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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정치하다] “여의도가 못하면 내가…” 엄마는 정치 중

입력
2017.11.04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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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원 5300명 ‘미세먼지해결본부’

아토피 앓는 아이들 위해

‘푸른하늘 3법’ 입안ㆍ발의 결실

학대아동 등 소외된 사람 권리 대변

‘집단 모성’으로 정치권 압박

#2

촛불혁명 거치며 정치의식 세져

회원 2000여명 ‘정치하는 엄마들’

보육ㆍ노동ㆍ성평등ㆍ탈핵 등 목소리

“가장 좋은 정책 개발자가 주부들”

#3

“99년생 내 딸, 82년생 김지영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약자의 경험 있는 엄마들 뭉쳐

세상이 좀더 따뜻해졌으면…”

“이 나라가 국민을 보호하는 데는 별 뜻이 없구나, 깨달았죠. 내 아이는 내가 지킨다는 생각으로 엄마들이 직접 뛰어들 수밖에 없었어요.”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광장. 서울시가 주최한 ‘온실가스 및 미세먼지 저감 실천을 위한 캠페인’이 한창인 광장 한 켠에서, 아이 엄마들이 열정적으로 서명판을 돌리고 있다. 내리쬐는 햇살에 실눈을 뜨고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25만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은 회원수 5,300명의 미세먼지해결시민본부(미해본) 회원들. 더 이상 미세먼지 문제를 정부에 맡겨둘 수 없다며 지난해 인터넷 카페를 기반으로 모인 엄마들의 모임이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 6월 발의한 미세먼지특별법 등 ‘푸른하늘 3법’의 실질적 입안자이자 배후다. 자신들이 의원실과 함께 만든 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세계보건기구(WHO)의 초미세먼지 ‘보통’ 기준인 25㎍/㎥과 같은 숫자(25만명)를 목표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뭉친 엄마들이 직접 법안까지 만들었다. 미세먼지해결시민본부의 김민수(뒷줄 가운데) 대표와 회원들이 지난달 17일 서울광장 앞에서 '푸른하늘 3법'을 발의한 강병원(뒷줄 오른쪽 두 번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법안 통과를 촉구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뭉친 엄마들이 직접 법안까지 만들었다. 미세먼지해결시민본부의 김민수(뒷줄 가운데) 대표와 회원들이 지난달 17일 서울광장 앞에서 '푸른하늘 3법'을 발의한 강병원(뒷줄 오른쪽 두 번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법안 통과를 촉구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태초에 엄마가 있었다

김민수(50) 미해본 대표가 평범한 엄마에서 ‘행동하는 여전사’가 된 것은 중학생인 자녀 때문이다. 아토피가 심한 아이가 미세먼지 범벅인 날 학교 행사로 등산을 다녀왔다가 판다처럼 눈 주변이 새빨갛게 된 채 고통스러워 하는데, 더 이상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결의가 솟았다. “그날 미세먼지 예보 수치가 80㎍/㎥이었어요. 우리나라 환경부 기준으로는 81~120㎍/㎥가 ‘약간 나쁨’이고, 31~80㎍/㎥은 ‘보통’이죠. 아침에 학교에 전화하니 ‘80은 ‘보통’이라 예정대로 등산을 간다’는 거예요. 미세먼지 측정기를 보면 몇 초 사이로 수도 없이 수치가 움직입니다. 80과 81 사이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어요. 게다가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WHO 기준으로는 50㎍/㎥까지가 ‘보통’이라는 거죠. 너무 화가 났어요.”

이렇게 허술한 기준으로는 아이를 보호할 수 없다는 분노와 문제의식은 ‘이 잘못된 것을 내가 직접 바꿔야겠다’는 각성으로 이어졌다. 인터넷 카페에 엄마들이 모여 다양한 방식으로 해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각급 교육청에 문의하면, 돌아오는 건 “기준 강화는 목표 달성의 효과가 없다”는 말뿐. 기준을 강화해버리면 우리나라 국민은 거의 매일 ‘나쁨’ 예보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져서 안 된다’는 식의 논리였다. “우리 정신건강은 우리가 알아서 챙길 테니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달라는 거예요. 나쁜데 안 나쁜 것으로 거짓 정보를 주니,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만 까다롭고 유난 떠는 엄마가 되어 비난받는 겁니다. 사람의 목숨이 공무원들의 정책목표 달성 여부보다 덜 중요한가요? 아이들을 이렇게 방치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김 대표는 지난해 11월 서울환경운동연합과 강병원 의원실이 공동주최한 국회 토론회를 시작으로 1년간 10번의 정책 토론회에 발표자로 참여했다. 미세먼지 관련 논문을 읽고, 국제 기준을 검토하고, 전문가들과 토론하고, 엄마들과 공부하며 의견을 모았다. 토론회에선 아이들을 업고 안은 엄마 회원들이 객석을 가득 메우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강 의원이 압도된 풍경이다.

미세먼지해결시민본부 소속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정치권을 향해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국회 토론회장을 아이 엄마들과 아이들이 가득 채운 것은 이채로운 '사건'이었다. 미세먼지해결시민본부 제공
미세먼지해결시민본부 소속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정치권을 향해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국회 토론회장을 아이 엄마들과 아이들이 가득 채운 것은 이채로운 '사건'이었다. 미세먼지해결시민본부 제공

“국회 토론회 중 가장 특이한 참석자 구성이었어요. 100명 정도가 들어가는 토론회장에 갓난아기를 안고 온 어머니들이 그렇게 많은 겁니다. 너무도 진지한 목소리로 전문적이고도 구체적인 질문들을 하시는데, ‘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미세먼지를 심각한 문제로 바라보고 있구나’ 절실히 느꼈죠.” 강 의원은 엄마들의 목소리를 통해 미세먼지에 특히 취약한 ‘민감집단’(아이, 노인, 임산부 등)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다. “민감집단에게도 안전한 대책을 만들지 않으면 의미가 없겠구나” 깨달았다고. 석탄과 화력발전소만 어떻게 좀 해보면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엄마들, 법을 만들다

강 의원이 올 여름 대표발의한 ‘푸른하늘 3법’은 이 엄마들과의 만남을 통한 각성과 배움의 결실이다. 발생 메커니즘이 매우 복잡하고 복합적인 미세먼지는 기존의 대기관리 수단으로는 저감이 곤란하고 민감계층을 보호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존 법안 개정보다는 새로운 특별법 제정의 필요가 엄마들 사이에서 강력하게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미세먼지 환경기준을 강화하고, 어린이집이나 학교 같은 민감집단 활동공간에는 차별화된 보호서비스를 제공하는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가장 먼저 발의됐다. 이어 수도권만 강력 규제하는 기존 대기환경관리법의 맹점을 보완하고, 미세먼지 배출 자체를 줄이기 위한 ‘수도권 등 권역별 대기개선법’, 자동차 제조ㆍ판매사에 저공해차 의무 판매비율을 지정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유도하는 ‘저공해차 확대법’(대기환경보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잇따르며 ‘엄마와 함께 만드는 파란하늘 3법’이 선보였다.

김민수 미해본 대표는 “법안이 나오기까지 수십 번이나 의견이 오가며 삭제와 첨가가 이뤄졌을 정도로 입법과정에 엄마들의 목소리가 절절하게, 구석구석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의원실의 장용득 비서관이 “우리는 어머님들이 너무 무섭다. 항상 긴장한다”고 우스개 소리를 할 정도다. 초선인 강 의원은 “앞으로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이 배웠다”며 “국민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요구에 진심을 다해 응답하려고 하는 게 정치인에게 매우 중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더라”고 말했다.

“어머니들은 생활인이잖아요. 정치하는 사람들은 표를 위해 움직이고 자신의 정치적 역량과 성과를 키우는 데에만 급급한 데 반해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먹거리, 환경, 교통안전 등 일상생활 환경 하나하나에 다 민감하죠. 정치인들이 이런 눈높이에서 문제를 바라봤을 때 올바른 해결책, 완전한 해법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정책을 견제하고 감시하고 때로는 뒷받침하면서 엄마들이 자꾸 정치에 목소리를 내주는 것, 정치인들에게 이런 것 좀 하라고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것. 우리가 오랫동안 얘기해온 생활정치가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엄마가 웬 정치냐고?

엄마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있었다. 다만 흩어졌을 뿐이다. 인구의 절반은 여성이고, 여성의 절반 이상이 엄마다. 엄마들은 언제고 말했다. 그러나 조직화, 세력화되지 않는다는 것이 근본적 한계였다. 결집되지 않고 흩어지던 엄마들의 주장이 법안 발의라는 가시적 성과로까지 나타난 것은 흔치 않은 사례다. ‘나는 지금 정치를 하고 있다’는 명확한 자의식이 없을지라도 그들은 지금 정치를 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큰 목소리를 지녔을지라도 아이 키우랴 살림하랴 가정 바깥으로 나오기는 힘들었던 엄마들. 그들이 마침내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은 온라인이라는 시공간 덕분이다. 한 손으로 아이 안고, 다른 손으로 정치적 주장을 펼치는 것이 동시적으로 가능해졌다. 엄마라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모여 온갖 정보와 의견의 교환이 이뤄지는 맘카페가 그 대표적 시공간이다.

2만개를 훌쩍 넘는 맘카페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각 동네 엄마들이 모여 있는 지역 맘카페다. 같은 지역에 살다 보니 학부모회나 주민협의회 등을 통해 만나기 쉽고, 공통의 이해관계로 묶여 결속력도 높다. 2002년 월드컵과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등을 소녀 시절 체험한 30대 젊은 엄마들에게 광장과 정치는 낯선 것이 아니어서,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시의원, 구의원들에게 민원을 넣고 정책을 건의하는 것은 이들에게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촛불혁명을 거치며 엄마들의 정치의식은 보다 강력해졌다. 26개 지역 맘카페들이 3년 전 모여 결성한 회원수 200만명의 전국지역맘카페협의회가 올 봄 장미대선에서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을 초대해 간담회를 열었을 정도다. 유권자집단으로서 대선 후보를 직접 만나 궁금한 것을 묻고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그 답변을 받을 기회가 마땅히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전국지역맘카페협의회가 지난 봄 서울 마포구 신한류플러스 프리미엄 라운지에서 개최한 대선주자 토론회.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활짝 웃으며 맘카페 회원들과 나누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전국지역맘카페협의회가 지난 봄 서울 마포구 신한류플러스 프리미엄 라운지에서 개최한 대선주자 토론회.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활짝 웃으며 맘카페 회원들과 나누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모든 정당의 후보자에게 똑같이 제안을 드렸는데, 당시 민주당 경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성남시장, 정의당 대표였던 심상정 후보만 응해주셨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거절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날짜를 잡았다가 일정이 안 맞는다며 그 쪽에서 취소했고요.” 전국지역맘카페협의회 멤버인 이수진(41) 너나들이검단맘 카페지기는 맘카페가 웬 대선후보 토론회냐는 비아냥의 시선을 익히 예상하고 있었다. “맘카페가 그냥 중고나눔이나 하고 정보공유나 하면 되지 무슨 정치인과의 간담회를 진행하냐고요? 맘카페의 정의를 누가 그렇게 내렸나요? 모든 가정은 엄마를 중심으로 존재합니다. 시부모, 친정부모, 남편, 자녀, 회사에 다닌다면 동료, 상사…. 엄마들의 생활만큼 정치적으로 내용이 풍부한 삶이 있을까요? 공공요금, 자녀교육, 출산, 보육 등 모든 문제에 엄마들이 관련돼 있는 거예요.”

한국의 엄마들은 미국산 쇠고기와 가습기 살균제, 세월호를 거치며 정치가 엄마인 나의 삶에 깊이 침투해 있음을 자각했다. ‘더 이상 엄마인 우리들의 목소리가 정치의 후순위로 밀리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결의도 모두에게 충만하다. 이씨는 당시 대선 후보 토론회 참석 공지 글에 “‘우리가 뭘 안다고~’ 하시면 안됩니다.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된 나라에서 자녀를 키울 수 있습니다. 느낌, 정당, 지연, 무조건적인 지지가 아닌 냉정한 이성에 의해 그들을 판단해야 합니다. 간담회를 통해 진보와 보수, 정당이나 지연이 아닌 후보의 계획과 약속의 실현 가능성, 후보 자체를 검증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기회가 되길 기대합니다”라고 썼다.

그는 “‘교육부는 왜 그래? 여성부는 왜 이것밖에 못해?’ 아무리 우리끼리 얘기해봐야 바뀌지 않는다”며 “우리가 직접 원하는 바를 목소리 내야 정치인들이 그걸 듣고 움직여준다”고 강조했다. “임신ㆍ출산에서부터 어린이집 보육, 유치원 누리과정, 학교교육, 취업, 경제활동까지 엄마들 삶의 모든 것이 정치예요. 임신과 동시에 가입하는 맘카페에서 엄마들이 정치적 의견을 갖게 되고, 여성의 수많은 역할들 속에서 저절로 훅 하고 정치적으로 눈이 떠질 수밖에 없는 거죠.”

투표권이 없어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아동들의 인권은 엄마들이 아니면 결코 의제화될 수 없는 대표적 이슈다. 김포 검단지역 맘카페지기인 그는 지역에서 어린이집 아동 학대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회원 기부로 소송비용을 마련해 싸운다. 소송에서 이겨 배상금을 받으면 소송비용을 제한 나머지 금액은 맘카페에 기부해 다음 번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최근에는 1,200만원까지 모금에 성공해 승소, 900만원을 기부받았다. 김민수 미해본 대표도 “미세먼지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아동 성범죄 형량 강화를 위한 입법활동에 주력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과 사회적 탯줄로 연결돼 있는 엄마들이기에 유독 힘을 쏟는 정치적 의제가 바로 아동 인권이다.

'정치하는 엄마들'에는 남성 회원도 13명에 달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서로를 '언니'라고 부르는 회원들은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모임에 참석해야 할 때면 "당신은 지금 나라를 구하고 있는 것이니 꼭 반차를 내라"고 말한다고. 왼쪽부터 이고은 공동대표, 조은아 회원, 김신애 회원, 조성실 공동대표.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정치하는 엄마들'에는 남성 회원도 13명에 달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서로를 '언니'라고 부르는 회원들은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모임에 참석해야 할 때면 "당신은 지금 나라를 구하고 있는 것이니 꼭 반차를 내라"고 말한다고. 왼쪽부터 이고은 공동대표, 조은아 회원, 김신애 회원, 조성실 공동대표.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엄마와 정치, 가장 어울리는 두 단어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라는 플라톤의 경구처럼 오늘날의 한국 엄마들을 사로잡는 말도 없다. 정치인들을 움직이는 정치를 넘어서 아예 우리가 직접 정치를 할 수도 있다는 건강한 포부를 안고 발족한 엄마들의 모임도 그래서 탄생했다. 장하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인의 공동대표 중 한 명으로 있는 ‘정치하는 엄마들’이다. 장 전 의원이 일간지에 기고 중인 ‘엄마정치’라는 칼럼의 첫 회에서 ‘이제 우리 만납시다’라고 한 마지막 문장에 꽂혀 올 6월 발족한 권리회원 100여명, 페이스북 활동 회원 2,000여명의 엄마 모임이다.

본격 엄마정치를 표방하는 정치하는 엄마들은 특정 이슈를 위해 모인 엄마 중심의 시민단체나 일상적 정보공유를 기본으로 하는 맘카페와 달리 광범위한 정치적 의제들을 다룬다. 보육과 노동이라는 두 개의 큰 정책분과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혐오발언금지, 성평등교육, 탈핵 등 회원들의 자발적 발의로 이뤄진 소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창립총회 후 첫 활동이었던 ‘칼퇴근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 이어 특권학교 폐지 촛불 시민행동,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집단휴업 우려 기자회견, 식품알레르기 학생에 대한 대체식품 제공 의무화 및 관련 법개정 촉구 등의 게릴라식 이슈 대응 활동을 벌여왔다. 내년 지방선거는 어려워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선거에 후보를 내 엄마 정치인을 양성, 배출하는 것까지 회원간 암묵적 합의를 이룬 상태다.

“엄마야말로 정치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에요. 가장 좋은 정책개발자가 주부들이고요. 정치가 거대담론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정치야말로 일상을 바꾸는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엄마들이야말로 정치의 필요와 개선의 방법을 가장 잘 아는 주체죠.” 전업맘으로 두 아이를 키웠던 조성실(31) 공동대표는 “엄마들이 세력화, 조직화돼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안타까움과 갈증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독박육아의 고통이 남편과 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문제임을 절실히 느끼며 언젠가 일기장에 ‘정치하는 엄마들’이라는 문구를 적어놓은 적도 있었다. “정치는 늘 야망과 연관된 단어였고, 엄마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인식됐잖아요. 저 같은 갈증을 가진 엄마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사실에 놀라고 뭉클했어요.” 이들이 말하는 정치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장하나 전 의원의 글에서 적시됐듯 “우리가 모여 이야기하고, 서로 공감하고, 함께 분노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놓으면 그것이 정치이고 정치세력화”다.

'정치하는 엄마들'의 강미정 회원이 올 대선 기간 직접 그린 포스터. 5개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을 향해 엄마들의 요구를 외치고 있다. 정치하는 엄마들 제공
'정치하는 엄마들'의 강미정 회원이 올 대선 기간 직접 그린 포스터. 5개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을 향해 엄마들의 요구를 외치고 있다. 정치하는 엄마들 제공

영유아 자녀를 둔 엄마들이 많은 단체의 성격상 보육과 노동은 ‘보노보노’라는 구호를 낳을 정도로 중요한 핵심의제다. 일간지 기자로 10년간 일하다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경력을 단절한 이고은(36) 공동대표는 “좋은 보육기관에 아이를 맡기는 환경만으로는 엄마들이 원하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불가능하다”며 “독박육아와 경력단절의 모든 문제들이 노동시간이 너무 긴 데서 기인하는 만큼 노동시간 단축이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엄마들의 요구는 엄마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 자식, 내 남편만을 위한 치맛바람이 아니라 그간 소외되어 온, 광범위한 수혜자에게 봉사한다는 것이 엄마 정치의 진정한 힘이다. 칼퇴근법 촉구 기자회견에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참석해 “칼퇴근은 나의 문제다” 외친 것이 단적인 예다.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엄마, 아빠만 기쁜 것이 아니다. 조부모도, 삼촌도, 이모도 그 수혜를 입는다. 무한히 확장되는 외연의 힘.

“저희 구호가 ‘집단 모성이 사회를 바꾼다’예요. 우리가 말하는 모성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모성이 아니라, 사회적 모성입니다. 돌봄의 주체로서 겪었던 약자의 경험이 있다면, 엄마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연대할 수 있어요.” 조 대표는 “정치하는 엄마들이 6개월 만에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아이만 생각하지 않고, 사회라는 것에 대해 깊은 울림을 느끼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들의 요구가 정책적 성과로 결실을 맺는다 해도 현실에서 체감하려면 최소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국공립어린이집이 40%를 넘기게 될 때 내 아이는 이미 초등학생이다. 노동시간이 단축돼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게 될 때 내 아이는 엄마 손이 그다지 필요 없는 중학생일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 엄마들은 그럼에도 정치를 한다.

외국계 IT 기업에서 개발자로 일하다 육아 때문에 직업을 바꾼 조은아(45)씨는 이제 고3, 고1인 두 딸을 위해 정치하는 엄마가 됐다. “제가 27세에 결혼했는데, 큰 애가 8년 후면 제 나이가 돼요. 제가 1972년생인데, ‘82년생 김지영’이 저랑 똑같았어요. 99년생인 내 딸은 김지영이랑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아니라는 대답이 나오니까 너무 두렵더라고요. 바꿔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누구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절실해졌죠.”

연년생 남매를 키우는 김신애(35)씨는 “3세인 제 딸도 똑같은 세상에서 살 것 같아 엉엉 울었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이 살 세상은 바뀌어야죠. 엄마가 되어보니 세상이 참 불친절하고 차갑더라고요. 자꾸 맘충이라는데, 혹시 옆자리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지 않을까, 아이들 데리고 밖에 나가는 걸 자꾸 주저하게 돼요. 약자의 경험이 있는 엄마들이 뭉쳐서 정치를 하고, 그렇게 해서 세상이 좀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어요. 이런 세상을 아이들에게 줄 수는 없잖아요.”

대한민국 20대 국회의원의 평균연령은 55.5세, 남성 비율은 83%, 평균 재산은 41억원이다. 엄마들의 정치는 더 일찍 시작됐어야 했다. 엄마에게는 앞치마만큼이나, 아기띠만큼이나, 정치가 잘 어울린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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