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아하! 생태] 농작물 피해 주는 천덕꾸러기? 고라니 멸종되고 후회 마세요

입력
2017.06.24 04:40
0 0

한국·중국에서만 사는 토착종

희귀종 불구 한국선 ‘유해동물’

일부 지역 서식 희귀종 멸종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 의미

암컷 고라니가 수풀 사이를 껑충 뛰고 있다. 수컷 고라니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입 밖으로 튀어나와 있지만 암컷 고라니의 송곳니는 작아서 보이지는 않는다. 국립생태원 제공
암컷 고라니가 수풀 사이를 껑충 뛰고 있다. 수컷 고라니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입 밖으로 튀어나와 있지만 암컷 고라니의 송곳니는 작아서 보이지는 않는다. 국립생태원 제공

주말을 맞아 집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맡기면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무엇인지 마음속에 새겨보게 됩니다. 논문과 연구에 치여 주말에도 직장에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잘 지키지 못하기가 일쑤죠.

가족처럼 우리 곁에 있어 그 소중함을 깨닫기 어려운 토종야생동물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해외에서는 멸종 위기종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해 야생동물’인 고라니인데요. 중국에 서식하는 종류는 중국고라니, 한국에 서식하는 종류는 한국고라니라고 부릅니다.

멸종 위기 고라니, 우리나라에선 ‘유해동물’

고라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야생동물 중 하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만 토착종으로 서식하는 희귀종이라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선정한 멸종 위기종 ‘적색 목록’에도 포함돼 있습니다.

중국의 고라니 수는 급격히 줄어 현재 1만여 마리만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중국에서는 보호 종으로 지정돼 있으며 우리나라의 반달가슴곰이나 산양, 여우처럼 복원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한 때 일부 지역의 고라니 수가 현저히 줄어 다른 지역에서 일부를 옮긴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고라니가 농작물에 피해를 줘 허가만 받으면 수렵이 가능한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된 상황입니다. 게다가 갑자기 도로에 뛰어들어 로드킬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돼 버렸습니다.

이처럼 인간과의 마찰이 심각해진 고라니를 줄이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국제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동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맞을까요.

고라니, 너의 이름은

고라니는 너구리, 족제비, 오소리, 노루, 토끼, 늑대처럼 순우리말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들에게는 오랫동안 친숙한 동물 중 하나였을 것 같아요.

하지만 고라니가 원래 무슨 뜻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고라니에 ‘송곳니’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직 정확히 증명되지는 않았습니다. 노루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체구가 작아 ‘보노루’ 또는 ‘복작노루’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학계에서 쓰이는 이름은 아닙니다.

중국에서 ‘어금니노루’라는 의미로 ‘아장(牙獐)’이라고 부르는데, 그 의미를 따서 고라니라는 이름이 온 것은 아닐까요. 입술 밖으로 길게 뻗어 나온 한 쌍의 송곳니 때문에 ‘흡혈귀 사슴’으로 부르는 나라도 있다고 하네요.

어미 고라니와 새끼 고라니가 물가에서 노닐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어미 고라니와 새끼 고라니가 물가에서 노닐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영어로 고라니는 물사슴이라는 의미의 ‘워터 디어(water deer)’라고 불립니다. 중국 양쯔강 지역에서 한 외국인이 고라니가 물가에서 노니는 것을 처음 보고 붙인 이름인데요. 고라니의 학명인 ‘Hydropotes inermis’에도 ‘물을(Hydro-) 좋아하는(-potes)’이라는 뜻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처럼 고라니는 물을 좋아하고 수영도 잘 하는 동물이어서 호수나 하천과 같은 곳에서도 이동에 제약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뿔 대신 송곳니를 가진 고라니

수컷 고라니가 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수컷 고라니가 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고라니는 다름 사슴과 동물보다 체구가 작은 편으로 사슴류에서는 사향노루 다음으로 작습니다. 보통 몸 전체 길이가 80~100㎝까지 자라고 몸 높이는 55㎝ 정도, 몸무게는 15㎏ 내외입니다. 이처럼 체구가 작은 고라니는 크고 단단한 뿔 대신 작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슴의 뿔과 고라니의 송곳니, 어느 것이 더 진화된 것 일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고라니가 처음부터 송곳니를 가지고 있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고라니가 송곳니와 뿔을 함께 가지고 있다가 송곳니만 남고 뿔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고라니 이후에 나타난 종 중 일부는 송곳니와 뿔을 모두 가지고 있거나 뿔만 가지고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이 점을 고려해 송곳니는 일차적인 진화의 산물이고 뿔은 그 후에 나타난 이차적인 산물이라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뿔이 먼저냐? 송곳니가 먼저냐”라는 질문의 답은 ‘송곳니가 먼저’인 셈이죠.

사향노루와 노루, 고라니의 분화 과정. 국립생태원 제공
사향노루와 노루, 고라니의 분화 과정. 국립생태원 제공

왜 고라니는 진화 과정 속에서 뿔을 선택하지 않고 송곳니를 유지하게 되었을까요. 정확한 답은 아직까지 없지만 과거 자신들이 살아왔던 서식지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추정됩니다. 고라니는 풀이 무성한 평지와 나무가 많은 산지의 경계 지역을 선호합니다.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밝은 낮에는 주로 평지에 머무는데, 큰 뿔이 있다면 적과 싸우거나 적을 피해 도망칠 때 갈대나 억새 같은 식물에 걸려 생존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겠죠. 뿔은 살아가기에 거추장스런 존재가 아니었을까요. 반면 작지만 날카로운 송곳니는 다른 수컷과 경쟁을 위해 유용한 수단이었을 것입니다.

고라니는 왜 한반도와 중국에만 살까

빙하기 한반도는 많은 동물들의 피난처 역할을 했다. 아프리카에서 인도를 거쳐 한반도로 넘어 온 사슴은 뿔 대신 송곳니를 가진 고라니로 적응했다. 고라니의 분화, 이동 과정. 국립생태원 제공
빙하기 한반도는 많은 동물들의 피난처 역할을 했다. 아프리카에서 인도를 거쳐 한반도로 넘어 온 사슴은 뿔 대신 송곳니를 가진 고라니로 적응했다. 고라니의 분화, 이동 과정. 국립생태원 제공

고라니는 왜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등 일부 지역에만 살고 있을까요. 사슴류의 공통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인도를 거쳐 중국에서 한반도로 넘어왔는데, 중국과 한반도에서 분화되어 새롭게 고라니가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고라니의 조상은 점차 먹이가 풍부한 초지와 산림의 접경지대에 안착했는데 이 접경지대는 주로 습지와 하천 같은 물 주변입니다. 아마도 고라니에게는 이런 곳이 경쟁자들이 적어 생존에 더 유리했을 것입니다.

과거 신생대 홍적세에 있었던 빙하기의 영향은 아시아보다는 유럽과 북미에서 훨씬 더 극심했습니다. 아시아 지역에서 멸종한 생물 종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었죠. 한반도와 중국 남부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따뜻해 많은 동물들의 피난처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빙하기 때의 고라니도 이 지역에 잘 적응해 정착한 것은 아닐까요. 고라니보다 더 늦게 갈라져 나온 노루는 산악 지대를 선호해 중국 동북부와 몽골, 러시아, 유럽으로도 퍼져 나갔습니다.

빙하기가 지난 후 한반도를 둘러싼 지형은 달라졌지만, 고라니는 그대로 이 지역에서 계속 살아오고 있습니다. 고라니가 고대의 동물처럼 송곳니를 유지하는 것도 빙하기 당시의 원시적 모습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고라니와 사람이 공생하는 방법은

남한에 살고 있는 고라니 수는 최소 10만 마리에서 최대 75만 마리로 추정되는 등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분석은 개체수가 현상 유지되거나 약간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포식자와 경쟁자들이 사라지면서 점점 늘어나 현재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길가에 뛰어들었다 차에 치여 심각한 부상을 입은 고라니의 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길가에 뛰어들었다 차에 치여 심각한 부상을 입은 고라니의 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고라니의 개체수는 과거와 동일 혹은 약간 증가한 추세지만 체감상으로는 실제보다 더 많게 느껴지게 됐습니다. 농작물 피해와 로드킬 빈도가 고라니 증가보다 더 급격히 늘어나서입니다. 도로가 확장되면서 서식지가 단편화 되고 경작지가 늘어나 고라니와 인간의 접점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서식지가 조각조각 갈라지는 만큼 그 둘레가 길어져 도로에 노출되기도 쉽고 경작지가 산지로 퍼지면서 고라니와 더 가까워진 것입니다.

이유야 어쨌든 고라니의 개체수가 상당히 많은 것은 사실이며, 산림에 미치는 피해와 더불어 인간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한 관리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고라니 연구는 로드킬을 줄이는 방법과 농작물 피해 현황을 파악하는 것, 그리고 서식지 이용(시기와 범위) 분석, 서식지 적합성 평가 등에 그치고 있어 한계가 있습니다. 더 근본적인 원인 규명을 통해 인간과의 마찰을 줄이는 방안 마련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고라니의 적정 개체 수를 산정해 어느 정도로 유지해야 할 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면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비슷한 사례로, 북미의 경우 고라니와 유사한 흰꼬리사슴의 개체수가 적정하게 유지되면 산림의 식생 천이(遷移)과정에 도움을 주고 이를 섭식지와 은신처로 이용하며 살아가는 설치류와 조류, 곤충 등 다양한 동물들에도 혜택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체수가 적정하게 유지될 때, 가까운 서식지로 이동하거나 다른 서식지에서 건너오는 개체의 수가 줄어들어 주변 도로에서의 로드킬 빈도나 농지에서의 농작물 피해 빈도도 줄어들게 됩니다.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많은 포유류가 있으며, 이중 일부 지역에만 서식하는 희귀종은 그 지역에서의 멸종이 곧 지구상에서의 멸종을 의미하죠. 중국 등 일부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판다는 특이한 외모가 종의 보전 노력에 한 몫 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특이한 송곳니를 가진 중국고라니도 복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고라니의 경우 개체수가 많아 흔히 볼 수 있고, 사람과 마찰이 잦아 관심은 고사하고 골칫거리로 전락해 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중국고라니의 개체수가 적고 복원 작업도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반도 내 고라니의 보전이 지구상에서 이 종의 멸종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다고 해서 소중히 여기지 않고 넘어간다면 결국 후대를 위해 물려줄 귀중한 생태적 자산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김백준 국립생태원 생태기반연구실 선임연구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