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이후 언제든 물량 조정’
이례적 수정계약 권한 포함
양산계약 체결할 방사청 곤혹
개발한 방산업체도 전전긍긍
이달 양산계약을 앞둔 1조2,000억원 규모의 국산 중거리지대공미사일(M-SAM) 천궁이 전력화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 지시로 ‘조건부 계약’이라는 독소조항이 들어간 탓이다.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17일 송 장관 주재로 열린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직후 “철매-II(천궁 사업의 프로젝트 명) 성능개량체계의 양산을 추진하기로 심의ㆍ의결했다”고 밝혔다. 송 장관이 앞서 10월 천궁 사업 중단을 지시하는 무리수로 역풍을 맞았던 터라, 발표내용만 놓고 보면 천궁 전력화가 비로소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이날 의결에는 단서조항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천궁 양산 이후 언제든 물량을 조정하는 수정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무기획득은 ‘소요제기→검토ㆍ평가→계약→양산’ 순으로 진행된다. 계약을 맺고 양산을 하다가 예산 감축 등 문제가 생기면 계약내용을 바꿀 수는 있지만, 초도 계약을 체결하기도 전에 훗날 수정계약 권한까지 보장하는 건 전례가 없다. 더구나 천궁 7개 포대에 200여 발이 필요하다는 합참의 소요 또한 그대로인 상태다. 군 관계자는 “개발이 끝난 무기를 이제 막 생산하면서 물량을 줄일 권한부터 보장한 건 일반적인 방산계약 체결 관행과 다르다”며 “방추위 의결과정에서 송 장관의 입김이 상당부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송 장관이 천궁 대신 SM-3 해외도입을 추진하기 위해 놓은 사전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당장 양산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방사청은 곤혹스런 처지다. 통상적인 무기획득절차를 무시한 데다, 개발업체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방식이어서 향후 계약 체결 과정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발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쏟은 방산업체들도 전전긍긍하며 국방부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천궁은 고도 20㎞ 이하에서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는 무기로, 지난 9년간 국내 17개 업체가 1,400억여원을 투입해 개발했다. 한미 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장거리지대공미사일(L-SAM), 패트리엇-천궁으로 구성된 4중 방어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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