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로 검찰의 사법농단 의혹 관련 수사도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제징용 소송 재판 지연 사건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와 개입 의혹의 핵심적인 사안이기 때문이다.
30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관련한 판결 내용을 검토해 향후 수사에 참고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검찰은 2013년 12월과 2014년 10월 각각 차한성ㆍ박병대 전 대법관 등이 박근혜 정부 시절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등 정부 인사를 수 차례 만나 강제징용 소송의 재상고심 진행을 미루는 방안 등을 논의한 정황을 포착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미 재판 거래에 연루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해선 구속영장을 발부 받았다. 검찰은 임 전 차장 영장청구서에 27페이지에 걸쳐 △청와대에서 전원합의체로 회부해 시간을 끌어달라는 요구사항이 있다는 점 △양승태 대법원장이 관련한 의견서를 외교부가 추진하겠다고 답한 점 △이후 재외공관 법관 파견이 추진된 과정 등 강제징용 재판을 놓고 청와대 거래를 한 정황 등을 상세히 적기도 했다.
이 재판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5년 소송이 시작돼 1ㆍ2심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2012년 대법원은 원고 승소 취지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듬해 서울고법은 “피해자들에 1억원을 배상하라”고 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청와대 개입으로 이후 대법원 재판이 지연됐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그리고 한일관계를 앞세운 박근혜 정부와 함께 당시 대법원이 재판을 늦추거나, 대법원 판결의 결론을 뒤집는 방안을 논의해온 정황이 여러 문건과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특히 이날 판결 내용이 6년 전 대법원 논거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수년 간의 재판 지연 배경에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사법부간의 거래 의혹은 더 짙어지게 됐다. 구속된 임 전 차장을 상대로 재판 거래를 한 의혹 등을 조사 중인 검찰은 조만간 의혹에 연루된 전직 대법관 등도 소환할 계획이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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