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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누리는 글 짓는 삶” 글쓰기 모임으로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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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누리는 글 짓는 삶” 글쓰기 모임으로 ‘힐링’

입력
2019.01.1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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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인 김 모씨는 얼마 전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마음 속을 부유하는 막연한 생각과 감정을 글로 옮기고 싶었기 때문. 하나, 둘 쓴 글은 어느새 모여 책이 됐다. 김씨는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얘기가 책이 된 것을 보며 벅찬 감정을 느꼈다. 마음 안에만 꽁꽁 싸매둔 감정들을 글로써 풀어내니 묘한 해소감도 들었다. 이번 책은 김씨만 간직하지만 용기를 얻어 정식 출간까지 꿈꾸게 됐다.

글을 쓰기 위해 모임을 꾸리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청년의 아픔을 글로 풀어내 사회관계형서비스(SNS)에서 인기를 끈 작가들이 이들의 글 쓰기 욕구를 자극한 지도 오래. 책방 등에서 소규모로 이루어지는 글쓰기 모임이 청년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글쓰기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직접적인 만남이다. 혼자 하기 어려운 글쓰기도 만나서 하면 쉬워진다. 모임 참여자들의 소소한 위로는 덤. 모임 참여자들은 글에 담을 만한 각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가슴 깊이 숨겨 두었던 상처까지 서로 나누고 보듬는다.

글쓰기 모임의 첫 시간은 스토리 텔링이다. 자기 안에 묵혀둔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마구 털어내면서 글감을 모으는 시간이다. 평소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보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소감을 말해준다. 그 다음부터 각자 글을 쓰고 함께 모여 합평하는 시간들이 이어진다. 주말에 진행하는 모임 비용은 회당 2만~5만원꼴. 참가자들로서는 주말의 황금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지만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

북바인딩 수업에서 책을 엮고 있는 모임 참여자들. 박지현 작가 제공.
북바인딩 수업에서 책을 엮고 있는 모임 참여자들. 박지현 작가 제공.

글쓰기 모임을 찾는 사람들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실천하지 못했던 이들이다.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는 박준범(28)씨는 오래 전부터 글쓰기에 관심을 갖다가 SNS 검색으로 모임을 발견했다. 모임에 참여하면서 의무적으로 글을 쓰다 보니 혼자서 끝맺지 못했던 글을 완성할 수 있게 됐다. 박씨는 “비용을 지불하니 돈이 아까워서라도 글을 쓰게 돼 좋다”고 말했다. 박지현 작가의 책 엮기(북바인딩) 수업에 참여한 이수영씨도 기한을 정해놓고 글을 쓰도록 강제하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이씨는 “혼자 글을 쓰면 마감시간이 없고 정기적으로 쓰지도 않아 느슨해진다”고 설명했다.

글쓰기 모임의 최대 장점은 여러 사람들의 반응을 듣는 것이다. 여태현 작가 모임에 참여한 이기백(29)씨는 “글에 대한 신념이 단단해지기 전까지 함께 쓰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글을 꼼꼼히 읽어줄 독자의 눈이 늘어야 완성도 높은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모임에 참여한 필명 핑크빛 앙고라도 “혼자 쓰면 자신의 글에 취해 객관적 시선을 잃는다”며 “모임에서는 서로의 글을 나누며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글쓰기 모임 참여자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여태현 작가 제공.
글쓰기 모임 참여자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여태현 작가 제공.

고독의 해소는 부차적 효과다. 글을 혼자 쓰면 불현듯 찾아오는 허무감에 빠지는 일도 많다. 그러나 함께 글을 쓰면 다르다. 글을 함께 읽어주는 사람들이 글 쓰는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준다.

참여자들은 각자 지닌 아픔들을 모임에서 치유하기도 한다. 이수영씨는 오랜 기간 시험을 준비해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모임에 참여했다.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불안감, 압박감이 심했고 자존감도 떨어졌다. 그런데 그는 모임에 참여하면서 달라졌다. 그는 “따뜻한 분위기에서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이야기를 책에 녹여가는 과정이 뜻 깊었다”고 전했다.

우울증에 공황장애까지 앓았던 핑크빛 아고라는 모임을 하면서 증세가 많이 호전 됐다. 그는 “글쓰기 모임을 하며 사람들과 함께 아픈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글을 썼다”며 “아픔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아픔을 덜어낸 자리에 자신감이 생겼다. 글쓰기 모임을 한 차례 경험한 참여자들은 도전에 대한 열망이 컸다. 이수영씨는 “(모임 후) 막연하게 갖고 있던 출간의 꿈을 더 가깝게 느꼈다”며 “에세이로 역량을 다진 다음 이야기글(소설)도 써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슬기씨는 ‘글을 못 써도 하다 보면 얻는 게 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그렇게 쓰다 보니 글 욕심이 점점 늘었다. 김씨는 “단편집을 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며 “감탄이 나올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포부를 다졌다.

글쓰기 모임 참가자가 북바인딩 수업에서 만든 책. 박지현 작가 제공.
글쓰기 모임 참가자가 북바인딩 수업에서 만든 책. 박지현 작가 제공.

장점이 훨씬 많은 글쓰기 모임이지만 일부 모임은 장소가 제한적이어서 아쉽다.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는 책방이 일부 지역에 몰려있어 몇몇 참가자들은 모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핑크빛 앙고라는 “가끔 몇몇이 모여 밤새 글을 쓰는데 모임 장소가 멀어서 힘들었다”고 말했다.

글쓰기 모임에 관심이 있다면 SNS서비스인 인스타그램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 많은 모임의 참가자들이 인스타그램 검색을 통해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관심 있는 작가들의 인스타그램에 구독 신청을 해놓고 글쓰기 모임이 열리면 쪽지(DM)를 보내 신청하면 된다. 작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수업 구성과 단편집 발간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글쓰기 모임이 사교라는 문화계 화두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본다. 사람들이 쉽게 만나서 의견을 교환하기 힘든 요즘 글쓰기 모임이 사교의 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과 교수는 “진실한 만남이 필요하기 때문에 오프라인 모임을 하는 것”이라며 “모여서 글을 쓰면 사람도 만나고 위로도 되는 취미생활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가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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