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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는 없다] 깨끗한 방, 평온한 모습... 얼굴만 검게 변색된 여성의 시신

입력
2018.12.04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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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관악 10대 모텔 살인사건 

방은, 깨끗했다. 어제 하루 분명 누군가 다녀갔는데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헤어드라이어, 리모컨 등 비품은 놓여진 그대로 모두 가지런했다. 화장대 위 수건조차 반듯하게 접혀 있는 상태. 깔끔하긴 욕실 안도 마찬가지였다. 물기 하나 없이 바짝 말라 있는 바닥에서는 머리카락 한 올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곳에 유난히 앳돼 보이는 여성이 있었다. 빨간 스웨터 안에 입은 셔츠 단추를 옷깃까지 채운 여성은 천장을 향한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유난히 바빴던 하루 일을 마치고 막 집에 들어와 눈을 감고 잠시나마 망중한을 즐기려는 듯, 평온한 얼굴. 하지만 여성의 숨은 멈춰 있었다.

2015년 3월 26일 낮 12시30분. 서울 관악경찰서로 112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봉천동의 한 모텔 208호 객실에서 10대 추정 여성이 숨져 있다는 내용. 숨진 여성 몸에는 외상이 보이지 않았고, 방 안에서도 다툰 흔적 같은 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더해졌다.

“목 밑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옅은 액흔(목 졸린 흔적)이 보였어요. 특이한 건 얼굴만 검게 변색이 돼 있다는 거에요. 보통 이런 사건의 경우 얼굴이 검게 변해 있으면 약물중독을 의심해야 봐야 하거든요. 자살일 수도 있지만, 타살 가능성이 높겠다 싶었습니다.” 당직 근무를 서다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했던 강력3팀(당시 1팀) 임희섭 경위는 그날 객실 안 모습을 지금도 그렇게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사인은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액사 및 비구폐색성 질식사. 외부에서 가해진 힘에 코와 입이 동시에 막혀 사망에 이르렀다는 소견, 살인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는 누구일까? 그리고 그의 입과 코를 누가, 왜 막았을까? 수사가 필요했다.

모텔 폐쇄회로(CC)TV에는 그날 오전 6시43분쯤 30대로 보이는 남성과 10대 추정 여성이 함께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로부터 1시간30분 정도 지난 8시10분, 남성이 혼자 모텔을 나섰다. 감식반이 전달한 여성의 사망 추정 시간과 일치했다. ‘둘이 들어갔는데 한 사람은 나왔고, 한 사람은 그 곳에 남아 죽은 채 발견됐다.’ 키 175㎝ 정도에 빵모자를 쓰고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회색 재킷을 입은 남자. 그를 찾아내야 했다. 형사과장 주재로 긴급 회의가 열렸고, 강력계 형사 전원(30명)을 투입해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남성의 행적은 얼마 못 가 끊겼다. 모텔에서 나온 그는 170m 정도 거리를 걸어 남부순환로 인근 대로변에 이르자 곧바로 택시를 탔다. CCTV 화질은 택시 번호판을 담을 만큼 선명하지 못했다. 택시는 유유히 차량 속으로 사라져갔다. CCTV를 통한 추적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사건이 일어난 모텔 방에는 휴대폰, 신분증 등 사망한 여성이 누구인지를 알려줄 단서가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영장을 받아 남성이 타고 간 택시 위치확인정보시스템(GPS)을 추적하는 방법이 있지만 검찰과 법원을 거치는 등 절차를 생각하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빨라야 2~3일, 길면 일주일까지 각오해야 했다. “살인 사건은 특히 2~3일 안에 못 잡으면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맘먹고 도망 가거나 숨어버릴 수 있고, 심한 경우 심리적인 압박 때문에 용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으니깐요. 자칫하다 미제 사건이 될 수도 있겠다 걱정부터 들더군요.” 임 경위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작권 한국일보] 관악-10대-모텔-살인사건/ 강준구 기자/2018-12-03(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관악-10대-모텔-살인사건/ 강준구 기자/2018-12-03(한국일보)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출동 명령을 받고 현장으로 뛰어가던 때, 그보다 먼저 신고가 들어오던 순간까지 기억을 돌려 차근차근 복기해 나갔다. ‘방문을 열고 현장을 확인 한 뒤 112 신고자 진술을 들었고, 그 다음에 뭐를 했더라. 잠깐, 근데 신고를 왜 모텔 주인이 하지 않았던 거지?’ 숙박업소에서 보통 사망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방 청소를 하려고 방문을 여는 업소 직원이 시신을 처음 발견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직접 하거나 또는 주인에게 얘기를 해 경찰에 신고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 112에 신고 전화를 한 사람은 모텔과 전혀 관련이 없는 제3자, 박모(당시 28)씨였다.

“죽은 애는 한○○이라고 하는데요. 저랑은 그냥 아는 오빠 동생 사이예요. 얘가 그날 하도 연락이 안 되길래 와 본 것뿐이에요.” 경찰 앞에 선 박씨는 이런저런 얘기를 둘러댔다. 하지만 말은 앞뒤가 맞지 않은 채 파편처럼 흩어질 뿐이었다. 반면 CCTV에는 박씨가 아침부터 모텔 주변을 돌아다녔고, 신고하기까지 세 번에 걸쳐 208호 앞을 서성이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수상한 행적에 오락가락 진술, 경찰은 박모씨를 긴급체포했다.

박씨는 죽은 한모(당시 14)양 등 여성 세 명을 데리고 랜덤채팅 어플리케이션(앱) 성매매를 알선하는 업자로 확인됐다. 여성들은 모두 성매수 남성과 앱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각자의 닉네임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통해 경찰은 사망하기 직전 2시간 동안 한양에게 메시지를 보낸 남성 12명의 명단을 파악할 수 있었다. “휴대폰 위치 추적으로 사건이 벌어졌을 시간대에 모텔 근방에 있던 사람을 추려보니까 딱 세 명이 나오더군요.” 세 명 중 두 명은 알리바이가 확실했다. 나머지 한 사람, 사건 발생 이틀 만에 김모(당시 38)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김씨가 살고 있는 경기 시흥시로 강력반 3개 팀이 급파됐다. 다행히 김씨는 집에 있었다. 그는 휴대폰을 끈 채 한 번도 아파트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초인종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집 창문을 전부 암막 커튼으로 차단해 놓아서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통 보이지가 않더라고요.” 10층 집에서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소방서에 부탁, 안전매트까지 깔았다. 29일 오후 5시, 옆 집을 통해 화재 시 쓸 수 있는 방화벽을 발로 깨고 진입해 김씨를 긴급체포했다.

김씨는 예상대로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 뗐다. “모텔에 들어간 사실조차 없다고 부인하더라고요. 이런저런 증거를 들이밀어도 소용이 없었어요. 무조건 ‘아니다’ ‘모른다’고만 하니, 조사가 순탄치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습니다.”

임 경위는 김씨 마음을 얻는 것이 먼저라는 판단이 들었다. “김씨의 경우 잘 이야기 하다가도 욱해서 입을 닫아버리더라고요. 처음부터 가정환경을 다 들어주고 어렸을 때 자라온 과정을 모두 공유하면서 친밀감을 쌓는 게 필요했죠. 보통 살인 사건의 경우 2, 3번이면 끝나는 조사를 7번이나 진행했습니다.” 처음에 범행 일체를 부인하던 김씨는, 두 번째 조사에서는 “CCTV에 찍힌 사람이 내가 맞고 모텔에 들어간 적은 있지만 그냥 나왔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피해자는 옷을 다 입고 침대에 앉아 있었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고 했다. 약간의 진전이었다.

3월 31일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약물 검사 결과가 날아들었다. 피해자 혈액에서 치사량에 해당하는 만큼의 동물마취제 클로로포름이 검출됐다. 김씨 집에서는 1,000㎖ 클로로포름 두 병과 클로로포름이 적셔진 헝겊이 있었다. 피해자 손톱에서 채취한 남성 피부 DNA 역시 김씨 것으로 드러났다. 독성 마취제와 목 졸린 흔적, 그리고 DNA. 이 세 가지 증거 앞에 김씨가 달아날 구멍은 없었다. 결국 그는 “내가 목을 조른 것이 맞다”고 시인했다.

김씨는 선천적으로 오른쪽 얼굴 대부분에 혈관종(화염성모반)을 앓아 왔다고 했다. 그로 인해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고등학교도 중퇴했고 진한 화장으로 얼굴 흉터를 가리고 다녔다. 집 문을 전부 걸어 잠그고 마치 ‘은둔형 외톨이’처럼 지내왔으며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해외 구매대행업을 하면서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가족과 연락도 끊은 채 철저히 혼자 지냈다.

그가 성매수를 처음 한 건 2014년 5월쯤. 그 후 계속해서 오피스텔이나 안마소를 전전하며 그릇된 성 관념을 쌓아갔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클로로포름이 최초의 의료용 마취제로 사용되다가 영국 왕실에서 이로 인해 사망한 일이 발생하자 판매가 중단됐다’는 내용을 보게 됐다고 했다. 마침 그 약물은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구매하는 게 가능할 만큼 손에 넣기 쉬웠다. 마취제를 이용해 성매매 여성 몸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기로 마음을 먹은 그는 범행 전 약물 효능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에게 사용하기도 했다.

그가 클로로포름으로 범행을 저지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범행 2주 전인 3월 11일 서초동에 있는 모텔에서 성매매 여성을 클로로포름으로 마취한 뒤 210만원을 훔쳐 달아났고, 16일에는 성북구 동선동1가에 있는 모텔에서 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이 디지털포렌식으로 복원한 휴대폰 메모장에는 ‘작업일지’라는 제목으로 범행 계획과 기록이 빼곡히 남아 있었다. 그는 “돈을 줄 가치가 없는 여자였기 때문에 조건만남 대가로 건넨 돈을 빼앗기 위해서 그랬다”고 털어놨다.

9월 4일,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클로로포름을 묻힌 헝겊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고 목을 조른 것은 맞지만 기절만 시키고 돈을 빼앗으려고 했을 뿐 살인을 할 의도는 없었다”는 김씨 주장을 받아들여 강도치사와 강도상해 혐의만을 인정했다. 살인에 고의가 없었으니 살인죄를 물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2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생각이 달랐다. 살인에 대한 고의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본 양 재판부는 그에게 징역 40년형을 선고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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