뇌물수수 사건 때는 “권력을 좇는 부나방들이 금력 역시 좇는 것은 당연한 속성”이라고 비판했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영장 기각 후에는 “우병우의 공범인 우리가, 우리의 치부를 가린 채 우병우만을 도려낼 수 있을까”라고 개탄했다. 임 검사는 한 인터뷰에서 “검찰이 우병우나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 때문에 망가진 게 아니다. 위에서 시키는 일에 기꺼이 굴종해 온 사람들과 방관해 온 이들, 그렇게 우리 모두 직간접적인 부역자로서 책임이 있다”고 했다. 정의와 원칙대로 살아가려는 검사가 더 많아져야 검찰이 바로 선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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