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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에서 얼음 녹는 소리 담으려다 떨어질 뻔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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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에서 얼음 녹는 소리 담으려다 떨어질 뻔도 했죠"

입력
2016.06.2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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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폴리 아티스트, 소리를 부탁해’ 등을 낸 안익수 음향 감독이 갑옷의 “찰찰” 소리를 만들고 있다. 그는 “발소리를 내는 게 소리꾼으로서 기본이지만 아직도 어렵다”고 말했다.
책 ‘폴리 아티스트, 소리를 부탁해’ 등을 낸 안익수 음향 감독이 갑옷의 “찰찰” 소리를 만들고 있다. 그는 “발소리를 내는 게 소리꾼으로서 기본이지만 아직도 어렵다”고 말했다.

강원도 원주에 살던 소년은 소리에 유독 끌렸다. 계단 난간에 귀를 대고 노는 게 취미였다. 27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만난 안익수(53) 음향효과 감독은 소리를 찾고 만드는 일을 “운명”으로 여겼다.

“아버지가 토정비결을 봤는데 제가 나중에 소리 나는 일을 할 거라고 했다더군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는데 이 쪽으로 온 거 보면 운명인가 봐요, 하하하.”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의 인기로 극중 남자주인공 박도경(에릭)의 직업인 음향 감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음향 감독은 야외에서 소리를 모으거나 만드는 일을 한다. 안 감독은 1992년 KBS에 음향효과기사로 입사해 비무장지대(DMZ)부터 제주도까지 한국의 곳곳을 오가며 자연의 소리를 녹음기에 담았다. 절벽에서 얼음 녹는 소리를 따다가 발이 미끄러져 떨어질 뻔한 위기도 넘겼다. 안 감독은 “‘또 오해영’ 속 도경의 아버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마이크를 잡으려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보고 공감이 됐다”며 “기차 소리를 담기 위해 교각 위에 매달려 소리를 딴 적도 있다”고 옛 작업 얘기를 들려줬다.

안 감독은 25년 동안 매일 녹음기를 들고 다닌다. 드라마에 어떤 소리가 쓰일 지 모르기 때문에 장례식장에 갈 때도 녹음기를 챙긴다. 아이 울음 소리가 급하게 필요해 큰 딸을 울린 적도 있단다. 안 감독은 “큰 딸이 어렸을 때 살짝 꼬집어 울음 소리를 녹음 했는데, 그 소리를 요긴하게 써 딸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며 멋쩍게 웃었다.

모든 소리를 자연에만 의존할 수 없다. 손톱 깎는 소리를 예로 들면 손톱을 깎을 때 드라마에 나오는 “딱”하는 선명한 소리가 나지 않을 뿐 더러, 엔지(NG)라도 나면 손가락에 손톱이 남아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소리를 만드는 일을 할 때 일상의 소리에 관심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안 감독은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니다 집게에서 손톱 깎는 소리를 떠올렸다. 엄지와 검지로 살며시 잡고 가볍게 튕겨주니 “똑”소리가 뚜렷했다.

때론 만들어진 소리가 실제 소리보다 더 진짜 같기도 하다. KBS1 ‘태조 왕건’(2002) 등 대하사극 속 “찰찰”거리는 갑옷 소리도 만들어진 소리다. 실제 드라마 의상인 갑옷의 비늘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소리가 귀에 거슬릴 정도로 거칠어, 천에 병뚜껑을 여러 개 달아 흔들어 소리를 냈다. 제일 힘든 건 ‘촛불 흔들리는 소리’, ‘북극 얼음 녹는 소리’ 같은 소리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받고 그 소리를 고민할 때다.

귀를 열고 사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예민할 때는 잠을 이루기까지 한 시간 넘게 걸린다. 안 감독은 “아파트 층간 소음에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며 “슬리퍼를 사 들고 가 초인종을 누르려다 싸움 날까 그냥 내려온 적도 있다”며 웃었다. 시계 알람 소리도 집에서 제일 먼저 들어 아이들 깨우는 건 늘 그의 몫이었다. ‘또 오해영’ 속 예민한 박도경의 모습이 과장은 아닌 셈이다.

안 감독은 동시녹음의 일반화로 소리 만드는 폴리(Foley) 작업 시장이 위축된 요즘 실생활에 소리를 응용하는 방법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소리는 듣는 사람에 의해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며 “자연의 소리를 명상이나 치료의 수단으로 쓰거나, 아이들을 위한 소리놀이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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