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우주탐사선 뉴 호라이즌스 호가 찍은 명왕성 사진의 값어치는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 인류가 명왕성에 가장 가까이 가서 찍은 사진이니까, 경매에라도 나온다면 꽤 비싸게 팔릴 것 같다. 가장 비싼 사진을 찍는 작가 중 한 명인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라인강2’는 2011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30만달러, 우리 돈으로 약 50억원에 팔렸다. 명왕성 사진이 50억원에 팔린다 하더라도 미 항공우주국은 밑지는 장사를 했음에 분명하다. 이번 프로젝트에 들어간 돈이 7억달러, 약 8,000억원 정도이다.
10년 가까이 텅 빈 우주 공간을 날아가서 돌덩어리 사진 몇 장 찍자고 무려 8,000억원을 탕진하는 짓을 왜 했을까? 창조경제시대의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과학계의 중요한 발견이 있을 때마다 나는 “지금 우리 먹고 사는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전혀 상관이 없는데요.”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2012년 발견된 힉스 입자는 그 예견에서 발견까지 50년이 걸렸다. 그 50년 동안 인류는 힉스 입자 없이도 잘 먹고 잘 살았다. 아마 앞으로 50년 동안에도 우리가 힉스 입자의 덕을 볼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그런 소립자를 찾겠다고 가속기를 짓는 데에 무려 10조원의 돈이 들어갔다. 경제논리로 보자면 미친 짓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경제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도 많다.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린 것이 창조경제나 일자리 창출, 신기술 개발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모나리자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근래 한국에서는 모든 논리적 귀결점이 수출상품개발이다. 불행히도 저임금으로 싸구려 물건 만들어서 팔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선진국은 상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가치’를 만든다. 갤럭시는 상품이지만 아이폰은 가치이다. 미래창조과학부라는 명칭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국의 과학은 창조경제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여기서는 절대로 ‘가치’가 나오지 않는다. 돌덩어리 사진 찍자고 10년을 기다려 줄 공무원도 없거니와, 무려 8,000억원이라니.
가치는 인식의 새로운 지평에서 나온다. 인간 지성의 경계를 확정 짓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선봉의 역할은 주로 과학의 몫이었다. 과학은 가치를 만들어 내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다. 뉴 호라이즌스(새지평) 호는 그 이름에 걸맞는 가치를 만든 셈이다.
과학에는 돈을 ‘투자’하는 게 아니다. 과학에 쓰는 돈은 가치를 얻기 위해 꼭 지불해야만 하는 비용이다. 그럴 돈이 어디 있냐고? 미국이 명왕성에 가는 사이 우리가 4대강에 쓴 돈이 22조원, 자원외교에 쓴 돈이 35조원을 웃돈다. 그래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을 보면, 지금부터라도 경제와 전혀 상관없는 기초과학에 매년 1조원씩 쓴다 해도 앞으로 57년은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비싼 돈 들여 국민들 휴대전화나 훔쳐보는 현 정부에서 이런 발상의 전환이 가능할지는 의문이지만.
이종필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BK사업단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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