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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히든카드’는 쥔 채… 경제전쟁 속도조절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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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히든카드’는 쥔 채… 경제전쟁 속도조절 나서

입력
2019.08.08 18:56
수정
2019.08.08 22:1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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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규제 제품 1건 수출 허가 내줘… 정부는 ‘화이트리스트서 日 제외’ 유보 

 양국 ‘강 대 강’ 다소 숨통… 일본, 28일 화이트리스트 제외 시행이 고비 

이낙연 국무총리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반도체ㆍ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 품목의 대(對)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한 이후 처음으로 관련 제품 1건(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허가를 내줬다. 우리 정부도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대응하기 위해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일단 유보하기로 했다. 한 치의 물러섬 없이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던 한국과 일본 정부가 표면적으로는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을 앞두고 양국이 국제여론을 의식해 전략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다만 일본 정부가 추가 규제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둔 만큼 한일 경제 전쟁은 언제든 확전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8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본 경제산업성이 포토레지스트의 한국 수출을 승인한 것과 관련해 “엄정한 심사를 거쳐 안보상 우려가 없는 거래임을 확인하고 수출허가를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와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반도체ㆍ디스플레이 관련 3개 부품 소재의 수출 규제를 내린 지 34일 만이다. 일본 정부는 해당 품목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우려가 크다는 이유를 들며, 이들 품목의 수출 규제를 지난달 4일부터 강화했었다. 당초 신청에서 허가까지 3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비교적 빠르게 허가가 나온 셈이다. 앞서 7일에도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하면서도 당초 예상과 달리 추가 규제 품목을 지정하지는 않았다.

한국을 향한 일본의 공세가 진정 기미를 보이자 우리 정부도 신중한 대처에 나섰다. 이날 우리 정부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본 수출규제 관계장관회의와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열어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전략물자수출입고시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최종 결정을 뒤로 미뤘다. 수출우대 심사국인 ‘가’ 지역에 속했던 일본을 신설한 ‘다’ 지역에 넣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고, 당초 확정된 개정안을 회의 후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갑자기 이를 보류한 것이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전략물자 수출에 있어 일본을 신설한 ‘다’ 지역에 넣겠다는 방침은 변함이 없다”며 “다만 ‘다’ 지역에 어떤 규제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필요해 추후 확정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청와대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하며 “일본이 이 사태를 어디까지 끌고 갈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며 다소 유연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의 수출 규제로 시작된 한일 경제전쟁이 본격적인 소강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긴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위원은 “일본 정부가 포토레지스트 수출을 비교적 이른 시기에 허가해 준 건 한국을 향한 수출 규제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때문이 아니라, 안전보장을 위한 조치였다는 걸 강조하려는 의도”라며 “언제든 추가 규제를 내놓을 수 있는 만큼 안심하긴 이르다”고 지적했다.

실제 스가 관방장관은 “포토레지스트 수출 허가는 정당한 거래에는 자의적인 규제를 운용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며 일본의 수출 품목 규제가 한국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한국 정부가 지난달 WTO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국제무대에서 일본 측 조치의 부당함을 강조하자, 국제사회의 우려를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부적절한 사안이 나오면 철저한 재발방지책을 강구하겠다”는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장관의 발언만 봐도 일본 정부 내 기류가 바뀌었다고 보긴 힘들다. 당장 오는 28일부터 전략물자 1,110여개가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영향권에 들어서는 점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부분이다.

우리 정부의 결정에 대해 최성호 경기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한일 산업관계가 밀접하게 맞물려 있어 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경우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이미 예고한 경제 조치를 단기간 내에 철회하긴 어렵기 때문에 양 국이 경제 규제 속도조절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WTO 제소를 앞둔 전략적 판단도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고준성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별다른 이유 없이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할 경우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경제보복이며, 자유무역질서를 위반하는 행위라고 국제사회에 말해 온 정부 주장이 힘을 잃게 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WTO 제소를 검토하는 마당에 일본만 화이트리스트에서 뺄 경우 승소할 확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포토레지스트 수출을 허가했지만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일본산 소재 국산화와 대체 공급선 확보 속도를 늦추지 않을 방침이다. 포토레지스트를 일본에서 들여오는 삼성전자 관계자는 “수출 허가 한 건으로 나머지 소재가 안정적으로 공급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현재 진행 중인 소재 국산화와 수입선 다변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민재용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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