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는 ‘어리석고 아둔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바보’와 비슷한 말(반편, 반편이, 칠푼이, 팔푼이, 팔불출)이 대부분 ‘보통사람에 비해 모자람’을 나타내는 걸 볼 때, ‘바보’ 또한 그러한 뜻의 말에서 비롯한 것으로 추정할 수는 있다. 그런데 ‘바보’는 그와 비슷한 뜻의 다른 말에 비해 조롱과 비난의 정도가 약하다. 이는 ‘바보’란 낱말이 쓰인 맥락의 영향 때문인 듯하다.
7080세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영화, ‘바보들의 행진’과 ‘바보 선언’. 풍자와 자조가 섞인 블랙 코미디의 맥락 안에서 ‘바보’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영화가 그리는 세상이 온전한 정신으로는 제대로 살 수 없는 세상임을 알기에, 사람들은 영화 제목의 ‘바보’를 조롱과 비난의 뜻으로 읽지 않았던 것이다. ‘바보’는 ‘그’이면서 ‘나’이기도 했으니까.
조롱과 비난에서 벗어난 ‘바보’는 ‘우공(愚公)’을 달리 부르는 말이기도 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고사의 ‘우공’은 김수환과 노무현으로 다시 태어났고, 우리는 그들을 스스럼없이 ‘바보’라 불렀다. 바보 김수환, 바보 노무현.
‘바보’란 말이 쓰이는 맥락이 다양해지자, ‘바보’가 포함된 말에서의 연상도 다채로워졌다. ‘바보상자’와 ‘글바보’에는 어리석고 아둔해지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느껴지지만, ‘아들바보’와 ‘딸바보’에는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넘치는 사랑이 느껴진다. ‘글바보’와 다른 느낌의 말, ‘영화 바보’와 ‘책 바보’는 어떤가. ‘그것밖에 모르는 것’이 흉이 되지 않는 세상임을 이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쓰이는 맥락이 달라지면 말의 느낌이 달라진다. 느낌이 달라지면 그 뜻도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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