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아이디어면 누구나 스타
10억대 매출 작가도 수십명 나와
유료 전문강의에도 북적북적
종잡을 수 없는 소비자 취향
카카오톡 까다로운 심사 ‘장벽’
“자기만의 색깔로 감정 표현을”
5년 차 직장인 최모(32)씨는 퇴근 후면 드로잉 태블릿(전자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도구)을 붙잡고 씨름한다. 평소 캐릭터를 좋아했던 그는 지난 여름 모바일 메신저 업체들이 일반인들의 이모티콘(메신저와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낼 때 사용하는 그림말)을 유통시켜 주는 것을 알게 된 뒤 무릎을 쳤다. 디자인 전공을 하지도 않고, 그림이라곤 혼자 메모지에 끄적대던 게 전부였지만 그는 난생 처음 컴퓨터 프로그램 포토샵을 홀로 배웠고 10만원대 보급형 드로잉 태블릿까지 구매하며 이모티콘 작가 데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잘나가는 이모티콘 작가의 책도 사 읽었다. 최씨는 “퇴근 후 매일 3~4시간씩 2주 정도 작업할 정도로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3번 응모해 모두 낙방했다”라며 “10억원 넘게 버는 작가들도 탄생하는 만큼 한번 이모티콘이 대박 나면 큰 수익을 안겨줄 수 있어 승인될 때까지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과서 귀퉁이에 그렸던 낙서가 모바일 메신저에서 살아 움직인다. 그림들이 메신저 대화창 위를 많이 돌아다닐수록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증가한다. ‘작가’ 타이틀은 덤이다. 이모티콘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이모티콘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29일 개최된 카카오의 행사 ‘크리에이터스데이 2018’ 중 이모티콘 작가 강연에는 청중 100명 모집에 무려 1만명이 넘는 작가 지망생들이 지원했다. 올해 초 처음으로 이모티콘 기획을 돕기 위해 개설된 전문 강좌(패스트캠퍼스)는 5회 연속 만석이며, 이모티콘 작가가 쓴 관련 저서는 크라우드 펀딩 모금액의 12배를 넘기며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월간 이모티콘 발송량이 2012년 4억건(카카오톡 기준)에서 올해 22억건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누적 구매자수는 7배(280만→2,000만명) 가량 증가했다. 10억원(거래액 기준)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이모티콘 작가들이 수십 명씩 탄생하며 새로운 수익원으로 인식되는 이 시장에 수만 명 가량 도전하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카카오 행사에 참여한 5년 차 프리랜서 디자이너 양원진(37)씨는 “다양한 산업 디자인을 하고 있는데 최근 이모티콘 시장이 상당히 커진 것을 깨닫고 이번 강연에 오게 됐다”라며 “기획 등 실무적인 기술을 성공한 작가로부터 배워 이모티콘 시장에서 수익 창출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잡(Two Job)의 희망으로
처음으로 활성화된 시장에 진입하려는 작가 지망생들이 연구를 거듭하며 자신만의 이모티콘 창출에 몰두하고 있다. 연구원 홍민환(35)씨는 카카오 이모티콘 스튜디오에 각기 다른 콘셉트로 무려 열한 번 도전했다. 어린 시절부터 만화 슬램덩크 장면을 종이에 따라 그릴 정도였던 그는 최근 이모티콘 시장을 알게 된 뒤 새벽 시간을 할애해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좋아하는 만화(마린블루스)의 캐릭터를 응용한 것부터 아내를 형상화하기도 하고, 학생과 직장인을 겨냥한 이모티콘 개발 등 다양한 형태로 카카오의 심사 장벽을 뚫기 위해 노력 중이다. 홍씨는 “콘셉트를 제공하면 그림을 그려주는 외주 업체도 알아보고, 손 그림 특강을 듣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라며 “블로그 포스팅 댓글과 업체의 피드백 등을 참고하면서 미진한 점을 고쳐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보통신기기와 소프트웨어 사용이 대중화되면서 일반인도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대라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게 이 시장의 매력”이라고 전했다.
최근에는 디자인 관련 경험이 전혀 없는 이들을 위한 전문 강의까지 성행하고 있다. 올해 초 국내 최초 이모티콘 강좌를 오픈한 패스트캠퍼스의 유료 강의(6주 기준 55만원)는 지금까지 100명이 넘는 수강생이 다녀갔다. 인기 이모티콘 작가들이 기획부터 그림 그리기까지 전 과정에 대한 노하우를 공유하는 자리다. 패스트캠퍼스 관계자는 “성인 대상 강의인데도 중ㆍ고생들이 문의해올 만큼 연령과 배경을 초월해 관심도가 높다”라며 “현직 디자인 종사자들이 새로운 수입 창출을 원하는 경우가 많지만 전공이 전혀 다른 분들이나 50대 전업주부도 수강할 정도로 재능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도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이디어 싸움이 치열해 수강생들끼리도 자기 작품을 잘 공개하지 않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카카오에 따르면 구글 플레이 스토어 등 카카오톡 앱을 유통하는 앱스토어가 전체 이모티콘 매출액의 30%를 가져가고 나머지를 카카오와 작가가 나눠 갖는다. 작가와 디자인 업체 등에 따라 배분 비율이 조금씩 다르지만 통상 전체 매출의 35% 이상을 작가가 가져가고 있다.
◇높은 시장의 장벽...소비자 연구는 필수
종잡을 수 없는 소비자들의 취향과 까다로운 심사 기준은 이모티콘 작가 지망생들을 난감하게 만드는 요소다. 모바일 메신저 라인과 스티팝 등 일부 오픈 플랫폼들은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면 누구나 이모티콘을 유통할 수 있게 설계돼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카카오톡은 반드시 심사를 거쳐 승인되는 까다로운 방식으로 이모티콘 장벽이 높다. 카카오에 따르면 카카오 이모티콘을 담당하는 부서의 직원 40여명 중에서 무작위로 10여명을 선발해 이모티콘 심사에 나선다. 카카오 관계자는 “승인 기준은 비공개가 원칙으로 피드백을 요청해도 답변이 어렵다”라며 “하지만 심사에 편견을 두지 않기 위해 심사할 직원들을 주기적으로 교체하면서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카카오는 월평균 2,000~3,000건의 출품작 중 100건 안팎이 승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성장세를 감안하면 현재 승인 비율은 이보다 더 낮을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기준이 무색할 정도로 다양한 이모티콘이 성공하는 만큼 결국 소비자의 욕구를 얼마나 잘 분석해 자기만의 색깔로 소화하느냐가 성공 비결이라고 현직 작가들은 조언한다. 실제 무성의한 그림체에도 센스 있는 감정표현으로 판매 최상위권에 올라 있는 이모티콘이 상당수다. 카카오 행사에서 강연한 펀피의 백윤화 대표는 “이모티콘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캐릭터를 파는 게 아니라 대화 속에서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를 만든다고 생각해야 한다”라며 “어떤 이야기를 전할지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창조해 스토리텔링 해야 실패를 줄일 수 있다”라고 전했다. 이모티콘 ‘오니기리’를 만든 곽정일 작가는 “TV, 온라인 방송 등을 비롯해 친구와의 메신저 대화까지 재미있는 소재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메모한 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김수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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