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0일 서울중앙지검을 상대로 진행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린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 14층.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당시 수사팀을 이끌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검찰 지휘부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자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사팀의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며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검찰 지휘부와 수사팀장 모두 눈시울을 붉히며 어수선한 장면이 연출된 상황에서 박영선 당시 법사위원장이 전두환 추징금 특별환수팀장을 맡은 김형준 부장검사를 지목하고 수사에 대한 소회를 물었다. 김 부장검사는 “검찰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을 가지고 환수 업무에 임했다”고 답했다. 박 위원장이 다음 차례로 넘어가려고 하자 김 부장검사는 이례적으로 발언권을 요청했다. “공자의 제자 유자의 이야기 중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법과 원칙, 기본을 세워서 길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번 특별환수팀의 업무가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길을 만드는 업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고 말했다. 침체된 국정감사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화자찬한 김 부장검사의 돌출행동에 검사들이 크게 당황했다.
김 부장검사는 2009년 3년 임기로 미국 뉴욕의 한국 외교부 유엔대표부 법무협력관으로 파견근무를 갔다. 그는 뉴욕에서 활동 중인 법조계 인사 6명과 함께 유엔의 내부사정을 담은 ‘유엔리포트: 유엔 내부에서 바라본 유엔 이야기’를 번역 출간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김 부장검사는 곧 존재감을 넘어 구설에 올랐다. 임기를 6개월 가량 남겨둔 2011년 검찰 내 요직인 대검 범죄정보2담당관으로 인사가 나자 그는 후임자가 결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귀국을 서둘렀다. 법무부 내에서도 전례가 없던 일이라 그의 귀국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러나 김 부장검사의 장인인 박희태 당시 국회의장의 영향력 때문인지 그는 조기귀국에 성공했다. 결국 법무협력관 자리는 일시적으로 공석이 됐고 업무에 공백이 생겼다. 이후 검찰 내에서 그의 처신을 두고 뒷말이 나온 것은 물론이다.
두 일화를 통해 김 부장검사의 공명심과 인사욕심을 엿볼 수 있다. 최근 불거진 김 부장검사의 ‘스폰서 검사’ 스캔들도 그의 평소 행보와 연결해 해석하는 법조인들이 적지 않다. 그만큼 김 부장검사에 대한 평가가 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김 부장검사와 함께 근무했던 선ㆍ후배 검사들의 대체적인 인상은 이렇다. “영향력 있는 윗사람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겼다. 하지만 자신감이 조금 과한 편이고 공명심이나 인사에 대한 욕심도 컸다.” 이 같은 평가는 대학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989년 대학입시 때 1지망으로 쓴 서울대 법대에 떨어져 2지망이었던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김 부장검사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해 4년 만인 1993년 합격했다. 김 부장검사의 대학 동문들은 “친구들에게 살갑게 대했지만 사람을 가려 사귄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부장검사가 박희태 국회의장의 딸과 결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친구들 사이엔 “역시 김형준답다”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
그는 검찰에서 경력관리를 잘 했다. 1999년 수원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점차 두각을 나타내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실력도 있었지만 운도 많이 따랐다. 대표적 사례가 전두환 추징금 특별환수팀장 자리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2,205억원을 환수하기 위해 국회가 ‘전두환 추징법’을 통과시키자, 2013년 검찰도 특별환수팀을 꾸리며 실력 좋은 검사들을 배치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국회가 뒤에서 밀어주고 실력 좋은 검사들로 구성된 팀에서 결과가 제대로 안 나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고 여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남부지검이 금융범죄 중점 검찰청으로 지정되면서 서울중앙지검에서 자리를 옮긴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의 초대단장을 그가 맡은 것도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김 부장검사가 인천지검 외사부장 근무 당시 진경준 당시 2차장을 상관으로 모시면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던 사실이 알려지자 ‘준 형제’(진경준ㆍ김형준)가 검찰 망신을 톡톡히 시켰다는 혹독한 평가까지 나왔다.
김 부장검사는 정치에도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스폰서’로 지목된 사업가 김모(46ㆍ구속)씨와 주고 받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에는 그의 야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검사장 승진에도 그렇고 차후 총선에 나가려 해도….” 하지만 그의 야망은 꺾였고 이제는 잘 나가던 검사에서 타락한 검사의 아이콘으로 전락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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