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종 50개체 이상만 동물원 등록
규모 작으면 감독ㆍ제재 수단 없어
실내서 사람ㆍ동물 병 전염 위험
환경부 “전시 금지 방안 검토 중”
임모(32)씨는 지난해 11월 서울 마포구의 한 라쿤 카페를 찾았다가 라쿤에게 손가락을 물렸다. 만지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단지 휴대폰으로 라쿤을 촬영하려고 했을 뿐인데 라쿤이 갑자기 임씨의 손가락을 문 것이다. 살점이 뜯겨져 나갈 정도로 큰 상처가 났지만 카페 주인은 소독약을 바르라는 말만 했다. 임씨는 “라쿤이 너무 공격적으로 나와 깜짝 놀랐다”며 “어떤 질병이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불안감은 컸지만 카페에서는 소독약 이외에 어떤 조치도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중순에는 서울 마포구의 또 다른 야생동물 카페에서 코아티가 은여우에게 물려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29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에 따르면 사고 발생 제보를 받고 해당 카페를 방문했더니 이곳에는 사막여우, 코아티, 그리고 새끼 고양이 등이 한 공간에서 사육되고 있었다. 카페측은 “분리된 칸막이가 있었으나 은여우가 칸막이를 뛰어넘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또 다른 코아티 역시 상처가 난 꼬리에 흰색 테이프를 감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야생동물 카페에서 사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이를 관리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환경부는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수족관법)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야생동물 카페의 경우 야생동물을 전시하지 못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동물원수족관법에 따르면 10종 또는 50개체 이상 동물을 사육ㆍ전시하는 곳은 동물원으로 등록해야 한다. 하지만 이 보다 적은 수의 동물을 키우는 야생동물 카페들의 경우 이를 감독하거나 제재할 수단이 없다. 3월 시행 예정인 동물보호법 개정안에서도 개, 고양이, 토끼, 기니피그, 햄스터, 페럿 등 6종의 전시업소에 대해서는 법이 정한 인력과 시설 기준을 따르도록 하고 있지만, 라쿤 등 야생동물 전시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준도 마련하고 있지 않다.
야생동물 카페 대부분은 동물을 만질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입장료를 받고 음료를 따로 판매한다.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제조음료를 판매하기 위해선 동물이 돌아다니는 공간(영업시설)과 음료를 제조하는 공간을 벽이나 층으로 구분해야 하는데 제조음료 대신 병이나 캔음료를 판매함으로써 이마저도 교묘히 피해간다.
야생동물을 실내 공간에 가두고 사람들이 만질 수 있도록 하는 환경 자체는 동물과 사람 모두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서울 시내 9곳의 야생동물 카페를 다녀봤지만 동물의 예방접종 여부에 대한 알림판을 부착해놓은 곳은 단 1곳에 불과했다”며 “대부분이 라쿤이나 개, 고양이를 한 공간에서 전시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병원체를 공유할 수 있어 종간 질병을 전파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려가 커지자 환경부는 관련법 개정을 통해 야생동물 카페 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인수공통질병 예방과 동물복지 강화를 위해 음식을 파는 곳이나 동물원으로 등록하기 위한 개체 수를 확보하지 못한 곳은 앞으로 야생동물을 아예 전시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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