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위해 북파공작원 활동을 했지만 제대 후에는 그 이력 탓에 정부의 감시 속에 어렵게 생계를 꾸려야 했던 고 설동춘(65)씨.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자전거 아저씨’로 불리던 그가 5년간의 식도암 투병 끝에 지난 21일 세상을 떠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북파공작원이 자전거 아저씨가 된 사연은 이랬다. 1970년대 초반 북파공작원 임무를 수행하다 1976년 제대한 설씨는 여느 북파공작원처럼 알 수 없는 이유로 제대로 된 직장을 잡기 어려웠다. 1980년대 초반 중동 붐이 일자 바다를 건널까도 생각했지만, 당국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나마 그림을 잘 그리던 재주를 살려 서울 약수동에서 20년 동안 표구점을 운영하고 막노동을 하며 두 아들을 비롯한 가족의 생계를 유지했다.
설씨를 비롯한 북파공작원은 2002년 국가유공자로 인정되면서 명예를 찾았다. 하지만 자신들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달라는 집회에 가스통을 들고 나오는 모습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며 가스통 아저씨라는 또 다른 멍에를 짊어졌다.
설씨는 실추된 이미지를 만회하기 위해 그는 2008년 말 특수임무유공자회 중구지회를 만들고 봉사활동에 나섰다. 설씨가 폐자전거를 모아 말끔하게 고쳐 마을의 어려운 이웃에게 선물해주기로 한 건 남은 생을 함께 하고픈 이웃 주민들에게 내민 손길이었다.
그는 동료들과 일주일 내내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고물을 내다 팔았고, 그 돈으로 자전거 부품을 사들였다. 자전거 부품은 길가에 내버려진 고장 난 자전거를 고치는 데 썼다.
2009년 7월 150대의 자전거를 어려운 이웃에게 처음 전달한 후 구내 중ㆍ고교, 어린이집, 노인회 등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마을 곳곳에 ‘아저씨표 자전거’를 실어 날랐다.
중구는 2010년 을지로4가 한 켠에 설씨 등 아저씨들이 사무실과 수리공간으로 사용하도록 자전거 무료이용 수리센터를 만들었다. 2011년부터는 예산도 지원해 자전거 수리비용 마련을 위해 고물을 모으러 돌아다닐 필요가 없도록 했다.
하지만 병과 싸워 다시 일어나 계속해 자전거를 이웃들에게 기증하고 싶다던 설씨의 자전거 기부는 결국 지난 7월 120대를 마지막으로 멈췄다. 중구 관계자는 “설씨가 생전 기증한 자전거는 총 2,000여 대로, 한 대당 15만원 씩 치면 총 3억원에 달하는 금액”이라고 했다.
설씨의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서울 중앙보훈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마을 주민들 수 백명이 찾았고, 유해는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그리고 아저씨표 자전거는 오늘도 서울 시내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다.
이태무기자 abcdef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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