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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미국이 명왕성에 가는 사이

입력
2015.07.26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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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본부에서 명왕성 탐사선 뉴호라이즌스가 보내온 명왕성 이미지와 데이터를 추가 공개했다. 이날 NASA가 공개한 것에는 뉴호라이즌스에 실린 관측기구 중 하나인 '장거리 정찰 이미저'(LORRI)로 찍은 명왕성 표면의 고해상도 합성 이미지(사진)가 포함돼 있다. 여기서는 판 형태로 형성된 얼음이 명왕성의 표면에서 흘러서 움직인 흔적이 발견됐다. 연합뉴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본부에서 명왕성 탐사선 뉴호라이즌스가 보내온 명왕성 이미지와 데이터를 추가 공개했다. 이날 NASA가 공개한 것에는 뉴호라이즌스에 실린 관측기구 중 하나인 '장거리 정찰 이미저'(LORRI)로 찍은 명왕성 표면의 고해상도 합성 이미지(사진)가 포함돼 있다. 여기서는 판 형태로 형성된 얼음이 명왕성의 표면에서 흘러서 움직인 흔적이 발견됐다. 연합뉴스

미국의 우주탐사선 뉴 호라이즌스 호가 찍은 명왕성 사진의 값어치는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 인류가 명왕성에 가장 가까이 가서 찍은 사진이니까, 경매에라도 나온다면 꽤 비싸게 팔릴 것 같다. 가장 비싼 사진을 찍는 작가 중 한 명인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라인강2’는 2011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30만달러, 우리 돈으로 약 50억원에 팔렸다. 명왕성 사진이 50억원에 팔린다 하더라도 미 항공우주국은 밑지는 장사를 했음에 분명하다. 이번 프로젝트에 들어간 돈이 7억달러, 약 8,000억원 정도이다.

10년 가까이 텅 빈 우주 공간을 날아가서 돌덩어리 사진 몇 장 찍자고 무려 8,000억원을 탕진하는 짓을 왜 했을까? 창조경제시대의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과학계의 중요한 발견이 있을 때마다 나는 “지금 우리 먹고 사는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전혀 상관이 없는데요.”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2012년 발견된 힉스 입자는 그 예견에서 발견까지 50년이 걸렸다. 그 50년 동안 인류는 힉스 입자 없이도 잘 먹고 잘 살았다. 아마 앞으로 50년 동안에도 우리가 힉스 입자의 덕을 볼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그런 소립자를 찾겠다고 가속기를 짓는 데에 무려 10조원의 돈이 들어갔다. 경제논리로 보자면 미친 짓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경제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도 많다.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린 것이 창조경제나 일자리 창출, 신기술 개발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모나리자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근래 한국에서는 모든 논리적 귀결점이 수출상품개발이다. 불행히도 저임금으로 싸구려 물건 만들어서 팔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선진국은 상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가치’를 만든다. 갤럭시는 상품이지만 아이폰은 가치이다. 미래창조과학부라는 명칭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국의 과학은 창조경제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여기서는 절대로 ‘가치’가 나오지 않는다. 돌덩어리 사진 찍자고 10년을 기다려 줄 공무원도 없거니와, 무려 8,000억원이라니.

가치는 인식의 새로운 지평에서 나온다. 인간 지성의 경계를 확정 짓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선봉의 역할은 주로 과학의 몫이었다. 과학은 가치를 만들어 내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다. 뉴 호라이즌스(새지평) 호는 그 이름에 걸맞는 가치를 만든 셈이다.

과학에는 돈을 ‘투자’하는 게 아니다. 과학에 쓰는 돈은 가치를 얻기 위해 꼭 지불해야만 하는 비용이다. 그럴 돈이 어디 있냐고? 미국이 명왕성에 가는 사이 우리가 4대강에 쓴 돈이 22조원, 자원외교에 쓴 돈이 35조원을 웃돈다. 그래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을 보면, 지금부터라도 경제와 전혀 상관없는 기초과학에 매년 1조원씩 쓴다 해도 앞으로 57년은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비싼 돈 들여 국민들 휴대전화나 훔쳐보는 현 정부에서 이런 발상의 전환이 가능할지는 의문이지만.

이종필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BK사업단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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