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모바일 고해실, 좋아요는 디지털 아멘, 페이스북은 디지털 교회
신자유주의 힘 안 들이고 착취… 지혜로운 바보가 돼야
사고 싶은 것을 사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상태가 자유로 간주된다. 각자 욕망을 실현하고 여 보란 듯이 과시하는 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만한 수단도 없다. 타인의 욕망에 누르는 ‘좋아요’는 호감의 표징이다.
하지만 한병철(56)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그 자유는 자본이 제공한 레디메이드 옵션일 뿐”이라며 이런 확신을 뒤흔든다. 자기착취 시대를 꿰뚫어 본 문화비평서 ‘피로사회’의 저자인 한 교수의 신작 ‘심리정치’(문학과 지성사) 국내 번역본이 나왔다. 지난해 9월 독일에서 발행돼 현지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받은 책이다.
그의 논의는 자유에 대한 대중의 통념을 가차없이 팽개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의 갈구를 위해 일한다고 착각하지만, 이는 자본에 의해 권장되고 방임된 “자본의 고유한 욕구”일 뿐이라는 것. 오늘날의 시민은 “모두가 자기 자신의 기업에 고용돼 스스로를 착취하는 노동자”로 정의한다. ‘심리’는 자유롭다는 착각 속에 일시적이고 주관적으로 솟아난 흥분으로 규정된다. 모두가 더 나은 성과, 더 큰 돈을 통해 더 많은 자유를 얻으려 자본에 봉사하면서, 낙오한 사람은 자학하는 상황에 바로 “신자유주의적 지배 질서의 특별한 영리함이 있다”는 진단이다.
“자기 착취적 질서 속에서 사람들의 공격성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겨냥한다. 이런 자기 공격성으로 인해 피착취자는 혁명가가 아니라 우울증 환자가 된다.”
그에게 소셜미디어는 “디지털 판옵티콘(원형감옥)”이자 “친절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빅브라더”이다. 일체의 권유나 명령 없이 쏟아내는 자기노출 앞에 인간은 “예측 및 조종 가능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클릭, 검색 등 숱한 흔적을 통해 빅테이터가 그려낸 개인과 집단의 심리지도가 그 증거다.
한 교수는 “스마트폰은 디지털 성물이자 모바일 고해실, ‘좋아요’는 디지털 아멘, 페이스북은 디지털 교회”라며 “신자유주의는 큰 힘이나 폭력을 소모할 필요도 없이 저절로 ‘좋아요-자본주의’의 지배를 이룬다”고 꼬집었다. 그가 환호와 함께 등장한 빅테이터를 “인간의 종언, 자유 의지의 종언”으로 보는 이유다.
저자는 미국의 빅테이터 기업 액시엄의 사례를 통해 디지털 계급사회를 경고한다. 액시엄은 시민들의 구매력에 점수를 매겨 ‘슈팅스타’에서 ‘쓰레기’까지 구분한다.
그의 논의에서 신자유주의 권력은 억압하는 대신 조종하고, 금지하는 대신 유혹하는 세련된 착취 형식을 고안한다. 힐링 열풍도 착취의 도구다. 한 교수는 “힐링이란 효율과 성과의 이름으로 모든 기능적 약점, 모든 정신적 억압을 치료를 통해 제거함으로써 자아의 최적화를 이룬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는 결국 정신의 붕괴, 킬링으로 귀결된다”고 지적한다.
대안은 무엇인가. 그는 뜻밖에 ‘백치 상태’를 말한다. 착취와 예속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 ‘바보짓’이라는 것이다. 쏟아지는 광고와 ‘좋아요’의 정통에서 이탈할 용기, 기꺼이 아웃사이더로 남을 기개를 가진 백치가 되라는 주장이다. 그래야 침묵 고요 자유의 공간이 생긴다.
“순응의 압박이 점점 강화돼가는 오늘날, 이단적 의식의 날을 벼려야 할 필요성은 그 어느 때 보다 더 절실하다. 지혜로운 바보는 완전히 다른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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