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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만 100개 훌쩍 마니아들도 멀미 날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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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만 100개 훌쩍 마니아들도 멀미 날 지경

입력
2014.10.17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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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넘어선 공급… 광역단체장 공적 쌓기도 한몫

지역문화와 괴리감 부작용… 기획자·작가 중심행사로 흘러

2일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의 대표 영화제로 인정받고 있지만, 제 색깔을 찾지 못하는 다른 백화점식 영화제들은 서서히 위축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2일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의 대표 영화제로 인정받고 있지만, 제 색깔을 찾지 못하는 다른 백화점식 영화제들은 서서히 위축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은 가평군민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가평 주민밴드 경연대회'를 열고 자라섬에서 벗어나 가평읍 등지도 행사장으로 활용했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제공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은 가평군민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가평 주민밴드 경연대회'를 열고 자라섬에서 벗어나 가평읍 등지도 행사장으로 활용했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제공

20년 전인 1994년으로 돌아가 보자. ‘국제적’ 의미로 볼 때 한국은 문화의 불모지였다. 비엔날레도, 영화제도, 록페스티벌도 없었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가 첫 단추를 뀄다. 이듬해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막을 올렸다. 대중음악 축제는 그보다 조금 늦었다. 폭우로 처음이자 마지막 행사가 돼버린 트라이포트록페스티벌이 1999년 열렸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하기 직전에 일어난 일들이다.

광주비엔날레가 시작한 지 20년이 다 돼가는 지금, 대한민국은 문화 축제의 천국이 됐다. 올 한 해만 해도 7개의 대형 비엔날레가 열리고 100여개의 크고 작은 영화제가 열리며 수십 개의 대중음악 축제가 열린다. 마음만 먹는다면 1년 52주 내내 문화 축제를 즐길 수 있다. 미술계의 최신 경향을 알기 위해서, 국제영화제 수상작을 보기 위해서, 유명 록밴드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 굳이 해외에 나갈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됐다. 1994년의 한국과 2014년의 한국은 말 그대로 천양지차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축제들

비엔날레와 영화제의 태동은 1995년 6월 지방자치제의 본격적인 시행과 맞아 떨어진다. 대외적으로 지역 문화를 알리고 관광 산업을 부흥시킬 수 있는 대규모 축제를 열 필요성을 느낀 광역 단체장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지역성을 살린 축제 그리고 영화제였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적인 출범이 다른 지역에도 큰 자극을 줬다.

영화제는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유명 연예인들이 화려한 조명 속에서 레드카펫을 걷는 것만으로 큰 행사를 치르는 듯한 착각을 줄 수 있고 ‘국제’라는 수식어로 행사를 실제보다 더 커 보이게 만들 수 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이상 1997),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1999),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영화제(이상 2000), 광주국제영화제(2001),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고양국제어린이영화제(이상 2005),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2007) 등이 생겼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집계한 국제영화제 수는 15개, 국내영화제는 33개다. 48개 영화제는 대부분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행사로 민간이 여는 중소 규모 영화제를 합치면 100개가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제만큼은 아니지만 격년제 미술제인 비엔날레도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1997),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1999), 미디어시티서울(2000),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2001), 부산비엔날레(2002),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2004), 대구사진비엔날레(2006) 등이 문을 열었다. 짝수해인 올해 전국 각지에서 열린 대형 비엔날레만 7개다. 개최 시기를 서로 피하는 영화제와 달리 짝수해에 열리는 비엔날레는 개최 시기가 8~11월로 대부분 겹친다. ‘비엔날레 공화국’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대규모 영화제와 비엔날레는 운영에 있어서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 지원이 절대적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자체 기준에 따라 부산ㆍ부천ㆍ전주ㆍ여성ㆍ제천ㆍ청소년ㆍDMZ 등 7개 영화제에만 보조금을 지원한다. 문체부는 광주ㆍ부산ㆍ대구ㆍ금강ㆍ창원 비엔날레에 국가보조금 예산을 집행한다. 이들 행사는 대부분 지자체의 지원도 함께 받는다. 부산영화제는 120억원의 예산 중 지방비 60억원 국비 14억원의 지원을 받고 부천영화제와 전주영화제는 35억~37억원의 예산 중 지방비 21억~24억원, 국비 5억~6억원의 지원을 받는다. 비엔날레는 공공지원의 비율이 훨씬 높다. 광주비엔날레의 올해 예산 87억원 중 국고보조금과 지방비의 비율은 83%에 이른다.

대중음악 축제는 영화제나 미술제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지자체보다는 공연기획사나 대기업이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한다. 그래서 지자체의 개입도 덜하고 미술이나 영화보다 상업적 색채가 짙다. 국제적인 성격을 띤 대형 음악 축제가 열리기 시작한 건 2006년 인천 펜타포트락페스티벌이 포문을 열면서부터다.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2004), 서울재즈페스티벌, 월드DJ페스티벌(이상 2007), 지산밸리록페스티벌, 글로벌개더링 코리아(이상 2009), 슈퍼소닉, 울트라 코리아(이상 2012), 시티브레이크(2013) 등이 뒤를 이었다.

▦규모보다 내실을 다질 때

축제가 수요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는 건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전국적으로 열리는 지역 축제만 해도 1,000개가 넘는다. 대규모 문화 행사도 마찬가지다. 비엔날레도, 영화제도, 음악 축제도 모두 수요의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사라지는 축제만 해도 일일이 거론하기 벅찰 정도다. 정부나 지자체의 보조금, 대기업 후원금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건 많은 숫자만큼이나 문제다. 광역단체장들이 공적을 쌓기 위해 충분한 준비도 없이 무리하게 행사를 벌이고 정부에 과도한 지원금을 요구하거나 시 예산을 남용하는 것 역시 축제 만능주의의 부작용이다.

2004년 시작한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는 정부 지원이 끊기자 2011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된 상태고,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도 4회 행사를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CJ E&M과 갈라선 뒤 지산리조트가 자체적으로 연 지산월드락페스티벌은 지난해 막대한 손실만 남긴 채 사라졌다.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는 CJ문화재단이 지원을 중단하자 2012년 6회 행사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축제가 많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단지 수가 많다는 것 자체를 흠이라 할 순 없다. 운영이 잘 되고 관객의 만족도가 높다면 ‘많다’는 건 오히려 장점일 수 있다. 이용우 세계비엔날레협회 회장은 “세계 비엔날레 274개 중 한국과 중국, 일본 모두 10개 이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단순히 비엔날레 수가 많다고 하는 양적인 접근은 구태의연한 접근이고 국가보조금이나 시 예산이 대거 투입된 행사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지, 문화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이 있는지 질적 문제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찌감치 거품 현상을 겪었던 영화제는 기획자 중심에서 관객 중심으로 점점 바뀌고 있다. 광범위한 영화를 다루는 백화점식 영화제가 위축되는 사이 특화된 주제의 영화제가 늘고 있다. 특정 주제를 다루는 중소 규모의 영화제들도 관객 친화적인 방향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씨는 “영화제들이 계속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건 멀티플렉스와 상업영화 중심의 환경에서 보기 힘든 영화들을 찾아 다니는 관객들”이라며 “영화제 내부에선 잘 인식하고 있지 못하지만 부산영화제를 제외한 대다수 영화제의 구성과 패러다임은 점점 관객 중심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 축제가 지역 문화와 융합하지 못하고 지역의 문화적 인프라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되새길 만하다. 이준 삼성미술관 리움 부관장은 “국내 비엔날레가 전시기획자나 작가 중심의 행사로 편중돼 정작 중요한 문화적 인프라의 구축에 실패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비엔날레에 지역 주민들이 더 깊은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해당 지역의 미술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런 지적과 무관하지 않다. 일부 축제는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축제와 지역 문화 사이의 괴리감을 좁히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가장 성공적인 음악 축제로 꼽히는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 행사 지역 주민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가평주민밴드 경연대회’를 여는 것이 한 예다.

문화를 다루는 축제는 관광 위주의 지역 축제와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행사의 전문성과 지역 문화와의 융합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규모를 키우기보다 내실을 먼저 다져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용우 회장은 “비엔날레가 농산물축제처럼 지역에만 매몰되다 보면 문화가 폐쇄적이 되기 때문에 국제적이면서도 지역적인 함의를 가져야 한다”며 “비엔날레의 개수가 많다는 점을 문제 삼을 게 아니라 비엔날레가 지녀야 할 본질적인 가치, 즉 미술 담론이 교류하는 장이 되고 있는지, 질적인 부분에서도 국제적인 교류나 미술과 대중을 연결시키는 교육적인 측면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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