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속도 조절로 방향 틀자 투쟁 예고
문재인 정부가 노동계에 안기는 ‘선물 보따리’로 보였던 최저임금이 노정 균열의 불씨로 변모했다. 애초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약속했던 정부가 산입범위 확대와 결정구조 개편 등 속도 조절로 방향을 틀자, 노동계는 대정부 투쟁을 예고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8일 노동계에 따르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정부의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을 막기 위한 공동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김형석 민주노총 대변인은 “정부의 입장변화가 없다면 양대 노총이 함께하는 총파업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최저임금위원회가 단독으로 결정하던 최저임금을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고, 기업의 지급능력 등 경제 상황을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추가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합리성과 공정성 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으나, 노동계에서는 최저임금 정책의 포기라면서 반발에 나섰다.
정부와 노동계의 최저임금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애초 민주노총이 문재인 정부와 등을 돌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최저임금이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적 대화체에 8년 만에 복귀한 민주노총은 지난해 국회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등을 포함시키는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이탈을 선언한 바 있다. 결국 정부의 새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노동사회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민주노총을 빼고 공식 출범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뿐 아니라 ‘노동존중 사회’를 내세운 현 정부의 노동정책이 모두 용두사미가 됐다고 각을 세우고 있다. 주52시간 근로제는 단속 유예 및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로 제동이 걸렸고,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도 사업장 점거 금지 등 재계의 요구와 빅딜을 할 계획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정책 수혜자의 기대치에 못 미쳐 연일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가 약속했던 노동정책에서 발을 빼거나 방향을 트는 형태가 반복되니 노동계에선 반발할 수 밖에 없다”면서 “이해 당사자에게 정책을 수정해야 하는 배경을 밝히며 논의하자고 제안하는 대신, 사회적 반발이 커지면 땜질하듯 대책을 내놓는 모습을 반복해 보이면서 갈등이 깊어졌다”고 설명했다.
악화일로를 걷는 노정 관계를 반영하듯 이날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노사정 신년인사회’에서도 덕담보다는 쓴소리가 오갔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지금 드릴 말씀은 새해처럼 밝지만은 않음을 이해해 달라”고 운을 떼고 최저임금을 비롯한 정부의 노동정책 후퇴에 대해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최저임금은 문재인 정부의 집권 첫해 '나라다운 나라'를 느끼게 해준 신호탄이었지만, 두 번째 해에 산입범위를 확대하며 예전으로 돌려놨고, 세 번째 해엔 그보다 후퇴하는 정책을 내놨다”고 꼬집었다. 민주노총은 이날 아예 불참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