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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안전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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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안전가옥

입력
2010.10.1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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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m가 넘는 담장과 500여평 넓이의 정원. 건물 모습을 가리는 높이 20여m 안팎의 전나무 소나무 향나무 등 정원수. 본관과 관리실로 구분된 건물 2개 동. 유럽풍의 베이지색 고급 소파와 카펫, 화려한 샹들리에. 30여평 크기의-그래서 마치 운동장 같았던-온돌방과 2개의 응접실. 더블 침대가 있는 2층 침실과 응접실. 1993년 3월 4일 언론에 처음 공개된 궁정동 안전가옥'영빈관'의 모습이다. 함께 공개된 영빈관 건너편 '한국관'은 10ㆍ26 현장과 접해 있었다. 그러나 안가 건물은 80년에 이미 헐렸고 현장에는 잡초만 무성했다.

■ 청와대 안가는 1960년대 말에 처음 생겼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대통령의 사적 집무ㆍ휴식 공간의 필요성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해 추진했다고 한다. 안가는 주로 청와대 인근 궁정동, 삼청동, 청운동 등에 흩어져 있었는데, 93년 3월 김영삼 대통령 취임 직후 헐린 것만 12개 동에 달했다. 군사정권 시절 안가는 독재의 산물이자 밀실 정치의 상징이었다. 대통령과 여당, 정부 인사들은 안가에서 '밤의 정치'로 국정을 주물렀다. 그런 극도의 폐쇄성은 강압과 불법을 잉태했다. 불법 자금 수수가 횡행하고 수시로 관계기관 시국 대책회의가 열렸다.

■ 민주화는 안가 운용에 변화를 몰고 왔다. 청와대 안가는 사실상 대통령의 반 공개적 휴식 공간이 되었다. 경호상 문제로 일반의 접근은 계속 차단됐지만 대통령은 안가에서 가족 모임을 갖거나 지인과 식사나 운동을 하며 민심을 들었다. 검찰은 과거 비밀수사를 위해 안가를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마약 등 중대 범죄 신고ㆍ피해자 보호를 위해 10여 개의 안가를 운영 중이다. 국가정보원 등은 탈북자 신변 보호를 위한 안가를 국내외에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엔 여전히 대공ㆍ정보분실 형태의 안가가 있지만 과거와 같은 강압 수사와는 거리가 멀다.

■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사망으로 안가가 주목을 끌고 있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안가의 존재나 황씨의 거주를 전혀 몰랐다는 게 놀랍다. 무관심, 주의력 부족 때문이겠지만 북한의 암살 위협에 경호팀이 극도의 보안체계를 가동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위치와 각종 보안시설이 노출돼 안가로서의 유용성을 잃고 다른 안가의 보안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다. 독재시절과 같은 안가는 용납할 수 없지만 국가안보와 직결된 고급 정보를 제공했거나 중대 범죄를 신고한 이들의 신변 보호를 위한 안가는 꼭 필요하다. 그것은 국가 안위ㆍ이익과 직결되는 문제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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