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옥자’를 본 후 일부 관객에게서 “채식주의 영화가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소리이지만, 엄연히 따지자면 ‘옥자’는 육식을 반대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주인공인 슈퍼돼지 옥자가 가공식품으로 재탄생될 위기에 처하기 전, 옥자와 미자는 강원도 산골에 살아간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인물로 표현되는 이들 또한 낚시를 하고 삼계탕을 먹는다. 봉준호 감독은 육식을 하는 이들의 모습을 ‘평화’롭게 담아냈다. 악당으로 등장하는 글로벌 그룹 미란도와 이들이 다른 게 있다면, 옥자와 미자는 자연과 ‘상생’할 줄 안다는 데 있다. 그들은 먹은 만큼 돌려준다. 예를 들면 미자는 먹을 만큼만 음식을 구하고, 옥자는 배설물을 통해 새로운 식량(?)을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극중 등장하는 채식주의자 실버(데본 보스틱 분)는 육식을 하지 못하는 탓에 당장 쓰러질 듯한 모습을 영화 내내 보여준다. 안쓰러움을 자아내는 그의 모습을 보면 이 영화가 채식‘만’을 주장한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육식을 비판하는 영화는 아니다. 육식에 대한 죄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찍은 것도 아니다. 육식과 채식은 개인의 선택이다. 동물도 육식동물이 있지 않나. 인간은 잡식동물이다. 그게 죄악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라고 이야기 했다.
대신 봉준호 감독은 오늘날의 대량 생산 되는 시스템을 우려했다. 그는 “지금은 육식이 놀라운 형태까지 왔다. 동물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과거에는 자연의 흐름에 벗어나지 않도록 필요한 만큼 동네에서 잡아먹었다. 대량생산 시스템은 최근의 일이다. 인류에 식량이 부족해서 만든 것이 아니다. 내가 직접 가본 콜로라도 도살장은 엄청난 시스템이더라. 스패닉계 사람들이 작업하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해 오로지 이윤을 올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비판하며 “이건 육식의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다. 이제 우리는 최신식의 홀로코스트 상황을 목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옥자다. 옥자는 대중적인 애완동물인 강아지나 고양이가 아니라 돼지다. 게다가 6톤가량의 몸집이 큰 슈퍼돼지다. 유전자 조작으로 옥자의 몸집이 커졌다는 설정이다.
봉준호 감독은 “옥자의 덩치가 크다. ‘크다’라는 것은 먹을거리의 상품성과 관련이 있다. 원래부터 컸던 게 아니라 누가 일부러 누가 커지게끔 만든 것이다. 그래서 옥자는 ‘제주도 똥돼지’와 달리 상품 ‘슈퍼돼지’인 것이다. 마치 아이폰7처럼 말이다. ‘슈퍼토마토’ ‘슈퍼옥수수’처럼 ‘슈퍼’가 붙으면 제품으로서 주목을 받는다”라며 “대량생산의 흐름이 동물에게까지 들어온 것이다. 핸드폰을 조립하듯이, 자동기계에 동물을 집어넣고 이미 완성된 유기체를 분해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주제로는 우리가 다 같이 사는 세상이 자본주의의 극한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라고 확실히 말한 후 “현재 GM(유전자 조작) 연어가 미국 FDA 허가를 받아서 시판을 앞두고 있다. 유전자 돼지를 연구하는 국내팀도 있다. 현실로 닥쳐온 일이다”라며 ‘옥자’가 상상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며 걱정스러운 마음을 내비쳤다.
기존에도 봉준호 감독은 주한미군의 불법 방류에 의해 만들어진 ‘괴물’이나 자본주의의 이기심을 담은 ‘설국열차’ 등을 통해 비판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봉준호 감독은 “내가 NGO는 아니다. 이 시점에 대중에게 화두를 던져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일부러 정치적 메시지를 찾은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바람에 흩날리는 충동으로 소재를 잡고 가다가 ‘이 스토리에 이런 의미가 있구나’라고 나도 깨달으면서 영화화 한다”라며 “사회적인 풍자가 있지만 이것도 하나의 재미가 아닌가. 특히 우리 일상생활과 연결되면 더 빨려 들어가서 보게 된다. 메시지만 원한다면 블로그나 책을 쓰면 된다”고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특히 ‘옥자’ 속 동물에 대한 태도는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와 비슷하기도 하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윤주(이성재 분)는 개를 죽이기만 하고, 경비(변희봉 분)는 죽어 있는 개를 먹는다. 부랑자(김뢰하 분)는 직접 잡아서 먹으려고 한다. 이들을 물리치고 개를 구하는 것이 현남(배두나 분)이다. ‘옥자’에서는 돼지 옥자를 상품화하려는 낸시(틸다 스윈튼 분)와 그를 구하려는 미자(안서현 분)로 나뉜다. 동물보호를 목적으로 어쩔 수 없이 옥자를 이용하는 ALF 단체도 있다.
봉준호 감독은 “옥자를 식품으로 보는 사람과 가족으로 보는 사람들이 나중에 격돌한다. 실생활에서 우리는 미자이기도 하고 낸시이기도 하다. 애완견을 안고 마트에 가서 삼겹살을 사지 않나. 우리는 편하게 둘을 분리해서 생각한다. ‘얘는 내 가족이고, 얘는 내 밥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본질은 같다. 나는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합쳐놓았다”고 이야기 했다.
처음 보는 이야기지만 ‘옥자’의 태도는 보편적이며 봉준호 감독의 이전 작품들보다 상대적으로 명쾌하다. 봉준호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명쾌하고 싶었다. ‘옥자’는 가족이 도살장에 가는 스토리인데, 이 주제가 해외에서도 다뤄진 적이 없다. 만약 내가 6ㆍ25 전쟁 등을 다뤘다면 안개 속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다음에 다른 누가 이 주제로 영화를 한다면 변주시켜 더 모호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나는 1번 타자로서 명쾌한 스윙을 날리고 싶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주희 기자 lee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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