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역설
니나 타이숄스 지음ㆍ양준상, 유현진 옮김
시대의창 발행ㆍ512쪽ㆍ2만5,000원
지방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트랜스지방이 한때 식품업계의 총아였다는 사실은 잊혀진 지 오래다. 1980년대 중반 트랜스지방이 혈중 콜레스테롤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는 연구가 두 네덜란드 과학자에 의해 행해졌다. 미국이 아닌 네덜란드였던 이유는, 당시 미국에 마가린을 비롯한 경화유 산업이 굳건하게 뿌리 내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학계는 동물성 식품에 함유된 포화지방을 심장질환의 주범으로 지목, 1950년경에 이미 유죄판결을 내렸고 식물성 기름이 건강의 동의어로 쓰여오고 있었다. 식물성 기름에 수소를 첨가해 고체 상태로 만드는 과정에서 지방이 어떻게 ‘트랜스’되는지에 대해선 알 바가 아니었다. 공장은 이미 세워졌고 신나게 돌아가는 중이며, 필요한 건 트랜스지방 역시 안전하다는 학계의 판정뿐이었다.
네덜란드 과학자들은 연구 결과 트랜스지방이 많은 식단이 올리브유에 비해 LDL콜레스테롤을 상승시킬 뿐 아니라, 혈관을 청소해주는 HDL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의 주요 신문들에서 마가린의 지방산을 우려하는 헤드라인이 등장하기 시작하자 식품업계는 즉각 대응에 들어갔다. 쇼트닝식용유협회, 미국대두협회 등 이해관계가 얽힌 각종 단체와 기업은 100만달러 이상의 연구자금을 모금, 반박 실험을 추진했다. 연구 책임자는 완고하기로 소문난 생화학자 조지프 주드. 1994년 트랜스지방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시행된 첫 실험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연구진은 남녀 각 29명에게 트랜스지방의 함량을 조정한 네 가지 식단을 6주마다 돌아가며 먹게 한 결과, 트랜스지방이 많은 식단은 HDL콜레스테롤을 “약간 감소”시켰으며 LDL콜레스테롤을 유의미하게 증가시켰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주드는 발표 당시 회장의 분위기를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보고서를 제출할 때 쥐 죽은 듯한 정적이 흘렀죠!” 주드의 실험은 지금까지도 많은 과학자들의 뇌리에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과학이 자본을 상대로 거둔 몇 안 되는 승리이기 때문이다.
니나 타이숄스 ‘지방의 역설’은 대중에게 법전처럼 받아들여지는 식품영양학이 어떻게 자본의 목줄에 매여 이리저리 말을 바꿔왔는지, 그에 따라 얼마나 많은 식품이 억울하게 누명을 써왔는지에 대해 치밀하게 추적한 보고서다. 예일대, 스탠퍼드대 등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타이숄스는 ‘뉴요커’ ‘이코노미스트’ 등에 음식과 영양에 대한 글을 쓰는 탐사보도 저널리스트다. 독선적이고 권력지향적인 영양학계의 이면을 폭로하며 그가 가장 급하게 구제하고자 하는 건 지방, 그 중에서도 포화지방이다.
포화지방은 정말 비만의 주범일까? 우리가 거부해온 크림치즈와 스테이크가 사실은 비만, 당뇨, 심장 질환을 해결해주는 열쇠라면? 저자는 포화지방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60년 전으로 돌아가 ‘초동 수사’의 부실함을 하나하나 밝혀낸다. 포화지방에 처음 유죄 판결을 내린 학자가 얼마나 권력지향적 인물이었는지, 그의 정계 인맥이 얼마나 두터웠는지, 그의 반대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숙청 당했는지.
저자의 추리는 미제 사건 추적만큼이나 흥미롭고 그 결과 역시 만족스럽다. 이제 더 이상 붉은 육류와 치즈, 맛있는 계란 노른자 앞에서 망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저자는 스테이크의 육즙과 더불어 정당한 의심을 독자에게 돌려준다. 갑자기 모든 학자들이 옹호하거나 혹은 비난하는 음식이 있으면 일단 의심하고 볼 것. 식탁 위의 살인범이 지금도 총아의 가면을 쓰고 우리의 건강을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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