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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영화계 대부’ 레이먼드 초우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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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영화계 대부’ 레이먼드 초우 별세

입력
2018.11.04 14:44
수정
2018.11.04 19: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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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하베스트 설립, 리샤오룽ㆍ청룽 등 발굴

영화 600여편 제작… 홍콩영화 황금기 이끌어

‘홍콩 영화계의 대부’로 불리는 레이먼드 초우 골든 하베스트 설립자가 2011년 3월 21일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필름어워즈(AFA)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받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자료사진
‘홍콩 영화계의 대부’로 불리는 레이먼드 초우 골든 하베스트 설립자가 2011년 3월 21일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필름어워즈(AFA)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받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세계적인 액션 배우 리샤오룽(李小龍 ㆍ이소룡)과 청룽(成龍ㆍ성룡)을 발굴했던 ‘홍콩 영화계의 대부’ 레이먼드 초우(鄒文懷ㆍ추문회) 골든하베스트 설립자가 2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1927년 홍콩에서 태어난 초우는 상하이 성요한대학을 졸업한 뒤, 1957년부터 당시 홍콩 영화 제작을 독점하던 쇼브라더스에서 일하며 최고 책임자에까지 올랐다. 그리고는 1970년 독립해 골든하베스트를 설립, 코미디와 액션, 무협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 600여편을 제작해 홍콩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특히 1971년 ‘당산대형’을 시작으로, 리샤오룽과 함께 ‘맹룡과강’, ‘정무문’, ‘용쟁호투’ 등을 만들어 홍콩 영화 흥행기록을 잇따라 경신했다. 1973년 리샤오룽이 33세의 나이로 돌연사하며 골든하베스트가 존폐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1980년 ‘취권’으로 스타가 된 청룽을 데려와 ‘사제출마’와 ‘캐논볼’, ‘프로젝트 A’, ‘폴리스 스토리’ 등 초대형 히트작을 내놓아 제 2의 전성기를 열었다. 1994년 골든하베스트는 홍콩 증시에도 상장됐다.

하지만 1997년 홍콩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고, 아시아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홍콩 영화계가 활력을 잃게 되자 골든하베스트와 고인도 과거의 명성을 되찾지 못했다. 2007년 골든하베스트 지분 전체를 중국 부호 우커보(伍克波)에게 양도한 뒤 은퇴했고, 2011년에는 아시아필름어워즈(AFA)에서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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