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서지, 최주한 교수 주장 수록
임화 월북 직후 쓴 글 4편과 해방기 박목월 시 2편 발굴
‘구름에 솟은 삼각의 뫼에 높음이 우리 이상이요’로 시작하는 보성중학교의 교가 작사자는 춘원 이광수다. 그러나 이광수에 앞서 우리나라 서양음악의 선구자로 꼽히는 김인식(1885~1962) 선생이 교가 노랫말을 지었었다. 교가가 언제 왜 바뀌었는지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최근 발간된 근대서지 11호(2015 상반기, 소명출판사)에 실린 최주한 서강대 연구교수의 글에 따르면 원래 교가는 일제강점기 검열 때문에 춘원의 것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최 교수는 서지학자 오영식(보성고 교사)씨로부터 이광수의 교가가 실린 자료 중 가장 오래된 1929년 보성고등보통학교(중학교) 7회 졸업앨범을 입수, 분석한 결과 보성중학이 조선총독부로부터 고등보통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은 1917년 교가가 바뀌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제는 학교가 구국교육운동의 거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주시, 1911년 총독부로부터 인가받은 학교에 한해 상급학교 진학, 취업을 허용했다. 1906년 김인식 선생의 교가엔 ‘대한국’ ‘자치국민’ ‘자유경종’ 등의 단어가 빼곡해 인가를 받을 수 없어 춘원의 가사로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새 노랫말에는 자유나 독립 대신 ‘새로운 누리’ ‘만대의 업’ 같은 우회적 표현들이 쓰였다.
같은 호에는 임화, 박목월의 미발굴 글도 소개됐다. 1951~2년 쓰인 임화의 글 네 편에서, 1947년 월북해 1953년 처형당한 시인이 북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 것을 엿볼 수 있다. 정론 ‘위대한 쏘련은 세계 평화와 인민들의 자유의 기수이다’와 기행문 ‘나는 쏘련에서 우리 조국의 찬란한 앞날을 보았다’에서 시인은 옛 소련을 “자유의 기수이며 희망의 태양”으로 드높인다. 조급함이 느껴지는 맹목적 찬양에 대해 박태일 시인은 “북한 주류 문학사회에서 볼 때 주제 모르는 ‘남도치’ 불평분자”로 보였을 임화가 문인이라는 인식보다 사회주의 모국에 대한 찬양에 주력했음을 지적했다.
목월의 시 ‘산은 구강산’ ‘무궁화’는 1946년 1월 창간했다가 3집을 끝으로 폐간한 문예지 ‘예술부락’에 실린 것으로, 앞의 시는 목월 대표작 ‘산도화’의 초벌로 추정된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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