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오케 하우저 BMW미니 리빙 크리에이티브 총괄 디렉터
과도한 인구 밀집 사회적 문제
공간의 효율적 이용 고민할 때
24시간 계속 쓰는 개인공간 없어
집은 여행용 가방 같은 쓰임새
문 닫으면 침대ㆍ책상 갖춘 방
문 열면 카페ㆍ 쉼터 등 열린 공간
내년 5월 상하이서 생활 실험
지난해 이탈리아 밀라노엔 네모 반듯한 2층 건물 사이로 잠자리채를 연상시키는 투명한 망사 그물로 된 원통형 집이 들어섰다. 이어서 미국 뉴욕 브루클린 벽돌집 사이에는 책장처럼 펼쳐지는 형태의 나무 틀에 무지갯빛 유리가 끼워진 집이 등장했다. 그러더니 지난 9월 베이징에는 버팀목만 남은 채 벽면이 뻥 뚫린 우주선 같은 2층짜리 집이 나타났다.
이상하고 신기한 도심 오두막들이 갑자기 나타난 건 자동차회사 BMW미니의 리빙 사업부가 추진한 ‘글로벌 빌리지 프로젝트’ 때문이다. BMW가 집을 만든다?
한국을 찾은 오케 하우저 BMW미니 리빙의 크리에이티브 총괄 디렉터를 서울 삼성동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하우저 디렉터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초청받아 한국을 찾았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대 건축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뉴욕 렘 콜하스 건축사무소, 스위스의 헤어초크앤드뫼롱 건축사무소 등을 거치고 2015년 10월 BMW 자회사 미니에 합류했다. 이력만 봐도 A급 건축가인 그가 맡은 역할은 미래도시 주거벤처 사업이다. 그가 보기에 현대인은 세계 모든 곳을 누비는 노마드다. 노마드에게 집은 “여행용 가방”이어야 한다.
-자동차 회사에서 대도시에 아주 작고 독특한 형태의 집을 짓는 이유가 뭔가.
“단순하게 말하자면 차만 도시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도 도시에서 움직이고, 돌아다니고, 살아간다. 우리는 차를 만드는 회사지만 그 이전에 차를 타고 움직이는 사람들, 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고려해야 한다. 사람들은 도시에 밀집해 있고, 도시에서 움직이기 위해 차를 이용한다. 1959년에 BMW미니가 나왔을 때 미니는 복잡한 도시에서 어떻게 영리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떤 답이 필요한가. 인구 밀집으로 인해 좁은 공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필요하지 않은가. 글로벌 빌리지 프로젝트는 극도의 밀집과 정서적 고립, 삭막한 환경 등 대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이제껏 진행한 프로젝트에서 대도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나.
“대도시의 가장 큰 문제가 인구 밀도가 매우 높다는 거다. 공간은 한정돼 있는데 사용자는 계속 늘어난다.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점점 더 줄어든다. 그래서 3년 전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인간이 살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공간으로 15㎡(4.5평)로 가정했다. 여기에 개인이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넣어봤다. 침대, 세면대, 책상, 옷장 전부다. 당연히 비좁고 활동이 불가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덜어내봤다. 화장실, 탈의실, 부엌 등을 공간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 다음은 이 공간을 도시와 어떻게 연결할 지 고민해봤다. 그래서 벽이나 문 등 공간을 구획했던 것을 없애고 외부와 연결했다. 예컨대 베이징의 ‘도심 오두막’(미니에서는 작은 집들을 ‘도심 오두막’이라고 부른다)에서 문을 닫으면 침대와 책상 등이 있는 개인의 작은 방이지만, 이를 열면 카페나 쉼터 같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 되도록 설계했다. 이런 방식은 건물을 매우 유연하게 쓰는 거다. 개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공유 공간이다. 사무실이면서 침실이다. 글로벌 빌리지 프로젝트는 모두 이런 점에 착안해 실험된 결과물이다.”
-사생활 침해, 안전 문제 등으로 현실화하기 어려워 보인다.
“미니의 슬로건은 ‘빅 라이프, 스몰 풋 프린트(Big Life, Small Footprint)’이다. 실현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첫 발자국을 떼서 의식적인 삶을 꾸준히 모색하겠다는 얘기다. 내년 5월 중국 상하이에서 실제 이런 공간에서 살 수 있을 지 실험한다. 기존 프로젝트가 전시공간이었다면 이번에는 8,000㎡규모의 거대한 페인트 공장을 개조해 입주자를 모집하고, 실제 거주하도록 할 것이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먹고, 자고, 놀고, 일하는 등의 모든 활동을 할 수 있다. 작은 실험이지만 미래에 주거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는 제한된 공간에 많은 사람이 함께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다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개인이 모든 공간을 동시에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지, 삶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예컨대 개인이 24시간 필요로 하는 공간은 없다. 이것을 다른 사람과 나눠서 쓰는 것이다. 개인이 사용하는 공간을 줄일수록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은 넓어지고, 궁극적으로는 그런 공간들이 연결돼 도시를 탐험하듯 살아가는 방식을 제안하게 될 것이다. 충분히 사람들이 만족하고 현실 가능하다.”
-당신이 제안하는 ‘공유 도시’가 가진 이점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도시를 이용하고, 살아가는 방식에는 큰 변화가 필요하다. 당장 생활 방식이 달라졌다. 현대인들은 세계 어디든 갈 수 있게 됐고, 주거 역시 다양해졌다. 나도 뮌헨, 뉴욕, 제네바, 런던, 베이징 등 8개국에서 살았다. 그야말로 ‘도시 노마드족’이다. 그렇다면 주거 형태나 공간도 달라져야 한다. 어딜 가든 집처럼 편안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어딜 가나 휴대폰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쉽게 도시에 대해 알 수 있고, 길도 찾을 수 있고, 정보를 얻는다. 집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그러려면 공유해야 한다. 공간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공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고, 언제든 (집을) 꺼내서 개인의 필요에 의해 재구성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공유 도시는 그런 공간들의 연결이 이뤄지는 도시다. 그리고 그런 도시에서 당신은 집 같은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울도 공간 부족, 집값 상승 등 대도시의 문제가 있다. 서울도 ‘공유 도시’가 될 수 있나.
“서울은 첫 방문이지만 개인적으로 매우 궁금하고 흥미가 있는 대도시다. 특히 공동체 문화가 강하지 않나. 공유 도시가 성공하려면 그런 연대성,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이 기반돼야 한다. 성공할지 여부는 누구든, 어느 도시든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기반으로 우리는 새로운 삶을 꿈꿔야 한다. 강남 한복판을 지나오면서 작은 상점이나 공간들이 촘촘하게 있는 것이 다른 도시에 비해 더 눈에 띠었다. 미니는 작은 데서부터 큰 것을 추구하는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작은 공간을 연결해 미래의 공유 도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강지원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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