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안 읽는다고들 하니 다들 책 읽기의 유용함과 즐거움에 대해 소리 높여 외치지만, 사실 책 읽기는 노동, 그것도 무용한 쪽에 더 가까운 중노동이라 보는 편이 옳다. 더구나 책 읽기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어서 어디 가서 제 마음대로 비평을 늘어놓으며 자신만의 심미안을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선비질’이라 욕 안 먹으면 다행이다.
그래서 책 고르려는 이들에게 매체가 제공하는 각종 ‘리스트 업’은 참고할 만한 정보다. 연말을 맞아 여러 매체들이 특집 형식으로 올해의 책, 저자, 출판사들에 대한 정보를 쏟아냈다. 해서 58회 한국출판문화상 심사를 위해 모인 심사위원들에게 부탁했다. 여러 매체에서 쏟아낸 여러 리스트에 단 한 차례도 오르지 않은, 아까운 책을 딱 1권씩만 뽑아달라고. 굳이 이름 붙이자면 이런저런 이유로 책 깨나 읽는다는, 이른바 책쟁이 7인이 꼽는 ‘2017 아차상’이다. 순위를 매길 것도 아니니 심사위원 이름 기준 가나다 순으로 소개한다.
전체를 보는 방법
존 밀러 지음ㆍ정형채 등 옮김
에이도스 발행ㆍ300쪽ㆍ2만원
인문학자 김경집은 ‘나비 날개 짓에 폭풍이 일어난다’는 말로 널리 알려진 복잡계 이론을 설명한 미국 카네기멜론대 존 밀러 교수의 ‘전체를 보는 방법’를 뽑았다. 주식시장의 붕괴, 금융위기, 아랍의 봄 같은 급격한 사회 변동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복잡계 이론으로 설명해나간다. 김경집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 너머의 전체를 보는 이 책의 시각은 특히 거시적 안목과 연계능력이 결여된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라고 말했다.
초록 토끼를 만났다
송찬호 지음ㆍ안경미 그림
문학동네 발행ㆍ88쪽ㆍ1만500원
아동문학 평론가 김지은은 송찬호 작가의 동시집 ‘초록 토끼를 만났다’를 골랐다. 동시의 경계를 시까지 넓혔다는 평을 듣는 송 작가의 동시 작품 46편을, 볼로냐 아동도서전 수상작가인 안경미의 그림과 함께 실었다. 김지은은 “보통 동시라 하면 어릴 적 교과서에서 낱개의 작품들만 몇 개 읽은 뒤 멀어져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전 작품을 일관되게 읽어보고 한 작가의 작품 세계 전체를 한번쯤 느껴본다면 전혀 다른 느낌이 들 것”이라면서 “그럴 경우 가장 추천할만한 올해의 동시집”이라고 말했다.
내가 알아야 민주주의다
박승옥 지음
한티재 발행ㆍ220쪽ㆍ1만원
코리아텍 대우교수 백승종은 사회운동가 박승옥의 ‘내가 알아야 민주주의다’를 지목했다. 2016~2017년 지형에서라면 무슨 얘기를 하건 촛불과 탄핵을 빼놓을 수 없다. 박승옥은 단호한 목소리로 민주주의란 결국 주권자인 인민의 자치일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하면서 주권자 스스로 자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민주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간접민주주의란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백승종은 “시민이 나라를 직접 통치하는 직접민주주의가 왜 필요한지, 우리가 민주적이라 믿는 간접 민주주의 함정이 무엇인지를 쉽고도 명확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박재용 지음
MID 발행ㆍ324쪽ㆍ1만5,000원
서울시립과학관장 이정모는 과학저술가 박재용의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를 골랐다. 이기적 유전자란 표현은 강렬하게 진화의 속성을 잘 각인시켰으나, 너무 강렬해서 이기적 속성을 권장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단점이 있다. 공진화는 개체의 진화란 전체의 진화와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개념이다. 우리는 홀로가 아니다. 진화는 ‘함께 하는 것’이다. 이정모는 “다양한 생물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 관계가 어떻게 현재의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데에 주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밝혀준다”고 말했다.
그것은 참호전이었다 1914~1918
자크 타르디 지음ㆍ권지현 옮김
서해문집 발행ㆍ176쪽ㆍ1만8,500원
출판평론가 장은수는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다룬 프랑스의 그래픽노블 작가 자크 타르디 ‘그것은 참호전이었다 1914~1918’을 꼽았다. 위기가 고조되면 누구나 용감한 척, 멋진 척 경쟁적으로 ‘전쟁불사’를 외쳐 댄다. 허나 전쟁의 맨 얼굴이란 들쥐와 진흙, 추위, 비명소리로 범벅된 개죽음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장은수는 “한번 손에 들었다 도저히 내려놓지 못한 책으로, 읽는 내내 어떠한 명예도 없이 스러지는 무참한 병사들 때문에 울었다”면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반드시 평화주의자가 된다”고 말했다.
사랑의 급진성
스레츠코 호르바트 지음ㆍ변진경 옮김
오월의봄 발행ㆍ176쪽ㆍ1만3,000원
서평가 이현우는 스레츠코 호르바트의 ‘사랑의 급진성’을 꺼내 들었다. 슬라보예 지젝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제목처럼, 지젝과 공동작업을 하기도 한 동유럽 출신 지식인이다. 현대사회는 온갖 곳에서 에로스와 쾌락이 넘쳐나는 것처럼 보인다. 호르바트가 보기에 이는 진정한 사랑의 부재를 은폐하기 위한 수단이다. 진짜 사랑을 할 때 혁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현우는 “사랑과 혁명을 다시 생각하기, 사랑을 재발명하기, 그런 게 필요하다고 믿는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어필하는 책이 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트리스탄 굴리 지음ㆍ김지원 옮김
이케이북 발행ㆍ504쪽ㆍ1만9,800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한기호는 트리스탄 굴리의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을 내밀었다. 굴리의 직업은 ‘탐험가’. 요즘 그런 직업이 있을까 싶지만 굴리는 대륙, 산, 오지 등의 여행을 기획하고 안내한다. 탐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땅, 하늘, 바다, 동ㆍ식물 등 온갖 자연이 뿜어내는 ‘신호’를 정확히 읽어내는 것이다. 그간 배우고 익혀왔던 자신만의 비법을 녹여냈다. 아스팔트 도시인에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싶을 텐데, 땅에 난 풀을 보고 그 아래 묻힌 보석을 추정해볼 수 있는 정보도 있으니 귀가 솔깃해질 만하다. 한기호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꿈꾸는 시대에 가정상비약처럼 갖출 필요가 있는 책”이라 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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